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 푸아시(poissy)에 위치하고 있는 사보아 주택은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것으로 근대 건축의 대표적인 주택 작품으로 꼽힌다. 건축학도나 디자인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주택건축물의 대명사다.
르 코르뷔지에 초기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인 이 작품은 필로티, 옥상 테라스,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파사드 등 그의 건축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조형적 요소가 자유자재로 배치돼 있다. 현대 건축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건물이 1920년대의 것으로 현대주택 건축의 기원쯤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도 사라지게 된다.
내부 중간은 전면 유리로 테라스와 이어지고, 그 유리를 통해 테두리 속의 그림 같은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기학학적 윤곽이 자연과 날카롭게 대치하며 특유의 시정을 자아내게 만든다.
1층에는 차고와 서비스공간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그 중심부에 거실공간인 위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입구공간은 곡선의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내부에 위층의 주생활공간으로 연결되는 육중한 경사램프가 인상깊게 자리잡고 있다. 경사램프와 원형계단은 여러 종류의 동선(動線)을 교차시켜 줌으로써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반원형의 계단에서 나타나는 동선은 시계방향의 곡선 형태이며, 경사램프의 동선은 반시계방향의 직선이다. 이 두 가지 동선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일체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빌라 사보아의 주된 건축적 의미는 고정된 질서 내에서 자유가 가지는 가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있다. 이러한 자유는 인간이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격리시켜 그 밖에서 자연을 관조할 수 있을 때만이 생명력을 갖게 되고 경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주택은 인간이 최종적으로 자연의 힘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으며(당시의 관점으로), 그 힘을 인간 자신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이 주택은 새로운 기계시대에 대한 믿음, 과학 및 기술의 승리에 대한 믿음이 구체화된 것이다.
무엇보다 빌라 사보아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해석이 정적인 관점에서 동적인 관점으로 변해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주택과 건축 양식에서의 이같은 동적인 해석은 이 이후로 종교 예술 과학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이 주택이야말로 1920년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양식과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건축물일 것이다.
역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은 프랑스 남부 리옹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곳은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종교인이나 건축학도, 혹은 건축가라면 한번쯤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
리옹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면서 전개되는 포도밭들, 수도원으로 가는 숲 속의 길목들은 겨울철이라 썰렁했지만 한적하고 다정한 프랑스 농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라 투레트는 포도밭과 나무가 울창한 언덕 위에 묵묵히 서 있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불과하다. 그것도 표면이 매우 거칠어서 언뜻 보기에는 짓다 만 건축물처럼 보이기가 십상이고 그만큼 황량하다. 그러나 수도원의 본질은 본래, 황량하게 헐벗은 존재의 고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성당 안은 어둠 그 자체였다. 보이는 것은 단지 제단의 십자가와 천장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전부다. 여기에서는 오직 신과의 만남과 기도만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다른 모든 행위는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창문을 의도적으로 안으로 깊게 들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피정(避靜)을 하기 위해 찾아온 신자들이 많았지만,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수도원의 웅장함에 묻혀 왜소하게 잦아들었다.
피정은 말 그대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신과 마주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단편적이나마 삶의 의미를 깨닫길 희구하는 행위이다. 이에 따라 마치 벌집처럼 들어서 있는 개개인의 독방은 1인용 침대와 책상 하나, 세면 도구가 전부여서 구조적으로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게끔 만들어져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조용한 바람소리만 적막감을 더해주는 가운데 뒤척이다보니 새벽이 왔다.
수도원 내부 공간에서 중요한 요소가 빛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은 역시 개인 기도실이다. 지붕이 삼각형으로 건축된 기도실의 조그마한 천장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벽면에 걸린 십자가에 그대로 꽂히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도하는 이에게 종교의 엄숙성을 극대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당과 연결된 복도와 계단들, 그리고 기도실로 향하는 통로들은 꼭 미로와 같다. 좁은 창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빛이 침묵의 어둠을 가까스로 거두고 있을 뿐이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빛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라 투레트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질서와 혼돈 사이의 강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경건함과 가벼움, 섬세함과 거칠음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수도원 생활의 영원한 본질, 즉 성스러운 법칙을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성취되는 궁핍-자선-복종의 가치들이 강력하게 표현되고 있다. 건축평론가 스미스는 지난 20세기의 어떤 건축가도 르 코르뷔지에만큼 종교 행위에 요구되는 양식을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에 맞추어 능숙하게 고안해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건축물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도 그 품위를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 건축물은 젊음에서 늙음으로 넘어가는 인간의 삶이 지니는, 그리고 신에 대한 탐구가 지니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보여주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 초기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인 이 작품은 필로티, 옥상 테라스, 자유로운 평면, 가로로 긴 창, 자유로운 파사드 등 그의 건축에 대한 다섯 가지 원칙이 적용된 것으로 조형적 요소가 자유자재로 배치돼 있다. 현대 건축물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보자면야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건물이 1920년대의 것으로 현대주택 건축의 기원쯤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생각도 사라지게 된다.
내부 중간은 전면 유리로 테라스와 이어지고, 그 유리를 통해 테두리 속의 그림 같은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다. 기학학적 윤곽이 자연과 날카롭게 대치하며 특유의 시정을 자아내게 만든다.
1층에는 차고와 서비스공간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그 중심부에 거실공간인 위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입구공간은 곡선의 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내부에 위층의 주생활공간으로 연결되는 육중한 경사램프가 인상깊게 자리잡고 있다. 경사램프와 원형계단은 여러 종류의 동선(動線)을 교차시켜 줌으로써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반원형의 계단에서 나타나는 동선은 시계방향의 곡선 형태이며, 경사램프의 동선은 반시계방향의 직선이다. 이 두 가지 동선은 서로 직각으로 교차하면서 일체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빌라 사보아의 주된 건축적 의미는 고정된 질서 내에서 자유가 가지는 가치를 어떻게 표현했는지에 있다. 이러한 자유는 인간이 자신을 자연으로부터 격리시켜 그 밖에서 자연을 관조할 수 있을 때만이 생명력을 갖게 되고 경험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주택은 인간이 최종적으로 자연의 힘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으며(당시의 관점으로), 그 힘을 인간 자신들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징하고 있다. 이 주택은 새로운 기계시대에 대한 믿음, 과학 및 기술의 승리에 대한 믿음이 구체화된 것이다.
무엇보다 빌라 사보아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해석이 정적인 관점에서 동적인 관점으로 변해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주택과 건축 양식에서의 이같은 동적인 해석은 이 이후로 종교 예술 과학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서양문명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이 주택이야말로 1920년대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양식과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는 건축물일 것이다.
역시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라 투레트 수도원은 프랑스 남부 리옹시 외곽에 자리잡고 있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이곳은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종교인이나 건축학도, 혹은 건축가라면 한번쯤 찾아보고 싶은 곳이다.
리옹 시내를 벗어나 시골길을 달리면서 전개되는 포도밭들, 수도원으로 가는 숲 속의 길목들은 겨울철이라 썰렁했지만 한적하고 다정한 프랑스 농촌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라 투레트는 포도밭과 나무가 울창한 언덕 위에 묵묵히 서 있는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불과하다. 그것도 표면이 매우 거칠어서 언뜻 보기에는 짓다 만 건축물처럼 보이기가 십상이고 그만큼 황량하다. 그러나 수도원의 본질은 본래, 황량하게 헐벗은 존재의 고독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성당 안은 어둠 그 자체였다. 보이는 것은 단지 제단의 십자가와 천장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전부다. 여기에서는 오직 신과의 만남과 기도만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다른 모든 행위는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창문을 의도적으로 안으로 깊게 들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마침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피정(避靜)을 하기 위해 찾아온 신자들이 많았지만,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수도원의 웅장함에 묻혀 왜소하게 잦아들었다.
피정은 말 그대로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신과 마주하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단편적이나마 삶의 의미를 깨닫길 희구하는 행위이다. 이에 따라 마치 벌집처럼 들어서 있는 개개인의 독방은 1인용 침대와 책상 하나, 세면 도구가 전부여서 구조적으로 잡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게끔 만들어져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이 오히려 잠을 방해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조용한 바람소리만 적막감을 더해주는 가운데 뒤척이다보니 새벽이 왔다.
수도원 내부 공간에서 중요한 요소가 빛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곳은 역시 개인 기도실이다. 지붕이 삼각형으로 건축된 기도실의 조그마한 천장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벽면에 걸린 십자가에 그대로 꽂히고 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기도하는 이에게 종교의 엄숙성을 극대화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성당과 연결된 복도와 계단들, 그리고 기도실로 향하는 통로들은 꼭 미로와 같다. 좁은 창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빛이 침묵의 어둠을 가까스로 거두고 있을 뿐이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빛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라 투레트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질서와 혼돈 사이의 강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이곳에서는 경건함과 가벼움, 섬세함과 거칠음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수도원 생활의 영원한 본질, 즉 성스러운 법칙을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성취되는 궁핍-자선-복종의 가치들이 강력하게 표현되고 있다. 건축평론가 스미스는 지난 20세기의 어떤 건축가도 르 코르뷔지에만큼 종교 행위에 요구되는 양식을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에 맞추어 능숙하게 고안해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건축물이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도 그 품위를 잃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 건축물은 젊음에서 늙음으로 넘어가는 인간의 삶이 지니는, 그리고 신에 대한 탐구가 지니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