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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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1위 에이티즈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3-12-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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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티즈(ATEEZ)는 지금 K팝계에서 가장 매운 음악을 선보이는 그룹 중 하나다. 힙합에 기반을 둔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가 의외의 순간을 분방하게 이어붙이며 청자를 능란하게 들었다 놨다 하는 유기체라면, 에이티즈는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 같다. 댄스팝이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끌어오되 정격적으로 다지고 배치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해적으로 출발한 에이티즈의 세계관에 빗대자면 해적이 여러 곳을 탐험하면서 찾아낸 수많은 보물을 단단한 상자에 담아 쌓아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그것이 주는 효과가 있다. 순간순간을 예측하기 쉽지 않을지라도 큰 그림은 명백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에이티즈가 과거 여러 곡에서 되풀이해 대중에게 각인시킨 특유의 곡 구조처럼 말미에 다시 한 번 거창하고 와일드하게 달리리라는 예상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듣는 이는 기대감을 유지한 채 긴장과 에너지가 교차하는 대목들을 즐길 수 있다. 종착 지점이 정해진 시내 관광 투어처럼 말이다.

    에이티즈가 두 번째 정규앨범 ‘더 월드 에피소드 파이널: 윌’을 내놓았다. [KQ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이티즈가 두 번째 정규앨범 ‘더 월드 에피소드 파이널: 윌’을 내놓았다. [KQ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적 완성도 더한 에이티즈 세계관

    12월 1일 발매된 에이티즈의 신곡 ‘미친 폼(Crazy Form)’도 예외가 아니다. 아프로비트(Afrobeat)의 영향 속에서 으르렁대는 래핑과 오토튠 이펙트로 야성미를 한껏 끌어올리고, 묵직한 중저음과 찌르는 듯한 고음이 번갈아 쏟아진다. 그리고 퍼포먼스로 한층 임팩트를 더하는 후렴을 터뜨린다. 흔히 2절 뒷부분에서 곡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 쓰이는 브리지(‘쏟아져내려 rain’부터)는 EDM에서 주제부로 돌입하기 위해 긴장을 끌어올리는 빌드업으로 작용하고, 이내 가장 화려하고 폭발적인 드롭으로 마지막을 장식한다. 각 요소는 때로 전형적이고 때로 신선한데, 엉뚱한 시점에 등장한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이 없다. 나와야 할 때 나와야 할 것이 나온다. 그리고 그 모두가 후렴과 말미의 에너지를 향해 수렴한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는 그 양식미가 역동적 변화를 거치는 이 곡의 매순간을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게 한다.

    ‘더 월드 에피소드 파이널: 윌(THE WORLD EP.FIN: WILL)’은 2018년 데뷔한 이 8인조의 두 번째 정규앨범이다.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 1위를 차지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앨범 흐름 역시 구조적 안배가 눈에 띈다. 특유의 스펙터클한 긴박감과 폭발력으로 질주하는 두 곡을 지나 타이틀 곡 ‘미친 폼(Crazy Form)’과 ‘ARRIBA’로 이국적 와일드에 방점을 찍고, 비극적이지만 희망적인 업템포의 ‘Silver Light’가 이어진다. 인털루드(interlude) 후의 전개도 달콤함과 위기감, 강렬함과 나긋나긋함이 좋은 비율로 곡별로 조합돼 흐른다. 자칫 산만해지기 쉬운 유닛 곡들 역시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종호의 솔로곡인 발라드 ‘Everything’으로 애잔한 결말을 지은 뒤, 드라마틱한 전개와 거대한 사운드로 시네마틱한 느낌을 한껏 끌어올린 ‘FIN: WILL’이 에필로그로 자리한다.

    한동안 K팝 산업에 유행처럼 ‘세계관’ 설정을 도입하는 흐름이 있었지만, 사실 오래지 않아 어중간히 내려놓거나 단편적 자극 추구에 그친 사례가 결코 적잖았다. 에이티즈는 5년간 2장의 정규앨범과 10장 이상의 미니앨범에 걸쳐 세계관을 전개했다. 데뷔 당시 천진한 해적 콘셉트에서 디스토피아적 세계 속 게릴라로 변모하며 모험을 해가는 연속성 있는 서사였다. 여정의 끝을 맞이하는 이 정규앨범에서 새삼 확인하게 된다. 세계관은 K팝의 만능열쇠라기보다 음악적 완성도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 개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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