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스포츠

음주는 선택, 기량 유지는 의무

강정호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삼진아웃…준우승 신화 되찾으려는 WBC에도 직격탄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donga.com

    입력2016-12-12 14: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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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일 미국 메이저리그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혈중알코올농도 0.084% 상태로 서울 삼성역 사거리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 달아나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됐다. 강정호는 6일 경찰에 출석해 취재진에게 “너무 죄송하고 앞으로 야구로 보답할 일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지만,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팀 엔트리 제외 위기와 메이저리그 구단의 치료 프로그램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강정호는 이번이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 ‘삼진아웃’제도에 따라 무조건 면허가 취소되고 2년간 면허 재취득이 금지된다. 강정호는 도로시설물을 들이받은 후 자신이 운전자가 아니었다고 거짓 진술을 해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그의 행동은 대단히 실망스럽다”

    강정호는 한국 야구계에서 상징성이 큰 선수다. 최희섭(현 MBC 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지만 미국 마이너리그 시스템을 통해 육성됐다. 강정호는 이와 달리 고교(광주제일고) 졸업 후 한국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뒤 넥센 히어로즈에서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 포스팅(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선수가 됐다. KBO리그 출신 첫 번째 메이저리그 타자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일본 특급 내야수는 연달아 큰 좌절과 실패를 맛봤다. 메이저리그에는 ‘일본은 최정상급 내야수도 수비력이 기대 이하고 장타력이 부족해 매력이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강한 어깨를 가진 강정호는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출전하면 시즌 30홈런도 가능한 폭발적인 장타력을 선보이며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강정호는 올 시즌 원정 경기를 마치고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여인과 호텔에 머문 후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당해 곤욕을 치렀다. 경찰은 구체적인 혐의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고 고소한 여인이 사라져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다. 그러던 와중에 휴식을 취하려고 국내에 머물다 음주운전 사고를 내며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피츠버그 구단 최고경영진도 현지 언론에 운전자 바꾸기 등 거짓 진술을 한 강정호에 대해 “그의 행동은 대단히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강정호의 음주운전은 2017 WBC 대표팀에게도 직격탄이 됐다. 한국은 2006, 2009년 세계 최고 선수들이 모인 WBC에서 각각 4강 진출과 준우승 신화를 썼다. 이는 곧 KBO리그의 인기와 구단 확대, 신축구장 건설 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3년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 탈락이라는 치욕을 겪었다. 2017년 WBC는 한국 야구가 세계 최정상급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해야 하는 중요한 무대다.

    그러나 강정호가 음주운전 사고로 조사를 받으면서 대표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해외 원정도박으로 KBO시즌 50%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선발하지 않았다. 오승환은 대체 불가한 최고 마무리 투수다. 하지만 국가대표팀의 도덕적 무결점을 위해 오승환을 대표팀 명단에서 제외했다. 강정호가 없으면 WBC 대표팀에 전문 유격수는 김재호(두산 베어스) 한 명만 남게 되고, 타선이 악화되는 등 많은 문제가 생긴다. 김인식 감독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라며 “엔트리 변경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츠버그는 메이저리그 노사협약에 따라 강정호를 알코올중독 치료시설에 입소시킬 수도 있다. 닐 헌팅턴 단장은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강정호가 뛰어난 선수이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선수노조와 협의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선수에게 벌금 등 징계 대신 치료시설 입소를 권장하고 있다.

    선동열 전 감독은 KIA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인 2013시즌 취재진 앞에서 직접 겪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꺼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저녁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곁들였다. 대리기사에게 운전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기사님이 날 알아보더라. 기사님이 ‘누구인가 했는데 감독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제가 얼마 전 ◯◯◯ 선수의 차도 몰았어요. 경기에 져서 그랬는지 조금 드셨던데…’라고 해 한참을 웃었다”고 말했다.



    자유분방함 속에 철저한 자기관리 필요

    선 전 감독은 잠시 후 자신과 같은 대리기사에게 차를 맡긴 선수를 불렀다. 시즌 중 술을 마셨다고 야단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매우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는 “과음만 아니라면 프로선수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술 한 잔 할 수도 있다. 앞으로도 꼭 대리기사를 부르고, 직접 운전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2015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최희섭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는 빅리그 선수로서 품격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 미디어를 상대하는 법, 팬을 대하는 자세 등을 교육받는다. 한국 프로야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라며 “자유분방한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국내보다 더 엄격한 클럽하우스 문화도 공존한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가장 신기했던 것은 원정을 떠나는 전용기에서 선수들이 마음껏 맥주를 마신다는 점이었다. 음주는 선수의 선택이고, 최고 기량을 그라운드에서 선보이는 것은 선수의 의무였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마지막 4할 타자인 고(故)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은 모든 스포츠에서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타자는 10번 중 3번만 성공해도 특급선수가 된다. 이런 종목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3할대 타자라 해도 10번 중 7번은 실패한다. 투수 역시 9이닝에 평균 3점을 내주면 특급이다. 그만큼 하루하루 실패를 맛봐야 하는 종목이기에 스트레스지수가 높다. 그래서 팀마다 실패하더라도 서로를 격려하는 클럽하우스 문화를 갖고 있는데, 종종 선수단 회식 등 자연스러운 음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국 프로야구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도입되고, 선수의 근력운동과 근육 피로 해소, 부상 방지 등에 관심이 커지면서 음주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종목에 비해 술을 즐기는 선수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각 구단의 지도자와 프런트도 프로선수의 음주는 선수 각자가 관리할 부분이라며 존중한다. 단, 원정 경기 시 외출 시간에 대한 약속을 받고 구단이 직접 계약한 대리운전업체의 자유이용권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야구 선수의 음주운전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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