주간동아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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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유전자지도’ 돈 주고 사라?

벤처社, 올 중반 100% 해독 특허계획…클린턴 “정부가 먼저 발표” 불구 특허인정 땐 로열티 부담 클 듯

  • 입력2006-03-08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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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유전자지도’ 돈 주고 사라?
    “두달 뒤면 생명의 설계도인 유전자 지도를 손에 쥘 수 있다.”

    지난 2월29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민주당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인간 유전자의 구조를 밝히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관해 언급,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90년 10월 1일 미국 에너지부와 국립보건원이 주축이 돼 시작한 것으로 2005년경 완료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클린턴의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조만간 프로젝트가 완성돼 과학사에 신기원을 이룩할 전망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미는 난치병 치료에 있다. 백혈병, 치매, 심장기형과 같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난치병이 정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정상 유전자와 질병 유전자에 관한 데이터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만일 비정상적인 유전자가 발견되면 건강한 유전자로 대체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 따라서 이번 클린턴 대통령의 발표는 난치병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발표 내용에 대해 적지 않은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바로 ‘두 달’이라는 시기 때문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그동안 완성 시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98년 미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당초 예정보다 2년 앞당긴 2003년에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단지 미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그만큼 발달했다는 점을 과시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 정부가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서두른 이유는 일부 생명공학 회사들이 별도로 연구를 추진해 “정부보다 앞서 끝내겠다”고 큰소리쳤기 때문이다.



    98년 미국 정부에서 게놈연구를 주도하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연구소를 뛰쳐나와 퍼킨 엘머사와 함께 새로운 벤처회사 ‘셀레라 제노믹스’를 설립하고, “3년 안에 인간 게놈의 염기서열 규명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목표보다 4년이 빠른 시점이었다. 그러자 미국 정부는 곧바로 반격에 나서 프로젝트를 앞당겨 끝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올해 1월 셀레라사는 “현재까지 인간 유전자의 97%를 해독했고, 당초 예정보다 1년 빠른 2000년 중반에 작업이 완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이 장담한 두 달 뒤와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다. 이 대목이 왜 중요할까.

    미국 정부와 셀레라사와의 경쟁은 단지 ‘자존심 대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 정부는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대로 그 데이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유전자에 관한 정보는 그 누구의 소유물이 아닌 인류 공동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처회사의 입장은 다르다. 셀레라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생명공학 벤처사들은, 일반적인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하되 상세한 정보는 제약회사와 대학 연구기관들에 돈을 받고 팔 계획이다. 이는 자신들이 발견한 유전자에 특허권을 얻음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미국 제약회사인 인사이트는 1998년 10월 특허청으로부터 인간 유전자 일부에 대해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한 과학자가 유방암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발견하고 특허를 받았다고 하자. 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용으로 환자에게 이 유전자를 사용할 때 병원측은 과학자에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때 과학자는 마치 부동산처럼 유전자 소유권을 병원측에 팔거나 빌려줄 수 있다.

    원래 특허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물질이나 기술을 ‘발명’하는 행위에 대해 주어진다. 그런데 인간의 유전자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일이 과연 특허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

    현재의 추세를 살펴보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유전자의 실체를 밝히는 일엔 엄청난 비용과 노력이 따르기 때문에 그 노고를 인정하자는 게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 특허청의 기본 입장이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성되면 10만개 유전자의 구조가 밝혀진다. 이론상으로는 10만건의 특허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난치병 치료를 위해 유전자를 사용할 때 일일이 별도의 비싼 특허료를 물어야 한다. 인류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가 오히려 선진국의 일부 기업들에 큰 이익을 제공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미국 정부가 서둘러 게놈프로젝트를 완성시키려 한 목적이 여기에 있다. 벤처사보다 먼저 프로젝트를 끝내 특허 취득을 막으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두 달 뒤’로 게놈프로젝트의 완료시기를 발표했다. 여기서 두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벤처사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정부의 프로젝트 진전 상황을 밝혔다는 견해다.

    하지만 최근까지 미국 정부의 프로젝트 진행 속도를 살펴보면 두 달 뒤의 완성은 무리인 듯하다. 한양대 생화학과 황승용교수는 “1999년 10월3일 현재 미국 국립보건원이 공식 발표한 프로젝트 달성치는 14.8%에 불과했다”고 말하고 “이로부터 불과 5개월만에 프로젝트가 완성되기는 힘들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또다른 가능성은 무엇일까.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 정부’의 게놈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벤처사를 포함한 ‘미국’의 성과를 알렸다는 해석이다.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박사는 “발표 자리가 대통령 선거모금 행사장소인 만큼 자신의 재임 기간 미국이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완료했다고 선전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유권자들에게 민주당의 이미지를 고양시킨다는 목적에서 볼 때 프로젝트의 완료 주체가 정부든 벤처사든 크게 중요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추측이 맞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벤처사가 유전자에 특허를 매기는 일에 대해 미국 정부가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꼴이 돼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한국을 비롯해 그동안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전혀 참여하지 않던 국가들은 유전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마다 선진국 벤처사들에 비싼 로열티를 물어야 한다.

    문제는 인간에 대한 유전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만일 외국 벤처사들이 인삼과 같은 특산식물이나 우리의 주식인 쌀에 대한 유전정보를 얻고 이에 대해 특허권을 획득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동남아시아지역 무성한 열대우림의 유전자, 나아가 세계 모든 동식물의 유전자에 대한 특허전쟁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클린턴 대통령의 발표가 과연 인간게놈프로젝트 본연의 목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30억 염기배열 순서를 찾아라”

    배열순서 따라 인종 성격 체질 등 결정… 난치병 정복에 ‘희망’


    게놈(genome)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 두 단어를 합성한 말로, 생물 세포에 담긴 유전정보 전체를 의미한다. 국내에서는 주로 독일어 발음에 따라 ‘게놈’이라 표기한다.

    유전정보는 DNA에 담겨 있다. DNA는 A(아데닌), C(시토신), G(구아닌), T(티민)이라는 네 종류의 염기를 가진다. 사람의 경우 대략 30억개의 염기가 존재한다. 이 염기의 배열 순서에 따라 인종 성격 체질 등이 결정된다. 염기 배열이 잘못되면 생리 기능에 이상이 생겨 몸에 질환이 발생한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주요 목표는 30억개의 염기가 배열된 순서를 밝히는 일이다. 따라서 프로젝트가 완료됐을 때 인간이 얻는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30억개 염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그리고 사람마다 염기서열이 어떻게 다른지가 밝혀져야 비로소 완벽한 생명의 설계도가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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