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
[사진 제공·세종문화회관]
최근 이슬의 다의적 이미지를 무대에 올린 음악극 ‘적로’가 주목받고 있다. 적로는 방울져 떨어지는 이슬(滴露), 악기를 통해 흘러나온 입김에 의한 물방울(笛露), 예술가의 혼이 서린 악기 끝의 핏방울(赤露) 등 다양한 의미를 포함한다.
‘적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대금 명인 박종기(1880~1947), 김계선(1891~1943)이 주인공이다. 청아하지만 구슬픈 소리를 가진 대금은 리코더나 단소처럼 앞으로 들고 부는 게 아니라 옆으로 들고 연주한다. 대금은 대나무에 뚫린 구멍에 입김으로 바람을 넣어 소리를 낸다. 그래서 같은 악기라도 연주자 기량에 따라 소리가 천차만별이다.
얼핏 ‘적로’는 빛나는 두 대금 명인이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견디고 득음하는, 그들의 불꽃같은 예술적 삶을 그렸다고 예상하기 쉽다. 물론 두 대금 명인이 등장하고 그들이 실제로 남긴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기는 하지만, ‘적로’는 산월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극적으로 가공한 꿈같은 하룻밤 이야기다. 극작가 배삼식은 필멸(必滅)하는 시간 앞에서 불멸(不滅)을 꿈꾸는 인간의 ‘가망 없는 병(病)’을 몽환적으로 펼쳐 보인다. 인생사는 ‘달빛에 맺히고 새벽에 내렸다가 햇빛에 돌아가는 한 방울 이슬’이라는 대목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작곡가 최우정은 음악적으로 놀라운 시도를 했다. 같은 전통 한국음악 범주이지만 다른 정악(정가)과 속악(판소리)을 한 이야기에 나란히 겹쳐 선보였다. 또한 작창과 작곡,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서양음악과 한국음악 등의 완고한 경계를 예술이란 이름으로 허물어뜨렸다. 배삼식과 최우정이 만든 음악극 ‘적로’는 한국어 가사 전달이 가장 잘된 가창으로, 의미 있는 한국적 음악극임에 틀림없다.
다만 철학적 가사와 입체적 음악이 주는 깊은 울림은 관객에게 전달되기 어려웠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구슬임에는 틀림없는데 제대로 꿰어지지 않았다. 악사의 공간을 마련하려고 무대는 조각나고, 배우들의 제한된 동선은 음악극이라는 장르가 무색할 정도로 단순하다. 흥해야 할 때 신명이 나지 않아 아쉽다. 눈도 호강해야 귀의 호강이 빛난다. 옆 사람 어깨에 기대 잠을 자는 한복 입은 어린 학생(한복 착용 시 95% 할인)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