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충하초(冬蟲夏草). 겨울에는 벌레로 있다가 여름이 오면 풀(버섯)이 된다는 식품이다. 덩샤오핑은 불로장생의 ‘명약’(名藥)으로 알고 장복(長服)했다지만, 한국에서는 ‘식품’으로 허가가 났다. 항암과 만성피로 퇴치에 큰 효과가 있어, 100g짜리가 29만원에 팔리고 있다.
잘 나가는 물품에는 언제나 유사품이 등장하는 법. 98년 형성된 국내 동충하초 시장이 유사품 범람으로 혼탁해지고 있다. 유사품은 살아 있는 벌레가 아니라 죽은 번데기로 만들었다. 동충하초가 아니라 ‘동번하초’인 셈이다. 때문에 애써 개발한 동충하초 시장이 펴기도 전에 말라 타들어 가고 있다.
동충하초는 중국 전래의 약품이다. 중국 간쑤성과 윈난성, 티베트 일대의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는 박쥐나방이라는 곤충이 살고 있다. 박쥐나방이 아직 땅에서 뒹굴뒹굴 기어다니는 유충(굼벵이)이던 여름철, ‘코르디셉스 시넨시스’(Cordyceps sinensis)라는 학명(學名)을 가진 버섯 균이 이 유충 표피에 침입해 발아를 시작한다.
영화 ‘에이리언’을 보면, 에이리언이 살아 있는 사람 몸에 알을 낳는 장면이 있다. 알에서 부화한 에이리언 새끼는, 사람 몸을 ‘숙주’(宿主)삼아 영양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코르디셉스 시넨시스 균도 에이리언처럼 박쥐나방 유충 몸을 숙주삼아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영양분을 다 빼앗긴 유충이 죽는데, 이때부터는 날씨가 추워지므로 균도 발아를 멈춘다. 따라서 유충 시체는 바짝 마른 ‘미라’, 즉 동충(冬蟲) 모습으로 한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박쥐나방 유충 미라는 절대 안썩어
날이 풀리면 벌레 시체는 금방 썩어 버린다. 하지만 이 균은 부패 균에 저항하는 힘이 워낙 강해, 박쥐나방 유충의 미라는 절대로 썩지 않는다. 그러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에이리언’에서처럼 이 균이 유충 몸 밖으로 뚫고 나온다. 사슴 머리에서 뿔이 자라듯, 균사를 뻗어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초’ (夏草)가 되는데, 하초가 포자를 터뜨려 살아 있는 박쥐나방 유충 몸에 균을 붙이면, 이 유충이 1년 후 다시 동충하초가 되는 것이다.
박쥐나방만 동충하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미-벌-잠자리-딱정벌레 등도 동충하초가 된다. 유충 상태에서만 동충하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충이나 번데기에서 동충하초가 되는 곤충도 많다. 매미는 “맴맴” 울던 상태에서 동충하초가 된다. 중국인들은 그 모습이 ‘매미 꽃’(蟬花)과 같다 하여 ‘선화(蟬花) 동충하초’란 말을 만들어 냈다. 동충하초 현상은 결국 곤충류의 지나친 번식을 제어하려는 조물주의 ‘보이지 않는 손’인 것이다.
4000년 전쯤부터 중국인들은 경험을 통해 여러 동충하초 중에서도 유독 박쥐나방 유충 몸에서 나온 동충하초만 강력한 약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봄철 간쑤성 일대의 고산지대에서 채집되는 박쥐나방 유충 동충하초의 양은 20t 정도. 동충하초를 장복하는 사람은 연간 1kg 정도를 먹으므로 20t으로는 2만여명이 먹을 수 있다.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2만여명은 6만분의 1도 안되는 비율이라 덩샤오핑 같은 고위층만 상복(常服)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동충하초는 더욱 신비화되었다.
한국에는 해발 3000m의 고산지대가 없어 박쥐나방 유충이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동충하초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상이다. 96년 이러한 생각에서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의 잠사양봉과장인 조세연박사(55)팀은 한국 실정에 맞는 동충하초 개발에 나섰다. 이들은 비단산업의 쇠퇴로 멸종 일보직전에까지 몰린 ‘누에’에 주목했다. 누에가루는 혈당 강하제로 쓰이니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어느 균이 누에 몸에서 동충하초로 자라는지였다. 두 번째는 이렇게 해서 만든 누에 동충하초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로는 누에 동충하초가 노약자의 원기를 회복하는데 뛰어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갖가지 균을 누에에 접종시켰는데,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Paecilomyces japonica)란 균이 이 조건들을 만족시켰다.
다음은 대량 생산법을 찾는 것이었다. 조박사팀은 알에서 부화한 누에를 뽕잎 위에서 17일간 키운 다음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 균을 뿌려, 인위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30여일 후 동충하초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불과 50일만에 누에 동충하초를 만드니 겨울이 되기 전에 또 한 번 생산할 수 있었다. 누에 동충하초는 누에 상태로 겨울철을 보내지 않았으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충하초‘(夏蟲夏草)다. 그러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항암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조사돼, 당당히 식품으로 허가받을 수 있었다.
98년 이러한 결과에 따라 전국 누에 농가가 누에 동충하초 생산에 들어갔다. 대한잠사회가 수거해 건강보조식품으로 내놓은 이 동충하초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중국과 일본이 큰 관심을 기울여, 조박사팀은 일본과 중국 등지에 특허를 출원하며 ‘기술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약삭빠른’ 한국인들이 조박사의 발밑을 허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죽은’ 번데기를 들여와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 가 아닌 다른 균을 뿌려 동충하초(동번하초)를 만든 것이다. 개중에는 포르말린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료용 번데기를 수입해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정승윤검사는 이러한 사실을 포착하고 ‘동번하초’ 제작자들을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기소했으나 지난 2월1일 법원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벌금형만 선고했다. 누에는 워낙 농약에 예민해서 ‘산’ 누에로 만든 동충하초에는 농약이 투입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죽은’ 번데기로 만든 ‘동번하초’에서는 농약 위험을 안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동번하초는 누에 동충하초와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지적 소유권을 침해하고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유사품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용인해줄 것인가.
잘 나가는 물품에는 언제나 유사품이 등장하는 법. 98년 형성된 국내 동충하초 시장이 유사품 범람으로 혼탁해지고 있다. 유사품은 살아 있는 벌레가 아니라 죽은 번데기로 만들었다. 동충하초가 아니라 ‘동번하초’인 셈이다. 때문에 애써 개발한 동충하초 시장이 펴기도 전에 말라 타들어 가고 있다.
동충하초는 중국 전래의 약품이다. 중국 간쑤성과 윈난성, 티베트 일대의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는 박쥐나방이라는 곤충이 살고 있다. 박쥐나방이 아직 땅에서 뒹굴뒹굴 기어다니는 유충(굼벵이)이던 여름철, ‘코르디셉스 시넨시스’(Cordyceps sinensis)라는 학명(學名)을 가진 버섯 균이 이 유충 표피에 침입해 발아를 시작한다.
영화 ‘에이리언’을 보면, 에이리언이 살아 있는 사람 몸에 알을 낳는 장면이 있다. 알에서 부화한 에이리언 새끼는, 사람 몸을 ‘숙주’(宿主)삼아 영양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코르디셉스 시넨시스 균도 에이리언처럼 박쥐나방 유충 몸을 숙주삼아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성장한다. 그러다 가을이 오면 영양분을 다 빼앗긴 유충이 죽는데, 이때부터는 날씨가 추워지므로 균도 발아를 멈춘다. 따라서 유충 시체는 바짝 마른 ‘미라’, 즉 동충(冬蟲) 모습으로 한겨울을 보내는 것이다.
박쥐나방 유충 미라는 절대 안썩어
날이 풀리면 벌레 시체는 금방 썩어 버린다. 하지만 이 균은 부패 균에 저항하는 힘이 워낙 강해, 박쥐나방 유충의 미라는 절대로 썩지 않는다. 그러다 날이 더 따뜻해지면 ‘에이리언’에서처럼 이 균이 유충 몸 밖으로 뚫고 나온다. 사슴 머리에서 뿔이 자라듯, 균사를 뻗어올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초’ (夏草)가 되는데, 하초가 포자를 터뜨려 살아 있는 박쥐나방 유충 몸에 균을 붙이면, 이 유충이 1년 후 다시 동충하초가 되는 것이다.
박쥐나방만 동충하초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개미-벌-잠자리-딱정벌레 등도 동충하초가 된다. 유충 상태에서만 동충하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충이나 번데기에서 동충하초가 되는 곤충도 많다. 매미는 “맴맴” 울던 상태에서 동충하초가 된다. 중국인들은 그 모습이 ‘매미 꽃’(蟬花)과 같다 하여 ‘선화(蟬花) 동충하초’란 말을 만들어 냈다. 동충하초 현상은 결국 곤충류의 지나친 번식을 제어하려는 조물주의 ‘보이지 않는 손’인 것이다.
4000년 전쯤부터 중국인들은 경험을 통해 여러 동충하초 중에서도 유독 박쥐나방 유충 몸에서 나온 동충하초만 강력한 약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뜻한 봄철 간쑤성 일대의 고산지대에서 채집되는 박쥐나방 유충 동충하초의 양은 20t 정도. 동충하초를 장복하는 사람은 연간 1kg 정도를 먹으므로 20t으로는 2만여명이 먹을 수 있다. 12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 2만여명은 6만분의 1도 안되는 비율이라 덩샤오핑 같은 고위층만 상복(常服)할 수가 있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동충하초는 더욱 신비화되었다.
한국에는 해발 3000m의 고산지대가 없어 박쥐나방 유충이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동충하초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현상이다. 96년 이러한 생각에서 농촌진흥청 산하 농업과학기술원의 잠사양봉과장인 조세연박사(55)팀은 한국 실정에 맞는 동충하초 개발에 나섰다. 이들은 비단산업의 쇠퇴로 멸종 일보직전에까지 몰린 ‘누에’에 주목했다. 누에가루는 혈당 강하제로 쓰이니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어느 균이 누에 몸에서 동충하초로 자라는지였다. 두 번째는 이렇게 해서 만든 누에 동충하초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아야 한다. 세 번째로는 누에 동충하초가 노약자의 원기를 회복하는데 뛰어난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갖가지 균을 누에에 접종시켰는데,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Paecilomyces japonica)란 균이 이 조건들을 만족시켰다.
다음은 대량 생산법을 찾는 것이었다. 조박사팀은 알에서 부화한 누에를 뽕잎 위에서 17일간 키운 다음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 균을 뿌려, 인위적으로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30여일 후 동충하초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냈다. 불과 50일만에 누에 동충하초를 만드니 겨울이 되기 전에 또 한 번 생산할 수 있었다. 누에 동충하초는 누에 상태로 겨울철을 보내지 않았으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충하초‘(夏蟲夏草)다. 그러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항암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조사돼, 당당히 식품으로 허가받을 수 있었다.
98년 이러한 결과에 따라 전국 누에 농가가 누에 동충하초 생산에 들어갔다. 대한잠사회가 수거해 건강보조식품으로 내놓은 이 동충하초는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중국과 일본이 큰 관심을 기울여, 조박사팀은 일본과 중국 등지에 특허를 출원하며 ‘기술 지키기’에 나섰다. 그러는 사이 ‘약삭빠른’ 한국인들이 조박사의 발밑을 허물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죽은’ 번데기를 들여와 ‘패실로마이세스 자포니카’ 가 아닌 다른 균을 뿌려 동충하초(동번하초)를 만든 것이다. 개중에는 포르말린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은 사료용 번데기를 수입해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의 정승윤검사는 이러한 사실을 포착하고 ‘동번하초’ 제작자들을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기소했으나 지난 2월1일 법원은 증거부족을 이유로 벌금형만 선고했다. 누에는 워낙 농약에 예민해서 ‘산’ 누에로 만든 동충하초에는 농약이 투입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죽은’ 번데기로 만든 ‘동번하초’에서는 농약 위험을 안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동번하초는 누에 동충하초와 비슷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 지적 소유권을 침해하고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는 유사품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용인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