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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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교정’ 약발 받을 수 있나

획기적 수용시설·문화 소프트웨어 제공 … 재소자들 단절과 소외감 해소가 최우선 과제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4-14 15: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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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적 교정’ 약발 받을 수 있나

    환경설계로 새로운 교정시설의 사례가 되고 있는 여주교도소.

    4월8일 문화관광부(이하 문광부)는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재소자들이 ‘피가로의 결혼’의 아리아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업이다.

    문광부는 지난해 문화행정혁신위원회 아래에 문화소외계층 지원 태스크포스팀을 두고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수용자 등 여러 가지 신체적, 경제적 제약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왔다.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 계획은 그 첫 번째 사업으로 교도소나 소년원 등 범죄자 수용시설을 짓거나 리모델링할 때 수용자와 지역주민의 감성을 고려한 건물을 설계하고, 수용자들에게는 체계적으로 문화적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표준적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건축, 미술, 범죄심리 등 12명의 전문가로 이뤄진 태스크포스팀이 구성됐으며 새로 짓는 교도소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은 당연히 문광부와 법무부의 공동 사업이다. 부처 사이의 이기주의로 적잖은 정부 사업이 겉돌고 있는 현실에 비해 두 부처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람직한 정책 수립의 사례라 불릴 만하다. 이 때문에 문광부와 법무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이번엔 이창동 장관과 강금실 장관이 손잡았다는 말이 나오면 어쩌냐”며 농반 진반의 걱정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문광부의 소외계층 문화복지 정책 중에서도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이 먼저 추진될 수 있었던 것도 두 장관의 이심전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포구치소 폭행’ 사건 사과



    ‘문화적 교정’ 약발 받을 수 있나

    최근 법무부 장관의 사과까지 끌어낸 영등포구치소 사건 규탄 시위 모습. ‘문화적 교정시설’과 투명한 교정 및 구치시설 운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러나 같은 날 법무부 교정국은 몹시 우울한 분위기였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영등포구치소 재소자 폭행사건의 관계자들을 면담하고 “사태를 미리 수습하지 못하고 확대되도록 방치한데 대해 유감”이라는 사과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치소 폭행 사건은 지난 1월 재소자인 안모씨가 교도관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한 데 항의해 정모씨가 동맥을 끊으며 자해한 사건이다. 정씨는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으로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돼 있던 상태였다. 이 사건으로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된 공안사범 4명과 일반사범 4명이 23일간 항의 단식을 계속해왔다.

    뒤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알게 된 강장관은 직접 법무부와 민간 공동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약속했다. 구금 수용시설에 대한 민·관 공동 진상조사단이 꾸려지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강장관은 이날 영등포구치소장에 구치소 내 사과방송을 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교도소와 구치소 등 구금시설의 ‘문화적 개혁안’이 발표되던 날, 기본적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는 수용시설의 현실이 폭로된 것이다. 영등포구치소 폭행사건을 뒤늦게 알게 된 문광부나,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안과 강장관의 유감 표명을 함께 설명해야 했던 법무부 교정국측은 한결같이 ‘두 가지 사항이 전혀 별개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안과 영등포구치소 폭행사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 인권은커녕 신변의 안전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용자들에게 문화적 욕구가 생길 리 없고, 교도소나 구치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혐오시설’ 정도에 머물 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수용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두 사안은 우리나라 수용시설 운영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시급하다는 것과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실제로 강장관을 면담하고 나와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안을 받아본 천주교 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김덕진씨는 “2000년 무렵부터 교도소 담에 그림을 그리고 서예도 시키는 등 변화가 있긴 했지만 수용자들에게는 남의 일이었다. 수용기관에 문화적 분위기를 조성해보겠다는 것은 일단 긍정적이나 지금 같은 상황에선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면서 “영등포구치소 사건을 계기로 수용 시설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수용시설은 외부와 격리됐다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교도소장은 흔히 ‘왕’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갖는다. 이 때문에 교도소장의 개인적 취미가 수용자들에게 ‘문화적 시혜’로 변질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2년 전 수감되었던 김모씨는 “교도소장이 한문에 집착해 매일 30분씩 무조건 한자 교육을 받아야 했고, 약간의 휴식 시간에 쇼와 드라마 프로그램을 매일 봐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 태스크포스팀의 한 참가자는 “교도소장 마음대로 시설물을 임기응변식으로 바꾼 경우도 많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46개 교정시설은 70% 이상이 30년 전에 지어져(경기대 교정학과 허주욱 교수) 건물 자체가 흉물인 경우가 많다. 이런 시설에서 교정이나 교화를 바라기 어렵다. 재범 남자 재소자들을 수용한 안양교도소는 1960년대에 지어져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 있어 비위생적이며 난방은 복도에 놓여진 난로가 전부인데다, 강당의 천장이 부서져내리고 있어 안전사고까지 우려된다는 것이 교정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문화적 교정’ 약발 받을 수 있나

    교정시설에서 열린 연극 공연 장면(왼쪽). 최근 발표된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안은 강금실, 이창동 두 개혁장관의 의지를 담고 있다.

    문광부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하고 있는 동국대 곽대경 교수(범죄사회학 박사)는 “수용자들은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함으로써 처벌을 받는 것이므로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어 인권이 침해되는 것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강장관은 가죽수갑 폐지, 현대적 계구 도입, 과도한 징벌 제한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률 개정안을 마련하고 2009년까지 수용 시설을 현대화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법무부 교정과의 신용해 교정관은 “‘열린 교정’ 개념은 국민의 정부 때 시작됐다. 외부인들의 교정시설 방문을 늘리고, TV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체계적인 연구가 있었던 건 아니고 덜 따분해야 수용자들이 사고도 덜 친다는 정도의 발상이었다. 시설면에서도 법무부에서는 기술적인 현대화 방안을 추진해왔는데 문화부에서 수용자의 환경 차원에서 교정시설을 조성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제안을 내놓아 공동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화적 콘텐츠와 수용 시설이 수용자의 공격성, 충동조절 효과, 재범률 감소와 어떤 상관 관계를 갖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연구가 없다. 그러나 2001년 현대식 건축물로 개소한 여주교도소의 신상철 소장은 “천장을 통해 자연광을 끌어들이고, 외벽도 연구소 모양으로 만들어 수용자들의 마음도 밝아지고 지역 주민들도 훨씬 가깝게 느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일반인들이 수용 시설에 거부감을 덜면서 수용자들과 외부인들의 공동행사도 가능해졌다는 것. 신 소장은 “수감된 방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식당 옆 다용도실에 모여 식사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나 교도관이 열쇠를 들고 다니지 않게 자동화하여 쓸데없는 마찰을 줄인 것도 다른 교정시설에 적용할 점”이라고 말한다.

    태스크포스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이 건물에 그림을 그리고 연극 공연 몇 번 하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수용자들이 노역형을 하면서 연극 공연 연습에 동원된다면 또 다른 노역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씨도 “교도소에서 공연을 하면, 재소자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데 더 열심이다. 재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대화”라고 충고한다.

    문광위 태스크포스팀에 참가한 한 문화계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문광부, 법무부 관계자들과 전국의 수용시설 몇 군데를 견학했다. 좋은 정책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영등포구치소 사건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문화적 교정시설 조성’이 수용자 입장에서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태스크포스팀에 수용자나 또는 최소한 인권단체 대표의 참여가 필요하다.”

    수용시설을 기념비적 건축물로 짓고, 일반인들도 보기 어려운 오페라 공연을 끌어들이기보다 수용자들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단절감과 소외감을 줄이는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금실, 이창동 두 개혁 장관의 공조가 실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 법무부와 문광부는 ‘문화적 교정시설’과 ‘수요자 인권 문제’ 별도의 사항이라고 강변하기보다 이 같은 충고에 먼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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