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 오전 10시경. 국회 대정부 질문을 몇시간 앞두고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은 서울 서초동 D헬스클 럽의 사우나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한달여 전인 9월초 ‘비밀문건’을 입수한 뒤 별러 왔던 D데이가 바로 오늘로 다가온 것이다. 문건을 공개한 뒤의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여권은 치명타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이때 경남고 선배 K변호사가 들어섰다.
“감옥에 갈 각오하고 오늘 오후에 터뜨립니다.” K변호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정의원이 대뜸 먼저 말을 꺼냈다. 특유의 쾌활한 웃음도 잊지 않았다.
이날 오후 대정부 질문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정의원은 준비한 대로 ‘성공적 개혁 추진을 위한 외부환경정비 방안’이라는 A4용지 7쪽 분량의 문건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며 여권의 언론장악 음모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문건의 내용은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 중 하나를 친여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정의원은 “문건작성자는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이며 여권 핵심실세를 거쳐 김대중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본회의장 안이 크게 술렁거렸다. 국민회의 의석에서 “조작의 대가인 정의원의 자작극”이라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문건작성자로 지목된 이강래전수석이 곧바로 문건작성 사실을 부인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국민회의는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문건임에도 작성날짜가 없고 맞춤법이 틀린 곳이 7곳이나 된다는 점 등을 들어 완전히 조작된 문건이라고 맞섰다.
정의원의 폭로 직후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의 보좌관인 최상주씨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중앙일보 문일현기자가 4개월 전 팩스로 보내온 문건과 똑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최보좌관은 10월26일 베이징에 있는 문기자와 세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통해 문기자가 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받았다. 최보좌관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듣고 대반격의 실마리를 잡은 국민회의 지도부는 “정의원이 드디어 걸려들었다”며 역공을 취했다.
언론장악문건 파동은 6월20일 평소 이부총재와 가까웠던 문기자가 이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서 비롯됐다. 문기자는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부총재 진영을 맡아 취재하면서 이부총재와 가까워졌고 그 이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98년 3월부터 3개월간 국민회의를 출입했던 문기자는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이부총재가 국회 정보위 회의 참석을 위해 국회에 왔을 때 이부총재의 승용차에 올라타 밀착 취재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문기자는 6월20일, 국정원장직에서 퇴임한 이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부총재가 당시 정국을 걱정하는 얘기를 듣고 문제의 문건을 작성해 6월24일 서울 여의도의 이부총재 사무실에 팩스로 보내 주었다. 문건에는 3장 분량의 사신(私信)도 첨부돼 있었다. 이부총재의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던 평화방송 이도준차장은 7월초 이곳을 찾아갔다가 신원철비서관의 책상에서 문제의 문건을 발견했다. 내용을 대충 훑어본 이차장은 “5공 때의 보도지침사건을 능가하는 엄청난 특종”이라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슬그머니 팩스용지로 된 문건 원본을 들고나온 이차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발신지번호가 찍힌 윗부분을 가린 채 문건을 복사했다고 검찰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이차장은 곧바로 회사 간부에게 문건입수 사실을 보고하고 기사화하려 했으나 출처가 불분명하고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사화는 보류됐다. 9월초 국회 의원회관 정의원 사무실에 들른 이차장은 정의원에게 이 문건을 복사해 주었다. 두 사람은 90년대 초부터 알고 지낸 친밀한 사이.
이 문건이 팩스로 전달된 직후부터 이차장에 의해 사라진 시점 사이에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부총재는 “문건을 전혀 본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이부총재의 비서관도 “이부총재에게 보고하기 위해 편철해 놨는데 문건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7월초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해 이부총재, 이필곤 전서울시행정부시장, 중앙일보 이모차장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문기자 역시 “문건을 보낸 뒤의 일은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
정의원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정의원은 “문건을 건네받을 때 이차장이 ‘이부총재가 나를 불러 이강래전수석이 만든 문건인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달라고 해 고쳐줬다. 나중에 이부총재로부터 이 문건이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차장은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 내용상 국정원이나 청와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은 했다. 국정원에서 전임원장 예우차원에서 보내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며 정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10월26일 문기자가 문건작성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국민회의는 27일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강래전수석은 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회의는 한발 나아가 “문기자가 문건작성 과정에서 회사 간부와 상의했으며, 중앙일보 모간부를 통해 정의원에게 유출됐다”며 정의원-중앙일보 커넥션에 공격의 초점을 맞췄다. 국민회의측은 문기자의 문건이 중앙일보 간부를 통해 정의원에게 전달됐다며 복수의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이종찬부총재도 이날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기자가 문건작성 과정에서 회사 간부와 상의했다 는 말을 했고 이를 녹취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중앙일보측도 이를 부인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문건사건은 최근의 중앙일보사태와 겹쳐 ‘역공작설’로 비화되기도 했다.
국민회의측의 중앙일보 개입주장은 하루 뒤인 10월28일 문건전달자가 평화방송 이도준차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이날 국민회의 이영일대변인 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회의는 중앙일보에 사과했다.
이차장을 문건유출자로 지목한 이부총재측은 이날 오전 이차장을 불러 “몇가지 확증이 있다”며 문건 유출 경위를 캐물었다. 이 과정에서 이차장이 정의원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차장은 문건유출 사실을 부인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를 찾아가 문건제보자가 자신임을 밝히고 “정의원이 너무 앞서가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차장은 이 자리에서 정의원으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은 사실도 밝혔다. 이부총재측을 비롯한 여권에서 이미 문건제보자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자 정의원은 이날 밤 문건제보자가 이차장이라는 사실을 전격적으로 공개, 선수를 쳤다.
이차장은 다음날인 10월29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후배 기자들로부터 공세적인 질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기자회견 중 “정의원과 금전관계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으나 이차장은 “없다”고 거짓말했다. 한나라당 역시 이날 총재단회의에서 정의원이 이차장에게 돈을 준 사실을 놓고 대책을 논의했으나 이를 먼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0월30일 여권 관계자의 이름을 빌려 문건제보 전에 이차장이 정의원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초 언론장악음모 의혹으로 시작됐던 이번 사건은 ‘정보매수’ 공방과 ‘정치기자’ 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차장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얻은 정보를 정의원에게 제공해온 것으로 밝혀져 ‘프락치’논쟁까지 일고 있다.
문건작성과 유출경위 등 사건의 윤곽은 대강 드러났으나 이 과정에서 음모 폭로 거짓말 말바꾸기 덮어씌우기 등이 난무했다. 여권은 여러차례 정의원의 음모설을 제기했고 한나라당과 정의원은 문건작성자와 전달자가 드러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권의 언론공작음모설을 주장했다.
“감옥에 갈 각오하고 오늘 오후에 터뜨립니다.” K변호사가 묻지도 않았는데 정의원이 대뜸 먼저 말을 꺼냈다. 특유의 쾌활한 웃음도 잊지 않았다.
이날 오후 대정부 질문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 단상에 오른 정의원은 준비한 대로 ‘성공적 개혁 추진을 위한 외부환경정비 방안’이라는 A4용지 7쪽 분량의 문건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며 여권의 언론장악 음모가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문건의 내용은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빅3’ 신문 중 하나를 친여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등 사실이라면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정의원은 “문건작성자는 이강래 전청와대정무수석이며 여권 핵심실세를 거쳐 김대중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본회의장 안이 크게 술렁거렸다. 국민회의 의석에서 “조작의 대가인 정의원의 자작극”이라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문건작성자로 지목된 이강래전수석이 곧바로 문건작성 사실을 부인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국민회의는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문건임에도 작성날짜가 없고 맞춤법이 틀린 곳이 7곳이나 된다는 점 등을 들어 완전히 조작된 문건이라고 맞섰다.
정의원의 폭로 직후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의 보좌관인 최상주씨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중앙일보 문일현기자가 4개월 전 팩스로 보내온 문건과 똑같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최보좌관은 10월26일 베이징에 있는 문기자와 세 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통해 문기자가 이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확인받았다. 최보좌관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듣고 대반격의 실마리를 잡은 국민회의 지도부는 “정의원이 드디어 걸려들었다”며 역공을 취했다.
언론장악문건 파동은 6월20일 평소 이부총재와 가까웠던 문기자가 이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서 비롯됐다. 문기자는 92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부총재 진영을 맡아 취재하면서 이부총재와 가까워졌고 그 이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98년 3월부터 3개월간 국민회의를 출입했던 문기자는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이부총재가 국회 정보위 회의 참석을 위해 국회에 왔을 때 이부총재의 승용차에 올라타 밀착 취재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문기자는 6월20일, 국정원장직에서 퇴임한 이부총재와 전화통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부총재가 당시 정국을 걱정하는 얘기를 듣고 문제의 문건을 작성해 6월24일 서울 여의도의 이부총재 사무실에 팩스로 보내 주었다. 문건에는 3장 분량의 사신(私信)도 첨부돼 있었다. 이부총재의 사무실을 자주 드나들던 평화방송 이도준차장은 7월초 이곳을 찾아갔다가 신원철비서관의 책상에서 문제의 문건을 발견했다. 내용을 대충 훑어본 이차장은 “5공 때의 보도지침사건을 능가하는 엄청난 특종”이라는 생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슬그머니 팩스용지로 된 문건 원본을 들고나온 이차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발신지번호가 찍힌 윗부분을 가린 채 문건을 복사했다고 검찰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이차장은 곧바로 회사 간부에게 문건입수 사실을 보고하고 기사화하려 했으나 출처가 불분명하고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사화는 보류됐다. 9월초 국회 의원회관 정의원 사무실에 들른 이차장은 정의원에게 이 문건을 복사해 주었다. 두 사람은 90년대 초부터 알고 지낸 친밀한 사이.
이 문건이 팩스로 전달된 직후부터 이차장에 의해 사라진 시점 사이에 어떻게 활용됐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부총재는 “문건을 전혀 본 사실이 없다”고 밝히고 있고 이부총재의 비서관도 “이부총재에게 보고하기 위해 편철해 놨는데 문건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7월초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해 이부총재, 이필곤 전서울시행정부시장, 중앙일보 이모차장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던 문기자 역시 “문건을 보낸 뒤의 일은 전혀 모른다”고 말한다.
정의원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정의원은 “문건을 건네받을 때 이차장이 ‘이부총재가 나를 불러 이강래전수석이 만든 문건인데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고쳐달라고 해 고쳐줬다. 나중에 이부총재로부터 이 문건이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차장은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다. 내용상 국정원이나 청와대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은 했다. 국정원에서 전임원장 예우차원에서 보내온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며 정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10월26일 문기자가 문건작성자라는 사실을 확인한 국민회의는 27일 이 사실을 공개했고 이강래전수석은 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회의는 한발 나아가 “문기자가 문건작성 과정에서 회사 간부와 상의했으며, 중앙일보 모간부를 통해 정의원에게 유출됐다”며 정의원-중앙일보 커넥션에 공격의 초점을 맞췄다. 국민회의측은 문기자의 문건이 중앙일보 간부를 통해 정의원에게 전달됐다며 복수의 실명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이종찬부총재도 이날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에서 “문기자가 문건작성 과정에서 회사 간부와 상의했다 는 말을 했고 이를 녹취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기자는 이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중앙일보측도 이를 부인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문건사건은 최근의 중앙일보사태와 겹쳐 ‘역공작설’로 비화되기도 했다.
국민회의측의 중앙일보 개입주장은 하루 뒤인 10월28일 문건전달자가 평화방송 이도준차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일보는 이날 국민회의 이영일대변인 등을 명예훼손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국민회의는 중앙일보에 사과했다.
이차장을 문건유출자로 지목한 이부총재측은 이날 오전 이차장을 불러 “몇가지 확증이 있다”며 문건 유출 경위를 캐물었다. 이 과정에서 이차장이 정의원으로부터 1000만원을 받은 사실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차장은 문건유출 사실을 부인한 뒤 한나라당 이회창총재를 찾아가 문건제보자가 자신임을 밝히고 “정의원이 너무 앞서가는 것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차장은 이 자리에서 정의원으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은 사실도 밝혔다. 이부총재측을 비롯한 여권에서 이미 문건제보자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자 정의원은 이날 밤 문건제보자가 이차장이라는 사실을 전격적으로 공개, 선수를 쳤다.
이차장은 다음날인 10월29일 서울 여의도관광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후배 기자들로부터 공세적인 질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기자회견 중 “정의원과 금전관계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으나 이차장은 “없다”고 거짓말했다. 한나라당 역시 이날 총재단회의에서 정의원이 이차장에게 돈을 준 사실을 놓고 대책을 논의했으나 이를 먼저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10월30일 여권 관계자의 이름을 빌려 문건제보 전에 이차장이 정의원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사실이 공개되면서 당초 언론장악음모 의혹으로 시작됐던 이번 사건은 ‘정보매수’ 공방과 ‘정치기자’ 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차장은 오래 전부터 자신이 얻은 정보를 정의원에게 제공해온 것으로 밝혀져 ‘프락치’논쟁까지 일고 있다.
문건작성과 유출경위 등 사건의 윤곽은 대강 드러났으나 이 과정에서 음모 폭로 거짓말 말바꾸기 덮어씌우기 등이 난무했다. 여권은 여러차례 정의원의 음모설을 제기했고 한나라당과 정의원은 문건작성자와 전달자가 드러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여권의 언론공작음모설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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