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0

..

크리스마스 시즌 세계 축구 팬이 열광하는 EPL ‘박싱데이’

[박찬하의 위클리 해축] 손흥민·황희찬 활약에 토트넘·울버햄프턴 순위 사실상 결정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3-12-23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어느덧 2023년 달력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이맘때면 차분히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준비하는 게 보통 사람의 마음가짐일 것이다. 정반대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연말연시를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이들도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축구 팬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펼쳐지는 박싱데이(Boxing Day) 때문에 차분한 연말을 보내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박싱데이 강행군, 선수 체력에는 부담

    박싱데이는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12월 26일로 영연방과 일부 국가가 지정한 휴일을 말한다. 그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다. 영국 중세시대 지배계층이 빈민들에게 의복이나 식료품 등을 상자(box)에 담아 선물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나, 크리스마스 다음 날 출근한 하인들이 고용주에게 동전 상자를 가져가면 거기에 보너스를 넣어준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공통점은 상자에 뭔가 기분 좋은 선물이 담긴다는 것이다. 특히 영국은 전통적으로 박싱데이 기간에 스포츠 여가 생활을 즐겨왔다. 과거에는 주로 사냥을 했다면, 현대로 접어들면서 축구나 경마로 종목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배경으로 크리스마스가 중요한 명절인 서구권이지만,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는 축구 시계가 멈추지 않는다. 영국은 크리스마스에 대중교통까지 대부분 멈추지만, 축구만큼은 다르다. 영연방국가 축구계 종사자에게 연말은 오히려 집중 근무 시즌이다. 국제축구연맹(FIFA·피파)보다 역사가 깊은 영국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와 스코틀랜드(스코티시 프리미어십), 북아일랜드(NIFL 프리미어십), 웨일스(캄리 프리미어 리그) 등 4개 축구협회가 박싱데이에 기량을 뽐낸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가운데). [GETTYIMAGES]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가운데). [GETTYIMAGES]

    영연방 축구 리그의 박싱데이 경기 일정은 강행군이다. 매년 3~4주간 ‘겨울방학’을 보내는 독일 분데스리가나 1~2주가량 쉬어가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A가 대체로 차분한 연말을 보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번 시즌 12월 23일부터 열흘간을 편의상 박싱데이 일정으로 보는데,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이 기간에 3경기를 치러야 한다. 브라이튼&호브 앨비언처럼 운이 따르면 13일 동안 3경기를 치르지만,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홋스퍼는 12월 23~31일 9일 동안 3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에 돌입한다. 심지어 황희찬이 뛰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는 12월 24~30일 3경기를 해치운다. 피파가 규정한 최소 휴식 시간 48시간은 지킬 수 있지만, 선수들의 체력 부담을 생각한다면 형평성에 대해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번 박싱데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이 당분간 소속팀에서 치르는 마지막 경기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쏠린다. 손흥민은 에버턴·브라이튼·본머스, 황희찬은 첼시·브렌트포드·에버턴과 경기를 마지막으로 내년 아시안컵을 위해 대한민국 대표팀에 합류한다. 토트넘은 주장이자 공격의 핵 손흥민이 아시안컵 결과에 따라 몇 경기나 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승점을 많이 쌓아놓아야 한다. 내년 1월 찾아올지도 모르는 승점 한파를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격력이 부족한 울버햄프턴 역시 8골로 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터트린 황희찬이 있을 때 승부를 걸어야 중하위권 탈출이 가능하다. 다만 두 팀 모두 1군 선수 수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서 빠듯한 일정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EPL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황희찬. [GETTYIMAGES]

    EPL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의 황희찬. [GETTYIMAGES]

    박싱데이가 프리미어리그 일정에서 중요한 결정적 이유는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최종 순위가 사실상 정해지기 때문이다.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38라운드 반환점을 도는 연말을 잘 보낸 팀이 대부분 상자에 담긴 두둑한 선물을 챙겼다. 2009~2010시즌 이래 박싱데이를 1위로 통과한 팀 가운데 10팀이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다. 2013~2014시즌, 2018~2019시즌, 2020~2021시즌 맨체스터 시티(맨시티)만이 리버풀을 끌어내리고 박싱데이 이후 1위 자리를 탈환했다. 반대로 박싱데이 시즌에 18~20위로 처진 팀 가운데 최소 1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맛봤다. 쉽게 말해 우승하고 싶다면 박싱데이를 1위로 통과해야 하고, 2부 리그로 떨어지기 싫다면 어떻게든 박싱데이 때부터 승점을 쌓아 강등권을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EPL 전무후무한 선두권 경쟁

    올 시즌 EPL은 전무후무한 선두권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동시다발적 대결 구도가 이어진다면 리그 역사상 가장 치열한 우승 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17경기를 끝낸 상황에서 선두 아스날은 39점을 기록했고, 리버풀과 애스턴 빌라가 38점, 맨시티가 34점, 토트넘이 33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연승을 내달리면 경쟁자들의 추격을 따돌릴 테고, 연패로 발을 헛디디면 사실상 우승 경쟁에서 멀어지는 구도다. 순위 표 아래쪽을 보면 이번 시즌 어렵게 1부 리그로 승격한 루턴 타운, 번리, 셰필드 유나이티드가 나란히 강등권에서 사투를 펼치고 있다. 박싱데이 선물을 차지할 팀은 어디가 될지 축구 팬들의 이목이 쏠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