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시섹이 만든 와인들. 왼쪽부터 피에스아이, 플로르 드 핑구스, 핑구스.[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시섹의 삼촌은 와인메이커였다. 시섹은 방학이면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 가 삼촌을 돕곤 했다. 삼촌 이름도 피터여서 숙모는 시섹을 만화에 나오는 펭귄 캐릭터의 이름을 따 핑구스라 불렀다. 삼촌을 도우면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시섹은 대학에서 포도 재배와 양조를 공부했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삼촌이 투자한 스페인 와이너리에서 일했다. 삼촌의 와이너리는 스페인 내륙 한가운데 위치한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에 있었다.
리베라 델 두에로는 늙은 템프라니요(Tempranillo) 포도나무가 많은 곳이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늙은 나무가 생산하는 포도 양은 매우 적지만, 그 맛과 향은 탁월하다. 이런 매력에 사로잡힌 시섹은 평균 수령 70년이 넘는 포도나무가 식재된 리베라 델 두에로의 밭 4ha(4만㎡)를 구입했다. 이 밭은 단 한 번도 농약이나 살충제를 쓴 적도, 인위적으로 물을 댄 적도 없는 곳이다.
이 밭에서 생산한 첫 번째 와인이 핑구스 1995년산이다. 무명이 만든 와인이었지만 시장에 나오자마자 병당 가격이 200달러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핑구스 가격은 우리나라에서 병당 약 300만 원 한다. 찾는 이는 많은데 4ha 밭에서 연간 4000병 남짓 생산되니 당연한 일이다. 수요 충족을 위해 출시한 세컨드 와인 플로르 드 핑구스(Flor de Pingus)는 평균 수령 35년인 템프라니요로 만든다. 이 와인 가격도 병당 30만 원 정도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와인메이커 피터 시섹.[사진 제공 · 씨에스알와인(주)]
그래선지 PSI를 맛보면 순수하면서도 신선한 향과 힘찬 기운이 입안을 채운다. 희망과 패기가 가득한 맛이다. 이에 비해 플로르 드 핑구스의 진한 과일향과 농축미에서는 중년의 완숙미가, 핑구스의 우아함과 정교함에서는 노년의 품격이 느껴진다.
그는 와인을 만들면서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한다. 인간이 기계와 화학약품으로 자연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며, 와인은 ‘상품’이 돼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자연을 잘 관리하고, 그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오롯이 담아야 참된 와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