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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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용 김치 먹고 인삼차 마시고

한국 우주인 과학실험 임무 18가지 선정 … 소음 방지 귀마개는 산업현장서 실용화 유력

  •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입력2007-08-22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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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용 김치 먹고 인삼차 마시고

    소유즈 우주선이 우주정거장(왼쪽)에 도킹하기 위해 접근하고 있다.

    우주선이나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무는 우주인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바로 소음이다. 수많은 첨단장비가 가동되면서 갖가지 소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상에서 쓰이는 귀마개를 하면 동료 우주인의 목소리까지 들리지 않을 터. 많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우주인에게는 불편하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덕주 교수팀은 기계음은 차단되고 말소리는 들리는 ‘우주인용 귀마개’를 개발하고 있다. 한국 첫 우주인은 우주에서 이 귀마개의 성능을 테스트할 예정이다.

    2008년 4월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호(號)를 타고 ISS에 올라가는 한국 우주인은 우주인용 귀마개 테스트를 비롯한 18가지 과학실험을 수행하는 ‘미션’을 받았다. 한국 우주인 후보 고산, 이소연 씨는 과학실험 수행을 위해 8월13일부터 대전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고 있다.

    우주에서는 소음뿐 아니라 식사도 스트레스다. 우주식품은 대부분 냉동건조된 상태라 지상의 음식보다 맛이나 향이 덜하다. 게다가 스파게티, 치킨 등 외국 음식이 대부분이다.



    한국식품연구원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 우주인이 ISS에 가서도 먹을 수 있게 김치와 인삼차 같은 전통식품을 우주식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우주에서는 미각이 둔해지고 칼슘이 부족해지기 때문에 우주식품에는 향 성분과 칼슘을 추가해야 한다. 우주인 후보 이소연 씨는 “평소 요리하기나 맛있는 것 먹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ISS에서 테스트할 우주식품이 특히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우주에서 하는 실험이 우리 산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주인용 귀마개와 우주식품은 18가지 과학실험 중에서도 실용화에 특히 가깝다고 본다. 우주인용 귀마개는 테스트 결과가 좋으면 소음이 심한 공장 등 산업현장에서 쓰는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우주식품이 성공하면 앞으로 외국 우주인도 ISS에서 한국식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ISS는 미세먼지까지도 통제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첨단장비가 모여 있어 아주 작은 먼지도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환경은 반도체나 생명과학처럼 깨끗한 연구공간이 필요한 분야에 안성맞춤.

    우주정거장 반도체·생명과학 최적 연구공간

    우주용 김치 먹고 인삼차 마시고

    우주에서 물을 마시는 데 필요한 장치(위)와 대소변을 볼 때 필요한 장비.

    또 우주공간은 무중력 상태라는 특수한 환경이기 때문에 기계나 세포가 지상에서와 다르게 작동한다. 이를 응용해 첨단소재나 신약 개발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것.

    한국 우주인은 국내 생명공학 벤처기업 바이오트론이 개발한 무게 3~4kg짜리 세포 배양용 소형 생물배양기를 가져간다. 우주에서 세포가 자라는 모양은 생체 내에서와 비슷해 이를 분석하면 신약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지구에서 세포를 기르면 평평하게 자라지만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는 공처럼 3차원 모양이 된다.

    수십억 년 동안 중력이 작용하는 공간에서 진화해온 생물체가 갑자기 무중력 상태에 오래 노출되면 노화가 빨리 일어난다. 지상에서는 활동하지 않던 유전자가 우주에선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우주인은 초파리를 무중력 상태에 적응시킨 다음 지상으로 가져올 예정이다. 건국대 조경상 교수팀은 이 초파리를 분석해 어떤 유전자가 노화를 촉진하는지 밝혀 노화방지 약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우주인 생활모습과 실험내용 CD로 제작

    광물의 일종인 제올라이트는 화학공정이나 오염물질 제거 등에 많이 쓰이지만 모양과 크기를 균일하게 만들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중력 때문이다. 따라서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는 균일한 결정으로 만들 수 있다. 이를 유리에 코팅하면 독특한 광학적 성질을 나타낸다. 서강대 윤경병 교수팀은 균일한 제올라이트로 지상에선 만들 수 없는 첨단 전자소재를 개발할 계획이다.

    한국 우주인이 수행할 총 18가지 과학실험 중 13가지는 산업체와 대학, 연구소에서 제안한 전문실험이다.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지난해 ‘우주인임무개발위원회’를 가동해 산업적으로 응용할 수 있거나 과학적으로 의미가 큰 실험들을 선정한 것.

    나머지 5가지는 초·중·고등학생이 제안한 교육실험이다. 학생들이 제안한 실험 중 교육적 활용도가 높은 것들이 채택됐다. 간단해 보이지만 과학 꿈나무들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우주인 후보 고산 씨는 “우주인의 꿈을 가진 어린이들이 제시한 실험이기 때문에 교육실험에 특히 관심이 쏠리고 좀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상에서는 물이 표면부터 언다. 한겨울 강 속에서 물고기가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 그러나 무중력 공간인 우주에서는 물이 어디서부터 얼지 지금까지 연구된 적이 없다.

    스케이트 선수가 팔을 오므리고 회전하면 벌리고 회전할 때보다 속도가 더 빨라진다. 각운동량 보존법칙 때문이다. 이런 물리학 법칙들이 우주에서 어떻게 달라질지도 흥미롭다.

    무중력 상태인 우주에서는 보통 펜으로 글씨를 쓰지 못한다. 중력이 있어야 잉크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위아래에 자석을 넣거나 작은 공기 압축기를 붙여 잉크가 나오게 하는 ‘우주용 펜’을 발명해 우주에서 직접 시험해볼 것을 제안했다.

    과학기술부는 “한국 우주인이 귀환하면 이들 실험 내용과 우주인의 생활 모습을 담은 CD를 제작해 전국 초·중·고교에 과학교육 자료로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우주인이 ISS에 머무는 기간은 8일. 그동안 18가지나 되는 과학실험을 모두 해내기가 쉽지 않을 듯 보인다. 그래서 실험 대부분이 복잡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게 설계됐다. 과학실험 제안자들은 짧은 기간에 필요한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도록 우주용 실험키트를 만들었다. 우주인 후보들은 현재 그 작동법과 원리를 숙지하고 있다.

    8일간의 ISS 체류를 위해 한국이 러시아에 지급하는 비용은 자그마치 180억원이다. 하루 체류 비용만도 약 22억5000만원에 이른다. 그만큼 우주인의 과학실험 임무 수행에 대한 기대가 크다.

    우주인임무개발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연세대 김석환 교수는 “21세기 중후반에는 산업적, 경제적으로 우주를 가장 잘 활용하는 나라가 앞서가게 될 것”이라며 “한국이 우주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18가지 과학실험 임무를 최종 선정했다”고 말했다.

    ▼ 한국 우주인이 수행할 과학실험
      우주에서 실험할 내용 실험 제안 기관 응용 방안 및 교육적 활용도
    전문실험 13가지 식물 발아 생장 및 변이 관찰 한국원자력연구원 우주식량 생산 시스템 개발
    소형 생물배양기로 세포

    배양
    ㈜바이오트론 질병 치료제 개발
    초파리의 중력 반응 및 노화 유전자 탐색 건국대 무중력 적응 방법 개발, 노화방지 메커니즘 연구
    안압과 심장의 변화 공군항공우주의료원 장기간 우주비행 대응책 개발
    크기와 모양 균일한 제올라이트 합성 서강대 첨단 광학전자소재 개발
    금속-유기 다공성 물질 개발 포스텍 연료기체 저장매체 개발, 제약산업 촉매

    개발
    한반도 대기와 해양 관측 기상연구소 황사 등 기상현상 분석
    우주입자 관측 및 반도체

    망원경 테스트
    이화여대 태초의 우주 모습 예측, 유성·오로라 관측용과 대형 화재나 폭발 감시용 망원경 개발
    소음 방지 귀마개 테스트 한국과학기술원(KAIST) 우주인 귀 보호 상품 개발
    메모리 소자 성능 테스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고집적, 초경량 차세대 메모리 개발
    우주저울 테스트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실험용 우주저울 개발
    우주용 한국 전통음식

    테스트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전통음식을 우주식품으로 개발
    얼굴 형태 변화 측정 한남대 우주환경에서의 인체 변화 분석
    교육실험 5가지 물이 어는 과정 초·중·고등학생 중력 변화에 따른 밀도 차이 설명
    물체의 운동 양상 지구와 우주에서의 각종 운동법칙 비교
    물방울 형태 변화 중력 변화에 따른 표면장력 차이 설명
    우주용 펜 테스트 우주에서 쓸 수 있는 펜 제작
    식물 성장 비교 중력 변화에 따른 성장 형태 차이 설명


    한국 우주인 배출 의미는

    유인우주 활용 시대 … 우주 영토 신세계 개척 궤도 진입


    한국 우주인 후보 2명이 선발된 지 반년이 넘었다. 이들은 올 3월부터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훈련받고 있는데, 3600명 가운데 뽑은 인재이기에 러시아 교관에게서 다른 나라 우주인보다 우수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동안의 선발 과정을 돌이켜보면 국민, 특히 청소년들이 우주인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한쪽에선 첫 우주인 배출을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 우주인 선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유인우주기술의 개발과 활용, 그리고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게 그것이다.

    현재까지 유인우주기술은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도 경제력을 포함한 국력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 문턱에 들어섰으므로 이에 맞춰 우주 분야에도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또한 우주인 선발은 다른 국가들이 그랬듯 국민적 관심을 끌게 되는데, 특히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구실을 톡톡히 한다.

    앞으로의 유인우주 개발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즉 ‘유인우주 활용’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민간자본이 투자돼 준궤도비행체(Sub Orbital Space Plane, SpaceShip Two)를 이용한 우주관광 (2009년), 우주호텔(Galactic Suite) 건설 (2012년), 항암제나 특수 반도체 등의 우주상품이 개발될 예정이다. 미국은 우주의 안보적 활용에 큰 의미를 두고, 중국도 강대국이라는 국가위상 강화에 유인우주 프로그램을 이용하려 한다.

    한국은 중공업 중심의 산업화에는 뒤졌지만 특유의 집중력과 기민성을 발휘해 1980년대 이래 정보화에서 당당히 세계 최강국이 됐다. 유인우주 분야도 마찬가지다. 로켓과 유인우주선 개발과 같은 유인우주 인프라 구축에는 뒤졌지만 유인우주 활용에선 얼마든지 앞설 수 있다. 한국의 창의적이며 진취적인 기업과 젊은 세대가 뛰어들면 경제성 있는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유인우주 활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우주인 배출이다. 우주인의 선발, 실제 우주비행과 우주에서의 과학실험 경험이 있어야 유인우주 활용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첫 우주인은 2008년 4월 초 카자흐스탄 영토인 베이코누르 우주기지(Beikonur Cosmodrome)에서 발사된다.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는 1930년대 소련이 연해주에서 강제로 이주시킨 55만여 명의 고려인 후손이 거주하는데, 발사장이 있는 카자흐스탄에만 10만명, 이웃인 우주베키스탄에는 20만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발사되는 한국 우주인은 그동안 고난의 역사를 살아온 고려인들의 가슴에 맺힌 한을 풀어주고 자부심을 심어주는 상징적 의미도 있을 것이다.

    광복된 지 벌써 60년이 넘었다. 이제는 한국의 웅지가 한반도를 벗어나 우주라는 광활한 신세계로 진출해야 할 때다. 우주 영토는 크기에 제한이 없다. 다만 그 나라의 기술력과 의지가 관건이다.

    최기혁 KARI 우주인사업단장·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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