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에 의해 쓰이는 여성인물 평전이 경계해야 할 가장 큰 오류는 대상의 ‘지나친 미화’가 아닐까. 많은 재능있는 여성들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고 과거 속에 묻혀버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실은 웬만한 남자보다 훨씬 잘났는데…”라는 식으로 영웅화하게 되면 그 인물의 결함과 한계 등 다양한 ‘인간적 면모’를 간과해버릴 위험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로사 몬떼로 지음)는 ‘열혈 페미니스트’가 집필했으면서도 비교적 대상에 대해 ‘쿨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조르주 상드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까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역사에 부침한 ‘자유롭고도 독특한 영혼의 여성’ 15명을 소개하고 있다. 상드나 크리스티,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소설가 브론티 자매, 카미유 클로델 등은 물론,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세노비아 캄프루비, 아우로라 로드리게스 모녀, 마리아 레하라가 등이 그들이다.
세노비아 캄프루비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하몬 히메네스의 아내로,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며 아내에게 집착한 남편 때문에 끔찍한 결혼생활을 한 여성. 아우로라 로드리게스는 조기 영재교육을 통해 딸 일데가르트를 자신의 ‘완벽한 창조물’로 만들었지만 결국 딸을 권총으로 쏘아죽인 어머니다. 마리아 레하라가는 평생 남편의 이름으로 희곡과 신문기사, 강연원고를 써주고, 남편의 정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녀를 주연으로 한 극본까지 썼으면서도 원고료조차 제대로 못받은 불운의 문재(文才). 이들은 모두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활동한 여성으로, 그녀들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여성학 분야조차도 ‘서유럽과 미국문화’에 편중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비교적 유명한 여성들의 사생활에 숨어있는 치부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이 먹은 뒤 뚱뚱해진 몸매를 감추기 위해 대중 앞에 수십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못생긴 치열(齒列)에 열등감을 느껴 이빨을 드러낸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제자를 둘러싸고 사르트르와 삼각관계를 유지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개인 서신에서 ‘두 사람 공동의 애인’에 대해 인격 모독적인 험담을 늘어놓았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문학적 자료를 얻기 위해 타인의 삶을 곤충 다루듯 차갑게 해부한 것”이다. 결국 그 ‘연인’은 이 서신이 공개된 뒤 충격을 받고 죽어버렸다. 마거릿 미드는 조금이라도 한가한 것을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공허 공포증’에 평생 시달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을 깎아내리려고 쓰이지는 않았다. 저자는 그 여성들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오류와 한계를 보여주었는지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당시의 사회적 한계와 각 개인이 보여준 행동의 필연성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결혼과 사랑은 ‘앞서간’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이들 중에는 결혼을 통해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다가 오히려 남편에게 족쇄를 차인 이도 있고(마리아 레하라가), 위대한 남성을 숭배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포기했던, 그러나 또다른 위대한 남성을 발견해 그에게 열정을 쏟은 여인(알마 말러)도 있다. 결혼은 안한 채 사생아를 낳은 이도 있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거론된 많은 여성들이 연하의 남성을 애인으로 혹은 남편으로 맞았고, 이 사실은 이들에게 ‘비정상적인 여자’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얇은 한 권의 책에 15명의 삶을 담아내다 보니 다소 주마간산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점. 하지만 각 인물의 삶을 사건 나열식으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단순한 ‘다이제스트’ 열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 로사 몬떼로 지음/ 작가정신 펴냄/ 297쪽/ 8000원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로사 몬떼로 지음)는 ‘열혈 페미니스트’가 집필했으면서도 비교적 대상에 대해 ‘쿨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조르주 상드에서 애거서 크리스티까지’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럽 역사에 부침한 ‘자유롭고도 독특한 영혼의 여성’ 15명을 소개하고 있다. 상드나 크리스티,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소설가 브론티 자매, 카미유 클로델 등은 물론,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 세노비아 캄프루비, 아우로라 로드리게스 모녀, 마리아 레하라가 등이 그들이다.
세노비아 캄프루비는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하몬 히메네스의 아내로, 평생 정신병에 시달리며 아내에게 집착한 남편 때문에 끔찍한 결혼생활을 한 여성. 아우로라 로드리게스는 조기 영재교육을 통해 딸 일데가르트를 자신의 ‘완벽한 창조물’로 만들었지만 결국 딸을 권총으로 쏘아죽인 어머니다. 마리아 레하라가는 평생 남편의 이름으로 희곡과 신문기사, 강연원고를 써주고, 남편의 정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녀를 주연으로 한 극본까지 썼으면서도 원고료조차 제대로 못받은 불운의 문재(文才). 이들은 모두 스페인어 문화권에서 활동한 여성으로, 그녀들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여성학 분야조차도 ‘서유럽과 미국문화’에 편중해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비교적 유명한 여성들의 사생활에 숨어있는 치부도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나이 먹은 뒤 뚱뚱해진 몸매를 감추기 위해 대중 앞에 수십년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못생긴 치열(齒列)에 열등감을 느껴 이빨을 드러낸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제자를 둘러싸고 사르트르와 삼각관계를 유지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개인 서신에서 ‘두 사람 공동의 애인’에 대해 인격 모독적인 험담을 늘어놓았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문학적 자료를 얻기 위해 타인의 삶을 곤충 다루듯 차갑게 해부한 것”이다. 결국 그 ‘연인’은 이 서신이 공개된 뒤 충격을 받고 죽어버렸다. 마거릿 미드는 조금이라도 한가한 것을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공허 공포증’에 평생 시달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페미니스트들의 우상’을 깎아내리려고 쓰이지는 않았다. 저자는 그 여성들이 어떤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어떤 오류와 한계를 보여주었는지 객관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당시의 사회적 한계와 각 개인이 보여준 행동의 필연성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결혼과 사랑은 ‘앞서간’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이들 중에는 결혼을 통해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다가 오히려 남편에게 족쇄를 차인 이도 있고(마리아 레하라가), 위대한 남성을 숭배해 기꺼이 자신의 재능을 포기했던, 그러나 또다른 위대한 남성을 발견해 그에게 열정을 쏟은 여인(알마 말러)도 있다. 결혼은 안한 채 사생아를 낳은 이도 있다(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거론된 많은 여성들이 연하의 남성을 애인으로 혹은 남편으로 맞았고, 이 사실은 이들에게 ‘비정상적인 여자’라는 누명을 씌우기도 했다.
아쉬운 것은 얇은 한 권의 책에 15명의 삶을 담아내다 보니 다소 주마간산식이 되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점. 하지만 각 인물의 삶을 사건 나열식으로 전개하는 게 아니라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재배열함으로써 단순한 ‘다이제스트’ 열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 로사 몬떼로 지음/ 작가정신 펴냄/ 297쪽/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