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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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US여자오픈 우승 박성현-어머니와 이름 두 차례 눈물

  • 김종석 동아일보 기자 kjs0123@donga.com

    입력2017-07-25 15: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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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사석에서 만난 박성현(24)은 학창 시절 추억 하나를 꺼냈다.

    “중학생 때 골프대회에 나가 홀인원을 했는데 부상으로 박카스 2000병을 주더라고요. 그걸 전교생에게 돌렸더니 다들 저만 보면 ‘박카스’라고 불렀어요.”

    대한골프협회 자료를 살펴보니 2007년 경북 구미 현일중 2학년이던 박성현은 제주 오라컨트리클럽(CC)에서 열린 박카스배 전국시도학생골프팀선수권대회에서 홀인원을 했다.

    평생 한 번 하기도 힘든 홀인원 덕에 학교에선 ‘박카스걸’로 불린 그였지만 정작 박성현은 그즈음 스스로에게 ‘남달라’라는 별명을 붙였다. “정상에 오르려면 남과 달라야 한다”는 교사의 말에 감명받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캐디백에도 ‘남달라’라는 문구를 새기고 늘 비범함을 좇았다.

    그랬던 박성현이 여자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 무대에서 정상에 우뚝 섰다.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가볍게 한 손으로 들어 보인 그의 얼굴은 해맑게 빛났다. 평소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그도 남다른 승리의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박카스’와 ‘남달라’

    박성현은 7월 17일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제72회 US여자오픈챔피언십에서 최종 합계 11언더파로 우승했다. 이 대회는 LPGA투어 5대 메이저 대회 가운데 최고 권위를 자랑한다. 총상금도 역대 여자골프 최대 규모인 500만 달러(약 56억1200억 원)이며 우승 상금 역시 역대 최고인 90만 달러(약 10억1000만 원)다.

    특히 대회가 열린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내셔널골프클럽(GC) 소유주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회 2~4라운드를 직접 참관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 관심이 집중됐다.

    올해 LPGA투어에 데뷔해 첫 승을 US여자오픈에서 신고한 박성현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립박수까지 받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한국 선수가 이 대회에서 챔피언이 된 것은 1998년 박세리가 처음 스타트를 끊어 이번이 열 번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골프와 처음 인연을 맺은 박성현은 2007년 골프를 계속하고자 서울 대청중에서 현일중으로 전학을 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0년 현일고 2학년 때 국가대표가 됐지만 갑작스럽게 드라이버 입스(불안 상태)가 찾아와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출전에 실패하는 아픔을 겪었다. 2011년 프로 데뷔 후에도 부진은 여전했고, 맹장수술과 교통사고까지 겹치는 등 악재에 허덕였다. 박성현은 “너무 답답하고 정말 미칠 것 같은 때였다. 티샷 어드레스를 하면 안 맞을 것 같은 생각부터 들었다”고 회고했다. 한 홀에서 OB(Out of Bounds)가 서너 개 나고 파5 홀에서 12, 13타를 치는 일도 많았다.

    골프를 관둘까도 생각했던 박성현.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만이 살길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손바닥이 찢어지고 굳은살이 박이는 일이 수도 없이 되풀이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중3 때 같이 운동하던 1년 후배 남학생의 아버지에게 무료 레슨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힘들고 고단해도 언젠가 성공한다는 믿음만큼은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고생하며 뒷바라지하는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도 공 한 개라도 더 치고 훈련을 마치는 자극제가 됐다.

    박성현은 2013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2부 투어 상금왕에 올라 연말 시상식에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지만 여전히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14년 KLPGA 1부 투어에 뛰어든 박성현은 2015년 투어 첫 승을 한국 최고 메이저 대회인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거두며 화려하게 떠올랐다. 남과 다르고자 쏟았던 노력이 마침내 빛을 보게 된 순간이었다. 지난해에는 KLPGA투어에서 7승을 거둬 다승왕,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등을 휩쓸며 국내 필드를 지배했다.

    171cm, 60kg의 호리호리한 체구에도 280야드(약 256m)를 넘나드는 장타는 트레이드마크다. 박성현은 “내가 통뼈다. 태권도 공인 3단인 엄마를 닮아 힘을 쓸 줄 아는 것 같다”며 웃었다. 다운스윙에서 골반 턴이 다른 선수보다 많이 돼 강력한 임팩트를 통해 폭발적인 비거리가 나온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박성현의 LPGA투어 진출 경로도 특이하다. 지난해 박성현은 LPGA투어 7개 대회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상금 랭킹 20위권에 해당하는 70만 달러(약 7억8500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LPGA투어 상금 랭킹 40위 이내 선수에게는 다음 시즌 출전권이 부여되는 특전을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 누렸다.



    정면 돌파하는 ‘닥공’ 플레이

    큰 기대를 품고 뛰어든 LPGA투어에서 박성현은 올 상반기 무관에 그쳤다.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내긴 했어도 아쉬움이 컸다. 캐디와 호흡도 문제였고, 코스 적응력도 부족했다. 박성현의 또 다른 별명은 ‘닥공’(닥치고 공격)이다. 돌아가는 대신 공격적으로 정면 돌파하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팬들이 붙여줬다.

    하지만 US여자오픈에서 박성현은 때론 ‘닥공’이 아니라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신중한 공략을 펼쳤다. 그린이 솥뚜껑 모양으로 솟아올라 있고, 그린 주변 까다로운 러프에 워터 해저드가 많아 자칫 무리한 플레이가 화를 부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평소보다 20야드 가까이 줄어든 260야드(약 238m) 정도를 기록했지만, 페어웨이와 그린 적중률을 모두 80% 가까이로 끌어올렸다. 약점으로 지적된 퍼트도 결정적 고비마다 공을 컵에 쏙쏙 떨어뜨릴 만큼 향상됐다. 특히 마지막 날 18번 홀(파5) 네 번째 어프로치샷은 백미였다. 오르막 라이(공이 발보다 높은 상황)에 잔디 상태도 까다로웠지만 4~5차례 빈 스윙 후에 친 공이 컵 50cm 안쪽으로 붙었고 천금 같은 파세이브로 승리를 굳혔다. 남 부러워할 장타에 정교한 쇼트게임까지 장착하면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제 박성현은 평생 한 번뿐인 LPGA투어 신인상을 일찌감치 굳혔다. 국내에서는 신인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KLPGA투어 20개 대회에서 약 13억 원의 상금을 받았다. 올해에는 LPGA투어 14개 대회 만에 16억4000만 원을 벌어들여 상금 랭킹 2위까지 점프했다.

    박성현은 남다른 외모에 실력까지 겸비해 ‘움직이는 광고판’으로 불린다. 그를 후원하는 업체만도 하나금융그룹, LG전자, 대한항공, 아우디, 테일러메이드, 빈폴 등 10개에 육박한다. 원지현 테일러메이드코리아 마케팅부장은 “승부사 기질과 포스가 박성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보이시한 외모지만 귀엽고 친근한 여성미까지 지녀 반전의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US여자오픈 정상 등극을 계기로 박성현의 상품성은 더욱 뛰게 됐다.

    좀처럼 우는 법이 없는 박성현은 US여자오픈에서 두 차례 눈물을 내비쳤다. 우승 직후 항상 그림자처럼 자신의 뒤를 따르는 어머니와 포옹할 때였다. 두 번째는 우승 트로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때였다.

    “엄마의 희생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필드의 전설 옆에 내 이름이 나란히 새겨지다니, 아직도 구름 위를 날아가는 것 같고 실감이 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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