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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마음 씻기 신드롬’

‘기억 지우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

기자가 체험한 명상수련 … 가부좌 틀고 희로애락 잊으려 바둥바둥, 느낌만 알듯 말듯

  • < 논산=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기억 지우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

‘기억 지우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
기자가 충남 논산의 계룡산 자락에 있는 마음수련원을 찾은 것은 볕이 유난히 좋았던 4월 봄날이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교육 과정에 참여해 명상수련이란 무엇인지, 효과는 어떤 것인지 체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안내를 맡은 자유기고가 최창희씨의 반응은 의외다.

“최소한 일주일은 있어야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발적인 마음이 아닌 취재를 위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쉽게 ‘마음을 버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염려의 말을 뒤로하고 3층 강의실에 모여 있는 50여명의 1단계 수련생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나이도 성별도 제각각인 사람들 앞에 힘찬 목소리의 ‘안내자’(강사)가 해설을 시작한다.

“마음은 ‘지나간 삶에 대한 기억’과 거기 얽혀 있는 여러 가지 감정입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그 기억을 생각 속에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운다고 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기억에 얽혀 있던 불쾌, 분노, 기쁨, 행복 같은 감정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좋은 감정들도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나쁜 감정만 없애면 되지 않을까.



“좋은 기억 역시 마음을 방해합니다. 부모님께 칭찬을 들어 기뻤던 기억은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되어 돌아오는 식이죠. 모든 감정을 떨쳐야 원래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분명한 것은 기억을 지우라는 것. 그렇지만 도대체 머릿속의 기억을 어떻게 버리라는 것일까.

강의가 끝나고 앉은 자리에서 바로 단체명상이 시작된다. 두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자 안내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당신은 지금 63빌딩 꼭대기에 서 있습니다. 난간 위에 서서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를 내려다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당신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눈앞에 그동안 지나온 인생의 모든 장면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쿵! 바닥에 부딪힌 당신은 이제 죽었습니다.”

순간 아찔한 기분이 몰려온다. 정말 죽은 것이 아님을 알고는 있지만 생생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왔다.

“당신의 영혼은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육신을 바라보다 우주로 날아갑니다. 주위엔 온통 별이 가득하고 저 멀리 새끼손톱만한 지구가 보입니다. 이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당신의 눈앞에 펼쳐집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기억, 유난히 무서웠던 선생님에게 혼났던 기억들이 그대로 떠오릅니다.”

대단한 잘못도 아니었는데 무참히 뺨을 때리던 선생님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 문득 잊고 지냈던 이름이 되살아왔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선생님의 커다란 손. 마음속에서 움찔 뒷걸음질친다.

“자 이제 당신은 그 모든 영상을 꾸깃꾸깃 구겨 저 멀리 있는 지구를 향해 있는 힘껏 던져버립니다. 휙! 이제 그 기억은 당신의 생각에서 깨끗이 지워졌습니다.”

눈앞에 있던 영상이 한순간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 과연 지워진 것일까. 지워졌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지워졌다고 생각하면 지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파고든다. 거듭되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마음수련법’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게 전부였다. ‘하늘과 땅의 기’나 ‘우주의 움직임’ 등에 관한 독특한 이론이 있을 것이라는 애초의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특별한 호흡법도, 정해진 자세도, 입어야 하는 ‘도복’도 없다. 안내자는 가급적 가부좌를 틀고 앉으라고 권하지만 이 역시 오래 앉아 있기에 좋은 자세라는 이유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수련생 가운데는 다리를 뻗고 앉거나 무릎을 꿇은 이도 상당수.

“이제 중·고등학교 시절로 넘어갑니다. 시험의 악몽, 벼락치기의 조급함, 당신이 경쟁 상대로 여겼던 같은 반 학생에 대한 미움이 그대로 영상이 되어 떠오릅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중학교 시절의 기억이 되돌아왔다. 병원에 다녀오던 투병중의 어머니를 몰래 외면하던 기억, 어머니의 슬픈 눈빛, 그리고 눈을 감은 어머니의 머리 위로 덮이는 하얀 천. 순간 감은 두 눈에 눈물이 맺힌다. 지울 수 있을까.

“떠오른 영상이 저 멀리 불타는 태양에 빨려 들어갑니다. 쐐애액! 이제 더 이상 기억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 떠올리던 순간의 아픔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사실인 듯했다. 반복되는 자기암시를 통해 기억이 주는 무게와 부담을 줄이는 것 아닐까. 나름대로 마음수련법이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한다.

‘기억 지우기’ 이렇게 힘들 줄이야 …
매일 서너 시간 반복되는 강의와 단체수련이 끝나면 별도의 계획된 시간은 없다. 단체수련 시간에 익힌 방법대로 각자 배정받은 작은 방에서 자유롭게 명상을 계속하면 된다는 설명. 정해진 것은 식사 시간과 ‘가급적 말을 하지 말라’는 주의사항뿐. 나머지는 모두 수련생들의 자유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반복해서 지웁니다. 한 바퀴 돌렸으면 다시 한 바퀴, 그리고 또 한 바퀴….” 강사 박근원씨(40)의 설명이다.

“모든 기억을 그렇게 버린다는 게 가능할까요?” 기자의 물음에 박씨는 가능하다고 답한다. 떠오르는 것은 자신의 생에 큰 의미를 갖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우는 데 필요한 일주일의 시간이면 족하다는 것. 교육 과정은 총 4단계(대략 2개월 소요)로 이루어져 있지만 1단계 수련으로도 본마음을 깨닫기는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나이와 성격, 성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수련생이 한 바퀴씩 삶을 반추할 때마다 ‘더욱 가벼워지는’ 자신을 느낀다고 박씨는 말했다.

결국 마인드 컨트롤이나 카타르시스를 통한 종교체험과 비슷한 것 아닐까. 종교단체에 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수련법이 지난 96년, 수련원에서는 ‘하늘도인’으로 불리는 우명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듣자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직업병’이 발동한 기자는 마음수련이 혹시 종교적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닌지 홍성복 교육원장에게 다시 물었다.

“종교체험적 성격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알게 모르게 자신이 저지른 나쁜 일들을 회개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내세의 구원을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참되게 살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라고 홍원장은 설명했다. 또 마음수련이나 명상은 단지 그 방법을 제시할 뿐 깨달음의 의미나 결론은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짧은 동안 기자가 느낀 감정의 흔들림은 과연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이었을까. 이런 단순한 방법으로 ‘참 나’를 찾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교육원에서 만난 많은 수련생들이 가벼워진 마음과 육신으로 다시 세상에 나갈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지만 하루 동안의 경험으로 쉽게 답을 내기는 어려웠다. 들어오는 쪽에서 보면 ‘마음 버리는 문’이라고 써 있던 교육원 대문이, 나갈 때 보는 방향에는 ‘하나 되는 문’이라고 써 있었다. 기회가 닿으면 전 과정을 거쳐봐야겠다는 생각이 교육원을 나서는 기자의 머리에 남았다.



주간동아 330호 (p28~29)

< 논산=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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