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의 21세기 유망주 선정 작업은 한마디로 난산이었다. 일단 정보통신, 금융, 스포츠, 문화 등 7개 분야로 나눠 각 분야에서 3명씩 선정한다는 원칙은 정해졌으나 선정 기준이나 방법이 문제였다. ‘주간동아’ 편집실은 여러 방안을 검토한 끝에 중앙 일간지 및 방송사의 해당 분야 취재팀장들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기로 했다. 이들이 해당 분야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추천 대상은 현재 각 분야에서 우뚝 선 정상급 인사들은 배제하고 앞으로 10년 이내에 정상권에 진입할 수 있는 인물로 한정했다. 가령 스포츠 분야의 경우 프로골퍼 박세리나 박지은이 제외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언론인들이 추천한 21세기 유망주들은 과연 누구인가. 》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사장(32),㈜나모인터랙티브의 박흥호사장(37), 네이버컴의 이해진사장(33). 국내에서 인터넷 벤처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30대의 ‘무서운 아이들’이다. 국내 벤처업계에서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메디슨 이민화회장을 벤처 1세대라고 한다면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린 이찬진씨 등이 중간세대를 형성한다. 이재웅-박흥호-이해진사장 등은 이들 중간세대를 이어 벤처업계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 6표와 5표, 4표를 얻어 정보통신 분야의 21세기 유망주로 선정됐다.
이재웅사장은 최근 가입자수 500만명을 돌파한 국내 최대의 무료 웹 메일(전자우편) 서비스 제공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초고속 성장 신화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 연세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95년 귀국해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한메일(다음커뮤니케이션의 전신)을 차렸다. 처음에는 기업 홈페이지 제작과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에 주력하다 97년 5월부터 무료 웹 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는 코스닥 등록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그가 가진 주식 가치는 1000억원대를 훨씬 웃도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시작 후 5년도 못돼 벤처신화의 영웅이 된 셈이다. 그는 “시기적으로 인터넷이 급성장하는 등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한글과컴퓨터 창립 멤버로 ‘ㅎ·ㄴ글 글’ 탄생의 주역이기도 한 박흥호사장은 국내 소프트웨어 상품 수출 1호, 단일 규모 최대 금액 소프트웨어 수출, 소프트웨어 업계 최초 미국 컴덱스 단독전시관 참가 등의 기록을 갖고 있다. 초보자도 5분만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제작할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 제작용 프로그램 나모 웹에디터를 개발해 세계적인 홈페이지 제작 도구인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런트페이지, 매크로미디어의 드림위버, 어도브의 골라이브 등 빅3 제품의 국내시장 공략을 막아내고 국내 시장을 60% 이상 지키고 있다.
국내 최대 인터넷 정보 검색 업체인 네이버컴㈜은 시스템통합(SI) 업체인 삼성SDS의 벤처포트 1호로 97년 10월 출범한 뒤 올 6월 분사한 업체. 이해진사장은 서울대(86학번)와 카이스트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뒤 92년 삼성SDS에 들어가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인터넷 검색엔진 개발에 겁없이 뛰어든 386세대. 그가 만들어낸 네이버 검색 엔진은 소프트웨어의 일종인 검색 로봇이 직접 인터넷을 초고속으로 누비며 자료를 건져올리기 때문에 어떤 검색엔진보다 많은 자료를 찾아준다. 그 결과 이용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토종 검색엔진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로 접어든 97년말 이후 국내 금융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심한 변화를 겪었다. ‘은행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깨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뮤추얼펀드 등 새로운 금융상품이 쏟아지기도 했다. 김정태 주택은행장(53), 이병익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매니저(36), 강찬수 서울증권사장(42) 등이 각각 5표, 3표, 4표를 얻어 21세기 금융 분야 유망주로 선정된 것도 금융-증권시장의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태 주택은행장의 선정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그가 너무 많이 알려졌기 때문에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중앙 일간지 금융팀장들은 그의 주택은행 경영 방식은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그의 주주중심 경영방식이야말로 21세기 은행 경영의 모델이라는 점에서 그를 강력히 추천했다.
이병익 미래에셋펀드매니저는 98년말 국내에 처음 등장한 뮤추얼펀드를 운용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올려주었다는 점에서 유망주로 선정됐다. 그의 뛰어난 운용 실적은 ‘뮤추얼펀드 돌풍’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결국 뮤추얼펀드라는 선진적인 금융상품이 국내에 안착하는 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평가. 이씨는 “크게 무리하지 않고 좋은 종목만을 골라 장기 보유하는 게 운용 전략의 전부”라고 말하지만 미래에셋 박현주사장은 “35세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다 싶을 정도로 좋은 장세관을 가진 타고난 펀드매니저”라고 높이 평가한다.
세계적 규모의 헤지펀드를 굴리는 미국의 조지 소로스가 인수한 서울증권의 강찬수사장은 소로스측의 추천으로 올 2월 이 자리를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그는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에 새 천년에 국내 증권시장에 선진적인 경영방식을 전수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3. 스포츠
피겨스케이팅의 남나리, 골퍼 김성윤, 청소년대표 출신의 축구스타 최태욱(안양 LG)이 ‘새 밀레니엄 기대주’로 선정됐다.
99년 8월 한국 골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US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해 일약 ‘월드 스타’로 떠오른 국가대표 골퍼 김성윤(18)이 21세기 기대주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나오미 나리남(14·한국명 남나리)은 올 2월 전미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 여자싱글 부문에서 미셀 콴에 이어 2위를 차지, 빙판의 새 요정으로 떠오른 한국계 2세. 30년 전 미국으로 이민간 한국인 엔지니어의 딸인 남나리는 5세 때부터 스케이팅을 시작해 8세 때 나가노올림픽 미국대표팀 코치를 맡았던 존 닉스의 눈에 띄어 그의 지도를 받으며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축구선수 최태욱(19)은 팀 동료였던 이천수와 함께 발을 맞춰 부평고를 고교 최강팀으로 이끈 전천후 스트라이커. 173cm, 62kg의 체격으로 100m를 11초대에 끊는 스피드가 발군이다.
설치미술가 이불(36), 바이올린 요정 김민진(21), 소설가 김영하(32)가 2000년대 문화계를 이끌 기대주로 선정됐다. 문화 분야는 음악 미술 무용 문학 대중문화 등 장르가 다양해 3명의 기대주를 선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올해 자신의 분야에서 나름대로 발자취를 남긴 사람으로 한정하자 쉽게 이들 3명으로 좁혀졌다.
이불은 장기불황에 시달린 채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평이한 한해를 보낸 미술계가 99년에 거둬 올린 최대 수확. 그가 올 6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노래방’으로 특별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요정’ 김민진은 올해 초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2001년 초까지의 정규 시즌 협연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바이올린 연주계에 주목할 만한 신예로 등장했다. 세계적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는 김민진에 대해 “음악적 성숙과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바이올린의 명인”이라고 평가하며 협연을 약속했으나 97년 갑작스런 별세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95년 계간 ‘리뷰’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와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비롯해 등단 3년만에 현대문학상까지 수상하며 급격하게 부상한 신세대 작가. ‘당신의 나무’ ‘사진관 살인사건’ ‘호출’ 등의 작품이 있다.
5. 과학 . 기술
서울대 물리학과 노태원(43)-제원호교수와 연세대 천문학과 이영욱교수(39)가 선정됐다. 노교수는 올 10월 차세대 반도체 신소재를 개발한 점이 높이 평가됐고, 제원호교수는 기초과학인 물리학 분야에서 기대주로 꼽힌다. 또 이영욱교수는 천문학에 대한 지원이 거의 없는 국내 현실에서 세계 천문학계가 주목할 만한 발견을 이뤄냈다는 점이 선정 이유로 꼽혔다.
노태원교수팀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F램에 사용되던 강유전체(强誘電體)인 PZT와 SBT를 대체할 수 있는 BLT(비스무스 란타늄 타이타늄 산화물)를 개발했다. 강유전체란 전압을 걸지 않아도 스스로 자기를 띠는 F램의 핵심 소재로 BLT는 기존의 강유전체가 지니고 있던 단점을 모두 극복한 새로운 개념의 물질이다. 즉 기존 소재는 정보를 쓰고 지우는 과정을 일정 횟수 이상 반복할 경우 정보를 잃기 시작하는 이른바 ‘피로현상’을 보였으나 BLT는 이같은 문제점을 보이지 않는다.
제원호교수는 레이저를 핀셋처럼 이용해 세포내의 어떤 물질을 끄집어내거나 원자들을 움직이는 것을 통해 물질의 변환을 연구하고 있다. 또 우주나 물질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자내 양성자의 반(半) 물질인 반(半) 양성자를 오랫동안 살아있도록 하는 것도 그의 연구 분야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우주나 물질의 근본을 이해할 수 있다.
이영욱교수는 최근 오메가 성단이 100억년 전 우리 은하와 충돌한 작은 은하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 결과를 세계적 권위지인 ‘네이처’에 발표한 한국 천문학계의 기대주. 네이처의 심사위원들이 “기존의 은하 형성 이론을 뒤바꿀 획기적인 결과”라고 할 정도로 한국 천문학계의 쾌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포항공대 성영철교수(44)와 SK케미칼 김대기박사(44)는 인류가 21세기에 정복해야 할 대상인 에이즈와 암 연구에 매진,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또 이수영 한국과학기술원 뇌과학연구센터소장은 뇌 연구가 21세기 과학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꼽힌다는 점에서 선정된 것으로 풀이된다.
성영철교수는 12월초 에이즈바이러스 유전자를 백터(운반체)에 넣어 세포에 주입해 세포에서 자체적으로 백신이 생산되도록 하는 DNA백신을 개발, 독일 영장류 동물센터에서 원숭이 실험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실험에서 성교수의 DNA백신을 투여한 원숭이는 초기 감염 후 4~20주 내에 바이러스가 모두 제거되고 면역기능 저하 지표가 되는 T임파구가 정상으로 유지돼 백신의 에이즈 예방 및 치료기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험결과는 DNA백신을 예방 백신뿐만 아니라 치료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김대기박사는 국내 신약 1호인 항암제 ‘선플라’를 제조해 한국을 일약 세계 10대 신약 개발국으로 끌어올린 주인공. 그는 신약이라는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73년 신약 개발의 개척자가 되겠다는 결심으로 서울대 약대에 진학했을 정도로 신약 개발에 일생을 걸어온 사람. 그는 요즘 국내 신약 개발 1호 기록에 만족하지 않고 발기부전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이수영소장은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고 이를 기계에 적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미래 기술의 전위대인 한국과학기술원 뇌과학연구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뇌과학연구센터는 98년 뇌연구에 대한 제도적 지원 방안을 망라한 뇌과학연구촉진법 통과 직후 설립된 연구센터로, 여기에서는 인간의 뇌기능을 시각 청각 추론능력 행동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눠 해부하고 이를 반도체 칩으로 재현해내는 연구를 진행중이다. 이소장은 “뇌과학연구를 기계에 구현하는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경쟁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7. 시민단체
참여연대 이태호시민감시국장(33)은 작년 신동아그룹의 최순영회장 구명로비사건을 집요하게 물고늘어 져 올 2월 최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7표를 받았다. 이어 동강의 물줄기를 막으려는 정부의 댐건설 계획을 끝내 무산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환경운동연합 김혜정 환경조사국장(37)이 6표를 받았다. 또 올 5월 의약분업 합의안 도출에 기여한 경실련 김승보정책실장(37)이 5표를 얻었다.
이태호국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재학시절(86학번)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운동권 출신. 95년 민주화운동 정신을 구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참여연대 조직부장으로 참여했고, 이어 정책부장-기획부장을 거쳐 작년 7월부터 시민감시국장을 맡고 있다. 시민감시국은 사법 의정 등 권력에 대한 감시 역할을 맡고 있다. 95년 노태우비자금 사건 직후 참여연대가 맑은사회만들기운동본부를 만들어 부패방지법 제정을 주도하는 데 힘을 보탠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김혜정국장은 88년 고향 울진에서 반핵운동으로 환경운동에 투신한 NGO(비정부기구)의 새 리더. 당시 건국대 중문과 2학년이던 그는 울진지역 청년-교사들과 함께 ‘울진 반핵운동협의회’를 구성해 원전건설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이어 다음해 공해추방운동연합(환경운동연합의 전신)의 핵 평화부 간사를 맡아 직업 환경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한전은 작년에 김국장을 ‘한전의 악녀’로 선정했다. 그만큼 김국장은 한전의 원전건설 사업에 ‘껄끄러운’ 존재로 부상했다.
경실련 김승보국장은 89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학생기독교운동을 통해 시민운동에 입문했다. 95년까지 부산YMCA 시민사업부 간사를 역임했고,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정책실장,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사무차장을 거쳐 작년부터 경실련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99년 하반기부터는 전자제품 등의 무자료 거래실태조사 등을 통해 조세개혁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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