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내 집 짓기 열풍을 불러온 땅콩집.
최근 ‘집 짓기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내놓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제 겨우 4년 된 셈이다. 건축가 이현욱 씨가 고(故) 구본준 ‘한겨레’ 기자와 함께 경기 용인에 집을 짓고, 그 뒷얘기를 담아 책을 펴낸 게 2011년 2월이니 말이다. 당시 이들은 자신들이 지은 집에 ‘땅콩집’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필지 한 개에 단독주택 두 채가 나란히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껍데기 안에 땅콩 두 개가 들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땅부터 인테리어까지 3억으로’라는 부제를 붙인 책 ‘두 남자의 집 짓기’(마티)를 통해 이 집을 얼마나 금세 지었는지, 그런데도 얼마나 튼튼하고 아름다운지, 게다가 아파트를 벗어나 ‘내 집’에서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등을 만천하에 ‘자랑’했다. 이 ‘성공담’이 세상을 움직였다. 도심 아파트에서는 전세 살기에도 부족한 돈으로 앞마당과 다락을 갖춘 2층집을 소유할 수 있다는 데 놀란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단독주택살이’에 뛰어든 것이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2010년대를 ‘그동안 억눌려 있던 접지(接地) 욕망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분출된 시기’로 규정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이 무렵부터 “일부 사람은 제주도에 가서 올레길을 걸었고, 다른 일부는 카페에서 길거리 자리에 앉았으며, 또 다른 일부는 단독주택과 전원주택을 찾아 떠났다.”
부동산 전문가 남우현 씨는 거침없이 상승곡선을 그리던 부동산시장이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침체한 반면,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폭등한 것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서울 강남구 율현동(방죽마을) 단독주택에서 사는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도 이런 사례다. 정 교수는 “2007년 경기 일산에서 서울 강남으로 이사한 뒤 2년마다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할 수 없어 주택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처음엔 자녀 통학 등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마당 있는 집에서 작게나마 텃밭을 일구고, 강아지와 고양이를 기르며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는 “고3 아들도 ‘주택에서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할 만큼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재혁 건축가가 설계한 경기 양평의 단독주택. 건축주 아빠의 꿈인 넓은 책장, 엄마의 바람인 좋은 주방, 두 아이가 원한 실내 미끄럼틀과 다락방을 두루 갖췄다.
서울 강북에서 전세를 살다 경기 양평에 단독주택을 지어 이사한 김옥인(40·가명) 씨도 전세금의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탈(脫)아파트’를 선택한 이다. 그는 “2년 전 전세계약이 만료됐을 때 집주인이 매매가의 거의 90%를 전세금으로 요구했다. 알고 보니 그도 내 돈을 받아 자기 사는 집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는 형편이었다. 2년 후 이 돈을 제대로 돌려받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렇게 전세금에 동동거리며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 새로운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지금 김씨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더는 집값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동안 신문 부동산면을 볼 때마다 ‘언제 집을 사야 하나’ 계속 마음을 졸였다. ‘지금이 주택 마련의 적기’라는 기사를 보면 당장 대출을 받아야 하나 고민하고, 그러다 폭탄을 떠안는 거 아닐까 불안했다. 그런데 여기 살면서 아파트 시세를 아예 신경 쓰지 않게 됐다. 정말 중요한 건 어떻게 사느냐(居住)인데, 왜 언제 살지(買入)만 고민했나 싶더라”고 했다.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김씨는 “일단 1, 2층 공간을 마당처럼 튼 형태로 집을 지었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벽을 세워 방을 만들어줄 생각이다. 이렇게 삶의 모습이 변화하는 데 따라 공간을 고쳐가며 살 수 있는 게 단독주택의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단독주택 열기의 발화점이 된 땅콩집은 이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다. 나란히 붙어 있는 두 집 주인이 토지와 건물을 공동으로 소유해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있는 것. 집 안팎을 고치거나 집을 담보로 대출받으려면 상대 동의가 필요하고, 매매도 쉽지 않다. 사생활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은 땅콩집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한 필지에 한 채의 집만 있는 이른바 ‘외콩집’ 형태의 단독주택이 인기를 모았다. 땅콩집을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해 기존 연립주택처럼 1개 건물에 3~4가구가 함께 살되, 한 가구가 수직적으로 지하공간부터 다락방까지 사용하는 이른바 ‘완두콩집’ 형태도 지어졌다.
서울 종로구 누하동에는 대지가 34.53㎡(10.44평)에 불과한 ‘몽당(夢堂)주택’도 있다. 여럿이 집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건축비를 낮추는 대신, 아예 집 크기를 줄인 집이다. ‘집을 꿈꾸다’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은 이 주택의 한 층 면적은 20㎡(약 6평)가 채 안 된다. 강영란 아이디어5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저서 ‘살고 싶은 집 짓고 싶은 집’(한빛라이프)에서 ‘몽당주택은 좀 줄이면서 덜어내며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집’이라고 정의했다.
김재관 건축가가 서울 종로의 옛집을 고쳐 지은 ‘와룡산방’ 외부. 와룡산의 용머리 격인 바위를 집 안에 들이고 있어 이런 이름을 붙였다.
건축가들은 지난 4년 사이 우리나라 단독주택의 트렌드는 이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 같이 땅콩집을 짓는 게 아니라 누군가는 경기 양평 같은 ‘시골’ 마을에 내려가 아이들이 뛰놀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을 짓고, 또 누군가는 전원생활과 도시생활 사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경기 용인에 다소 작은 집을 지으며, 도심 한복판에 더 작은 집을 짓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서울에서는 개성과 창의력을 더해 과거의 다가구주택과는 다른 ‘나만의 집’을 짓되 일부 공간을 상가나 사무공간으로 활용해 임대수익을 올리는 형태의 집도 많아지고 있다(상자기사1 참조).
건축가 이일훈 씨는 건축평론가 에드윈 헤스코트의 책 ‘집을 철학하다’에 쓴 추천사에서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집은 아무리 호화롭다 해도 안식처 아닌 피난처에 가깝다. 집 짓기 전에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것이 건축’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집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이 사는 공간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 최근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재혁 에이디모베 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하는 건축주는 대부분 1975년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며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면서도 남과 똑같은 집이 아닌 ‘우리 가족만의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이들은 20대 시절 ‘X세대’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저마다의 개성과 창의성으로 우리나라 대중소비문화를 선도했다. 그들이 중년이 돼 이제는 주거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모도 이런 자녀의 선택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파트 신화’에 빠져 있던 베이비붐 세대도 최근 단독주택 건축에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대도시에 사는 베이비붐 세대 가운데 13.9%가 10년 내 농촌으로 이주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4월 국토연구원이 국민 1590명을 대상으로 현재 및 미래(30년 뒤) 거주 희망 주택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30년 후 아파트에 거주하겠다는 응답은 28.7%에 불과한 반면,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는 응답은 41%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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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인, 한국집
건축가인 김재관 무회건축연구소 대표는 “옛날 같으면 어떻게든 헐고 싶어 했을 서울 구도심의 오래된 집을 고쳐 살려고 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고 밝혔다(상자기사2 참조). 서울 종로구에 건평 132㎡(40평) 안팎의 단독주택을 짓고 있는 김호철(42·가명) 씨도 “부모세대 때는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사회적 신분의 표식처럼 여겨진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 또래는 ‘어디’ 사는지보다 ‘어떻게’ 사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집이 다소 작아도 자신의 색깔이 배어 있으면 ‘폼 난다’고 말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자기 철학과 개성을 담은 집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실은 우리 고유의 정서라고 말한다. 퇴계 이황이 직접 도산서원을 설계한 데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가 만년에 저술한 경제정책서 ‘임원경제지’에도 집 짓기에 대한 글이 적잖다. 이 내용만 따로 모아 묶은 책 ‘산수간에 집을 짓고’(돌베개)에는 ‘나무는 일정한 순서대로 심지 않고, 암석은 위치를 규칙적으로 배열하지 않으며, 가옥은 지나치게 크고 넓게 짓지 않고, 마음은 세상사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 등 그가 밝힌 좋은 주거의 조건이 담겨 있다. 서유구 선생은 이 책에서 ‘재물과 이익이 몰려드는 곳은 거처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된 근대화는 숱한 사람이 ‘재물과 이익이 몰려드는’ 서울에 모여 살도록 만들었다. 서울 인구는 1955년 157만 명에서 70년 543만 명, 80년 836만 명으로 급증했고 80년대 후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이 과정에서 만성적 주택 부족 문제의 해결책으로 아파트 건설이 추진됐다. 대한주택공사가 발간한 ‘대한주택공사 40년사’는 62년 건설된 마포아파트에 대해 ‘중산층을 위한 주택공급 정책의 산물’이라고 소개한다. 이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식 가옥을 철거하고 도심 환경을 ‘정비’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고급스럽고 현대화된 주거의 표상이 됐고, 김재관 대표에 따르면 “주택은 과거이자 청산의 대상, 아파트는 미래이자 성공의 상징”이라는 구도가 만들어졌다.
정석 교수는 저서 ‘나는 튀는 도시보다 참한 도시가 좋다’(효형출판)에서 이 변화가 1990년대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회고했다. ‘집값이 폭등해 중산층 대란이란 말이 나올 지경이었고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곳의 신도시 개발이 단기간에 이뤄지기도 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주택 공급을 장려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이 시행됐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국 주택에서 아파트의 비중이 1970년 0.77%, 85년 13.46%, 2000년 47.73%로 급증했고 아파트가격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2006년 1월 한 일간지에는 1996년 초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팔고 성북구 성북2동 단독주택으로 이사 간 강모(66) 씨의 사연이 실렸다. ‘(강씨는) 집값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 아파트를 판 돈(당시 6억3000만 원)에다 2억 원을 보태 산 집(대지 120평)을 현 시세 11억 원에 팔 경우, 그 돈으로 강남 40평형대 아파트조차 사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씨가 10년 전에 판 아파트 값은 현재 22억 원이다’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파트 성공’ 신화는 막을 내리는 분위기다. 더불어 지난 50년간 잊혔던 ‘내 집’ ‘내 공간’에 대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건축가인 조남호 솔토지빈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저서 ‘집짓기 바이블’(마티)에서 ‘아파트는 전자제품처럼 공신력 있는 대기업으로부터 ‘구매하는 것’이지만 단독주택은 스스로 ‘짓는 일’이 된다. 집을 짓는 일은 한 가족이 살아온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일이다. 더 가슴 벅차게 하는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흐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집이 ‘사는 것’에서 ‘사는 곳’으로 거듭나게 될까. 지난 4년간 진행된 변화보다 앞으로 이어질 변화가 더 궁금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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