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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서 다른 세상을 마주 보다

U2 첫 내한공연 리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서 다른 세상을 마주 보다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장엄의 시간이자 감격의 시간이었다. 희열의 순간이자 환기의 순간이었다. 감탄의 경험이자 숙고의 경험이었다. 은총의 시간이자 구원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처럼 움직였고, 모든 것이 치밀하게 연결됐다. 2019년 12월 8일, 그토록 기다렸던 U2의 첫 내한공연은 왜 그들이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최고 라이브 밴드로 군림하고 있는지, 왜 ‘록의 정신’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또 보여준 공연 이상의 공연이었다.


에피타이저로 깔린 시의 향연

이시영의 시 ‘지리산’ 게시 장면. [사진 제공 · 김작가]

이시영의 시 ‘지리산’ 게시 장면. [사진 제공 · 김작가]

나는 공연장에서 늘 좌석, 부득이하게 스탠딩으로 볼 경우 뒷자리를 선택한다. 아티스트를 가까이 보는 것보다 무대를 널찍하게 조망하는 게 좋아서다. 열성팬들의 몸부림에 부대끼느라 에너지를 소모하기가 싫어서다. 이번에는 기꺼이 스탠딩 앞을 선택했다. 처음이자 또 언제일지 기약할 수 없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단지 보노(보컬), 디 에지(기타), 애덤 클레이턴(베이스), 래리 멀린 주니어(드럼) 이 네 명을 눈앞에 두고 싶은 걸 넘어 그들의 무대 장치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있는 힘껏 젖어들고 싶었다. 

스탠딩 구역 입장 시간은 4시 반부터. 4시쯤 도착하니 이미 줄이 한도 끝도 없었다. 입장 줄이 아니었다. 티셔츠 등 공연 기념품을 구입하려는 줄이었다. 최근 들어 내한공연마다 기념품 구매 줄이 길어진다. 듣고 나면 바람처럼 흩어지는 스트리밍 시대에 이런 물품들이 비로소 음악을 소유한다는 쾌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었음을 스스로 인증하려는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리라. 티셔츠라도 하나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입장 줄에 설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7시에 시작하니 2시간 반을 꼼짝 없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 메인 무대, 보컬 마이크가 설치된 곳 앞에 자리 잡았다. 내 앞에 불과 3줄뿐, 보노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공연이 끝날 때까지 화장실도 못 가는 괴로움을 달랬다.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 한 구석으로 계속해 세계의 명시가 올라갔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식에서 낭송했던 엘리자베스 알렉산더의 ‘하루를 기리는 노래(Praise Song for the Day)’를 비롯해 월트 휘트먼의 ‘풀잎’ 같은 시를 원어로 읽으며 지루함을 달래던 차, 시계는 7시로 향했다. 그즈음 한국 시인의 작품 3편이 연달아 흘렀다. 김혜순의 ‘감기’, 이시영의 ‘지리산’, 최승자의 ‘나는 기억하고 있다’. 누가 선정해 U2 측에 제공했는지 궁금했다. 보통 내한공연과는 달리 이번은 모든 걸 U2가 총괄했다. 멤버들을 포함해 스태프가 150명가량 움직인다고 하니 이런 디테일한 연출이 가능했을 것이다.




슈퍼밴드 U2 오프닝을 연 무명의 U2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서서 다른 세상을 마주 보다
예정 시간을 좀 지나 7시 20분, 조명이 꺼졌다. 래리 멀린 주니어, 디 에지, 보노, 애덤 클레이턴 순으로 등장한 U2는 메인 무대를 가로질러 앞에 설치된 작은 무대로 향했다. 그리고 시작된 드럼 연주. 그들의 첫 성공작인 세 번째 앨범 ‘WAR’의 첫 곡 ‘Sunday Bloody Sunday’였다. 시작부터 강펀치를 맞은 듯 객석은 순식간에 환호와 ‘떼창’으로 물들었다. 

총 3막으로 꾸며진 이번 투어의 1막은 ‘U2가 U2 공연의 오프닝을 맡는다’는 콘셉트, 즉 그들을 세계적 밴드로 부상케 한 ‘The Joshua Tree’ 이전 U2가 작은 무대에서 공연한 시절을 재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서브 무대에서 공연하는 그들을 비추는 카메라도 없었고, 메인 무대의 거대한 스크린도 꺼진 상태였다. 

스탠딩 쪽에서 관람하는 이들만을 위한 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1막에서 연주한 4곡 가운데 마지막은 ‘Pride(in the Name of Love)’. 1980년 12월 8일 세상을 떠난 존 레넌에게 이 곡을 바친다던 보노는 관객의 떼창을 유도하고, 무대 조명 대신 관객들의 휴대전화 불빛으로 공연장을 빛냈다. 곡은 끝났지만 떼창은 멈추지 않았다.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이 함성을 배경으로 그들은 메인 무대로 향했다. 가로 61m, 세로 14m의 LED 스크린이 순간 붉어졌다. 조슈아 나무의 형상이 뜨면서 디 에지의 영롱한 기타 사운드가 울리기 시작했다. 듣는 이를 순식간에 침묵시키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음표들. 바로 ‘The Joshua Tree’의 첫 곡인 ‘Where the Streets Have No Name’이었다. 

사막의 여명처럼 붉은빛이 지나가고 보노의 노래가 시작되자 화면에는 8K로 촬영된 미국 어느 황야의 도로가 떠올랐다. 거대한 화면으로 만나는 초고해상도의 영상은 실제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곡의 처음을 열었던 디 에지의 기타가 다시 반복되는 리프로 곡을 닫은 후에는 ‘The Joshua Tree’가 순차적으로 연주됐다. 화면은 그때마다 이 앨범의, 이 노래의 정서를 담고 있는 영상을 흘려보냈다. 안톤 코르베인이 찍은 이 영상들은 U2와 관객들을 구도의 장소로 안내했다. 

멀리 앉은 관객들이 비로소 멤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던 건 앨범의 네 번째 곡 ‘Bullet the Blue Sky’ 때였다. 무인으로 작동하는 스테디캠 앞에서 보노는 연기하듯 노래했고, 스크린은 그제야 보노와 멤버들의 모습을 고척스카이돔을 채운 이들에게 선보였다. 시간을 담은 주름, 세월에 저항하는 근육이 관객의 눈에 들어왔고 보노는 직접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들고 다른 멤버들을 비췄다.


나혜석, 제주 해녀, 김정숙, 그리고 설리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사진 제공 · 라이브네이션코리아]

‘The Joshua Tree’의 성공으로 제작된 라이브 앨범이자 영화인 ‘Rattle and Hum’의 커버를 재현한 것이다. 앨범의 문을 닫는 ‘Mothers of the Disappeared’와 ‘Rattle and Hum’에 담긴 ‘Desire’를 끝으로 2막이 내려갔다. 앵콜을 겸한 3막에서는 이후 앨범의 히트곡이 이어졌다. ‘Elevation’을 시작으로 ‘One’까지 총 8곡이 연주된 3막에서 관객들을 가장 뭉클하게 한 곡은 ‘Achtung Baby’ 앨범의 ‘Ultra Violet(Light My Way)’. 

보노가 2003년 창설한 빈곤퇴치단체 ‘원 캠페인’이 2017년 시작한 프로젝트 ‘허스토리(Herstory)’의 일환으로 선정된 세계사 속 여성이 그래픽 아트 형태로 하나 둘씩 영상에 나타났다. 이 공연을 관람한 김정숙 여사를 비롯해 나혜석, 제주 해녀, 그리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설리까지 한국 여성들의 모습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 관계자들도 몰랐다는 이 영상의 한국인 등장인물들은 U2 측이 사전에 소셜미디어 검색 및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 빈곤퇴치를 비롯해 이날 선보인 각종 캠페인과 메시지 가운데 한국 관객들이 가장 뭉클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맨 앞에서 봤기에 관객들의 전체 반응을 다 느낄 수는 없었으나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알 수 없는 숙연함이 분명 있었다. 거대한 스케일에 버무려진, 섬세한 디테일이었다. 

남북통일과 평화를 기원하는 보노의 메시지와 함께한 ‘One’을 끝으로 형광등이 켜졌고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북적거리는 귀가 인파 속에서 문득 스티브 잡스의 말이 떠올랐다.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많은 블록버스터급 공연을 봤다. 마치 마블 영화를 보듯 꿈과 환상으로 안내하는 공연이 있었고, 장인의 섬세함을 만끽할 수 있는 공연이 있었다. 초월적인 연주력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있었고, 역사를 관통하는 명곡의 향연에 젖어드는 공연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기술과 예술, 그리고 메시지가 이토록 정교하게 만나는 교차로에는 분명히 처음 서봤다. U2는 그들이 왜 U2인지를, 2시간 동안 모든 것으로 말하고 보여줬다. 공연 전 흐르던 김혜순의 시 ‘감기’ 한 자락이 떠올랐다. ‘당신이 들여다보는 흑백 사진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마주 보았다’






주간동아 2019.12.13 1218호 (p74~76)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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