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이라 하여 모두가 들뜬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매일 매일을 힘겹게 살아야 하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IMF 사태 이후 최대의 관심사가 되다시피 한 실업문제, 그 최전선에 서 있는 ‘백수‘들도 그중 하나. 이들에게 밀레니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을까.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백수 정보씨(29)는 ”21세기는 내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연말연시도 아랑곳없이 매일 도서관에 출근한다. 학생회관 취업상담실도 매일 빼놓지 않고 들르는 코스.
한때는 그도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97년 말 대기업에 공채 입사했지만 때마침 닥친 IMF 한파로 입사동기 130여명이 수습기간만 마치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IMF 춘궁기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막상 경기가 회복됐다는 요즘, 그는 또다른 낭패를 겪고 있다. 입사연령제한을 넘긴 나이가 문제가 되는 것. 현재 입사원서를 넣은 데만 마흔곳.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떨어졌고, 요행히 면접까지 간 네군데도 결과는 모두 낙방.
그는 사진의 세대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단정한다. ”지난 2년간은 불황때문에 취직이 안됐고, 이제 와서는 나이가 많다고 구제받지 못하는 ‘IMF세대‘죠.” 그는 ”굳이 새 밀레니엄의 희망을 말하라면 언젠가 구직과 퇴짜맞기의 악순환이 끝나는 날이 올거라는 기대 한 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법대 동기 160명 중 사시에 합격한 30여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시를 준비하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백수상태”라고 소개한다.
아예 사회 진출의 길 자체가 막힌 이들 청년백수에 비해, 한때 직장생활을 하다 이런 저런 이류로 잘린 백수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데서 오는 소외감과 외로움으로 심한 마음고생을 한다. 구직을 아예 포기했다는 정리해고 퇴직자 정모씨(53)는 ”바쁜 사람은 더욱 바빠지고 한가한 사람은 더욱 한가해지는 20대 80의 사회구조가 우리 미래 아니겠소” 라며 냉소적으로 말한다.
밀레니엄이 ‘강 건너 불‘같기론 신문사에 근무하다 지난해 4월 ‘잘린‘ 신모씨(35)의 경우도 마찬가지. ” 취직이 쉬운 나이도 아니고 해서 아예 오랜 꿈인 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그는, 지난 봄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털어 미국연수를 다녀왔다. 그나마 빨리 방향을 잡은 편이기는 하지만 고민 또한 적지 않다. ”토플시험 보고 유학 가서 석-박사 마칠때까지 최소한 5년은 잡아야 하는데, 귀국 뒤 그 공부가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란 걱정이다.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다. ”기약없이 공부하겠다는 노총각에게 선뜻 시집오겠다는 아가씨를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고, 대책 없이 유학을 떠났다가 총각 귀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것.
작은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IMF 직전 부도를 맞고 회생의 길을 찾는 ‘반백수‘ 홍모씨(55)는 ”현장에서는 경기 회복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꼭두새벽이면 출근. 일거리를 찾아 동분서주하지만 별무소득. 생계는 부인(50)이 파출부 일을 해서 꾸려 나간다. ”내년부터는 건설경기가 본격적을 회복된다니 그것 하나에 목매달고 있다”며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백수란 과연 무엇일까. 98년 7월 출범했던 전국백수연합(전백련)은 ”백수란 할 일을 잃은 사람이 아닌,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 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이 모임의 주덕한사무총장은 ”백수를 ‘인간이 평생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지닌 ‘자발적 백수‘와 구조조정에 희생된 ‘비자발적 백수‘로 나눠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불황 속에서 비자발적 백수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백련 활동은 요즘 소강상태다. 얹혀 살던 사무실에서도 철수했고, PC통신에 개설됐던 전용방 활동도 거의 중지됐다.
지난 98년 일자리를 잃은 뒤 최근 ‘백수되어 세상 거꾸로 보기‘란 책을 낸 김기덕씨에 따르면 백수가 자존심을 지키고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할 일곱가지 수칙이 있다. △반드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어라 △궁상떨지 말라 △백수도 명함을 만들어 사용하라 △핸드폰을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친구-친지들의 사무실에 쓸데없이 자주 들르지 말 것 △대낮에 술 마시고 얼굴이 벌겋게 되거나 냄새 풍기지 말 것 △대낮에 집에서 전화를 직접 받지 말것 등이다.
이들 백수는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아침마다 바쁜 듯이 집을 나서고, 직함을 묻는 질문들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백수시절 초기 유달리 많아지는 밥 약속, 술 약속이 동정 때문인가 싶어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좀 허술하게 차려입고 나서면 모든 사람이 ‘백수‘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자격지심을 갖기도 한다.
사회 요직에서 활동하다 백수가 된 ‘어르신‘들 사이에는 독특한 백수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김기덕씨가 소개하는 ‘화백‘(화려한 백수) 사회의 우스개 한토막. ‘백수들의 생존전략‘으로 아침식사는 웬만한 호텔에 늘 있게 마련인 ‘조찬간담회‘에서 챙겨 먹고 , 오찬은 결혼식장을 찾아간다. 하객이 많기로 소문난 공항터미널 예식장이 권장할 만하다. 만찬은 유명 병원 영안실. 이를 위해 번듯한 정장과 검은 넥타이 등 소품 정도엔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백수들에게 21세기는 희망의 새 천년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IMF 2주년을 맞아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아직도 100만명 가까운 실정이며, 직장을 잃은 지 1년이 넘는 장기실업자가 전체 실업자의 17.5%를 차지하는 등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돌풍 같이 찾아온 구조조정의 회오리, 정응하지 못하면 가차없이 퇴출되는 새로운 사회구조 속에서 백수들은 외롭기만 하다.
연세대 법대를 졸업한 백수 정보씨(29)는 ”21세기는 내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연말연시도 아랑곳없이 매일 도서관에 출근한다. 학생회관 취업상담실도 매일 빼놓지 않고 들르는 코스.
한때는 그도 어엿한 직장인이었다. 97년 말 대기업에 공채 입사했지만 때마침 닥친 IMF 한파로 입사동기 130여명이 수습기간만 마치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IMF 춘궁기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막상 경기가 회복됐다는 요즘, 그는 또다른 낭패를 겪고 있다. 입사연령제한을 넘긴 나이가 문제가 되는 것. 현재 입사원서를 넣은 데만 마흔곳. 대부분 서류전형에서 떨어졌고, 요행히 면접까지 간 네군데도 결과는 모두 낙방.
그는 사진의 세대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 단정한다. ”지난 2년간은 불황때문에 취직이 안됐고, 이제 와서는 나이가 많다고 구제받지 못하는 ‘IMF세대‘죠.” 그는 ”굳이 새 밀레니엄의 희망을 말하라면 언젠가 구직과 퇴짜맞기의 악순환이 끝나는 날이 올거라는 기대 한 가지”라고 말한다. 그는 ”법대 동기 160명 중 사시에 합격한 30여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사시를 준비하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백수상태”라고 소개한다.
아예 사회 진출의 길 자체가 막힌 이들 청년백수에 비해, 한때 직장생활을 하다 이런 저런 이류로 잘린 백수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데서 오는 소외감과 외로움으로 심한 마음고생을 한다. 구직을 아예 포기했다는 정리해고 퇴직자 정모씨(53)는 ”바쁜 사람은 더욱 바빠지고 한가한 사람은 더욱 한가해지는 20대 80의 사회구조가 우리 미래 아니겠소” 라며 냉소적으로 말한다.
밀레니엄이 ‘강 건너 불‘같기론 신문사에 근무하다 지난해 4월 ‘잘린‘ 신모씨(35)의 경우도 마찬가지. ” 취직이 쉬운 나이도 아니고 해서 아예 오랜 꿈인 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그는, 지난 봄 모아놓은 돈을 탈탈 털어 미국연수를 다녀왔다. 그나마 빨리 방향을 잡은 편이기는 하지만 고민 또한 적지 않다. ”토플시험 보고 유학 가서 석-박사 마칠때까지 최소한 5년은 잡아야 하는데, 귀국 뒤 그 공부가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란 걱정이다.
고민은 그것만이 아니다. ”기약없이 공부하겠다는 노총각에게 선뜻 시집오겠다는 아가씨를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고, 대책 없이 유학을 떠났다가 총각 귀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것.
작은 건축회사를 운영하다 IMF 직전 부도를 맞고 회생의 길을 찾는 ‘반백수‘ 홍모씨(55)는 ”현장에서는 경기 회복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여전히 꼭두새벽이면 출근. 일거리를 찾아 동분서주하지만 별무소득. 생계는 부인(50)이 파출부 일을 해서 꾸려 나간다. ”내년부터는 건설경기가 본격적을 회복된다니 그것 하나에 목매달고 있다”며 풀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백수란 과연 무엇일까. 98년 7월 출범했던 전국백수연합(전백련)은 ”백수란 할 일을 잃은 사람이 아닌, 잠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 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풀이한다.
이 모임의 주덕한사무총장은 ”백수를 ‘인간이 평생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지닌 ‘자발적 백수‘와 구조조정에 희생된 ‘비자발적 백수‘로 나눠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불황 속에서 비자발적 백수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백련 활동은 요즘 소강상태다. 얹혀 살던 사무실에서도 철수했고, PC통신에 개설됐던 전용방 활동도 거의 중지됐다.
지난 98년 일자리를 잃은 뒤 최근 ‘백수되어 세상 거꾸로 보기‘란 책을 낸 김기덕씨에 따르면 백수가 자존심을 지키고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할 일곱가지 수칙이 있다. △반드시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입어라 △궁상떨지 말라 △백수도 명함을 만들어 사용하라 △핸드폰을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친구-친지들의 사무실에 쓸데없이 자주 들르지 말 것 △대낮에 술 마시고 얼굴이 벌겋게 되거나 냄새 풍기지 말 것 △대낮에 집에서 전화를 직접 받지 말것 등이다.
이들 백수는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기 위해 아침마다 바쁜 듯이 집을 나서고, 직함을 묻는 질문들 앞에서 말문이 막힌다. 백수시절 초기 유달리 많아지는 밥 약속, 술 약속이 동정 때문인가 싶어 마음에 상처가 되기도 하고, 좀 허술하게 차려입고 나서면 모든 사람이 ‘백수‘라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자격지심을 갖기도 한다.
사회 요직에서 활동하다 백수가 된 ‘어르신‘들 사이에는 독특한 백수문화가 형성되기도 한다. 김기덕씨가 소개하는 ‘화백‘(화려한 백수) 사회의 우스개 한토막. ‘백수들의 생존전략‘으로 아침식사는 웬만한 호텔에 늘 있게 마련인 ‘조찬간담회‘에서 챙겨 먹고 , 오찬은 결혼식장을 찾아간다. 하객이 많기로 소문난 공항터미널 예식장이 권장할 만하다. 만찬은 유명 병원 영안실. 이를 위해 번듯한 정장과 검은 넥타이 등 소품 정도엔 기꺼이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백수들에게 21세기는 희망의 새 천년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럴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IMF 2주년을 맞아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실업자는 아직도 100만명 가까운 실정이며, 직장을 잃은 지 1년이 넘는 장기실업자가 전체 실업자의 17.5%를 차지하는 등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돌풍 같이 찾아온 구조조정의 회오리, 정응하지 못하면 가차없이 퇴출되는 새로운 사회구조 속에서 백수들은 외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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