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들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으로 기술되어 남아있는 역사 또한, 대개가 ‘승자’의 관점에서 쓰인 것이다. 우리가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거의 사실(史實)은, 때문에 ‘패자’의 진실을 깡그리 숨겨버린 왜곡된 역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셉 폰타나의 역작 ‘거울에 비친 유럽’은 바로 이렇듯 지난 수세기 동안 역사를 지배한 유럽이 세계사를 어떻게 ‘승자에게 유리하도록’ 비틀어 왔는지 통렬히 비판하는 책이다. 저자는 유럽인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체제 내부에 존재하는 비판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해 각 시대마다 ‘외부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즉 ‘일그러진 거울’―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유럽 외 민족을 싸잡아 ‘야만’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었으며, 기독교와 세속 권력이 이해관계를 함께한 중세의 경우 체제에 흡수되지 않는 모든 세력을 기독교의 ‘이단’ 혹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처단했다. 신대륙에서 피정복민들에게 행해진 폭력 역시 ‘미개인들’에게 문명을 심어주기 위한 당연한 행위로 정당화되었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바라보는 견해,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로마문화의 맥이 끊어졌다는 사고 역시 ‘서유럽 위주의 시각’이 낳은 선입견일 뿐이다. 이 모두는 세계-문화의 ‘다원화, 다양화’ 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유럽은 이렇듯 ‘일그러진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우월감에 도취해, 혹은 우월감을 이용해 문명과 진보를 이뤄왔다. 그러나 이제 그같은 ‘환상’은 더 이상 유럽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간 유럽인들에 의해 상대화된 ‘오리엔탈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공존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지 않는 한 유럽은 안팎에서 공격해오는 적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경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 혹은 ‘헤게모니 세력의 역사 왜곡’ 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마르크시즘적 시각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담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풍부한 텍스트 발굴과 사례 제시를 통해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시각을 상당히 구체화시키고, 힘을 실어준다.
이 책은 유럽 5개 언어권의 주요한 출판사(프랑스의 쇠이유, 이탈리아의 라테르차, 독일의 벡, 영국의 블랙웰, 스페인의 크리티카)가 공동으로 기획한 ‘유럽을 만들자’ 총서의 첫 번째 책으로, 현재 세계 15개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유럽의 철저한 자기 반성’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총서는 움베르토 에코, 피터 브라운, 잭 구디 등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어 다음 권의 출간을 기다리게 한다.
그러나 첫 권인 ‘거울에 비친 유럽’ 하나만을 놓고 볼 때 번역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역자가 원문을 충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이해했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또한 우리말로 읽기 쉽게 표현해내는 작업이다. 문장을 좀더 자주 끊어서 풀어 써준다거나, 적절한 위치에 쉼표를 한 두 개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읽기 쉬워졌을 문장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새물결 펴냄/ 259쪽/ 9500원
조셉 폰타나의 역작 ‘거울에 비친 유럽’은 바로 이렇듯 지난 수세기 동안 역사를 지배한 유럽이 세계사를 어떻게 ‘승자에게 유리하도록’ 비틀어 왔는지 통렬히 비판하는 책이다. 저자는 유럽인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부각시키고 체제 내부에 존재하는 비판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해 각 시대마다 ‘외부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즉 ‘일그러진 거울’―을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유럽 외 민족을 싸잡아 ‘야만’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었으며, 기독교와 세속 권력이 이해관계를 함께한 중세의 경우 체제에 흡수되지 않는 모든 세력을 기독교의 ‘이단’ 혹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처단했다. 신대륙에서 피정복민들에게 행해진 폭력 역시 ‘미개인들’에게 문명을 심어주기 위한 당연한 행위로 정당화되었다.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고 바라보는 견해, 서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로마문화의 맥이 끊어졌다는 사고 역시 ‘서유럽 위주의 시각’이 낳은 선입견일 뿐이다. 이 모두는 세계-문화의 ‘다원화, 다양화’ 의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
유럽은 이렇듯 ‘일그러진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보며 우월감에 도취해, 혹은 우월감을 이용해 문명과 진보를 이뤄왔다. 그러나 이제 그같은 ‘환상’은 더 이상 유럽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그간 유럽인들에 의해 상대화된 ‘오리엔탈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이 공존해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지 않는 한 유럽은 안팎에서 공격해오는 적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경고다.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서유럽 중심의 세계관’ 혹은 ‘헤게모니 세력의 역사 왜곡’ 은 사실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마르크시즘적 시각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온 담론이다. 하지만 저자는 풍부한 텍스트 발굴과 사례 제시를 통해 ‘어쩌면 진부할 수도 있는’ 시각을 상당히 구체화시키고, 힘을 실어준다.
이 책은 유럽 5개 언어권의 주요한 출판사(프랑스의 쇠이유, 이탈리아의 라테르차, 독일의 벡, 영국의 블랙웰, 스페인의 크리티카)가 공동으로 기획한 ‘유럽을 만들자’ 총서의 첫 번째 책으로, 현재 세계 15개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유럽의 철저한 자기 반성’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총서는 움베르토 에코, 피터 브라운, 잭 구디 등 유럽을 대표하는 지성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어 다음 권의 출간을 기다리게 한다.
그러나 첫 권인 ‘거울에 비친 유럽’ 하나만을 놓고 볼 때 번역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역자가 원문을 충실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얼마나 이해했는가’만큼 중요한 것은, 또한 우리말로 읽기 쉽게 표현해내는 작업이다. 문장을 좀더 자주 끊어서 풀어 써준다거나, 적절한 위치에 쉼표를 한 두 개 넣어주는 것만으로도 훨씬 읽기 쉬워졌을 문장이 종종 눈에 띄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새물결 펴냄/ 259쪽/ 9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