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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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빠지는 ‘B급 유머’ 살아 있네

하정우 감독의 ‘롤러코스터’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3-10-21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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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고 빠지는 ‘B급 유머’ 살아 있네
    영화 ‘롤러코스터’는 2000년대 이후 스타 배우 출신 감독이 한국 영화 주류 내에서 연출한 상업영화로선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방은진이 ‘오로라공주’ ‘용의자X’ 등으로 평단과 박스오피스에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며 감독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졌지만, 당대의 가장 ‘핫’한 배우로 주목받는 시기에 연출에 도전한 것은 아니다. 유지태는 ‘마이 라띠마’로 진지한 주제의식과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줬으나, 작가주의 지향의 예술영화 색깔이 짙다. 이경규와 서세원, 오지명의 감독 도전은 해프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예외가 있다면 심형래 정도일 것이나 한국 영화 주류에서 일군 성공은 아니다.

    ‘롤러코스터’는 코미디영화다. 랩처럼, 속사포처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욕설 섞인 농담이 객석을 난타한다. 달변이나 능청, 그리고 영리함으로 치자면 연예계에서 첫손에 꼽을 만한 하정우를 여지없이 닮았다. 유치하게 보이든, 신파조로 보이든, 황당무계하게 보이든 시치미 뚝 떼고 갈 데까지 간다. 한두 번은 코웃음으로 넘어가도 서너 번째쯤에선 ‘풋’ 하고 웃음을 뿜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영화는 일본발 한국(김포)행 비행기를 무대로 탑승객의 천태만상을 그렸다. 여객기가 악천후를 만나 연거푸 착륙에 실패하고 추락 위기에 놓이면서 각양각색의 탑승객이 엎어지고 뒤집어지며 벌이는 촌극을 담았다. 그 처음과 끝, 중심에 마준규(정경호 분)라는 ‘한류스타’가 있다. 그런데 이 인물, 범상치가 않다. 마준규는 ‘육두문자맨’이라는 욕설 가득한 영화로 일본까지 유명해졌다. 심지어 일본에선 ‘한국 욕 배우기’가 붐이란다.

    그가 스케줄에 밀려 마지못해 문제의 비행기에 오르면서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한참 형뻘인 매니저에게 하는 꼴을 보면 품성이 개에 견줄 만하지만, 사람들 눈이 있으니 잔뜩 폼 잡고 일찌감치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처음 들어서는 아줌마 팬부터 난리다. 사인해달라, 사진 찍어달라 엉겨 붙으니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침 이날 한 스포츠신문에 그가 아이돌 걸그룹 멤버와 사귀다가 임신을 시켰다는 스캔들 기사가 대서특필돼 체면을 구긴 상황이다. 무엇보다 오래된 여자친구를 달랠 일이 걱정이다.

    연예스타가 탔으니 승무원들은 자기네들끼리 수군대느라 바쁘다. 목소리 낮춰 ‘년, 놈’ 하면서 탑승객 뒷담화를 늘어놓는 꼴이 가관이다. 조종석으로 카메라가 옮겨가면 점입가경이다. 기장과 부기장은 팬티바람에 음주운전이다. 객석에서는 진상 손님이 얼토당토 않는 요구로 승무원을 괴롭히고, 신혼부부는 볼썽사나운 애정행각을 벌이며, 무늬만 승려인 땡중은 말도 안 되는 염불과 수작으로 마준규를 괴롭힌다.



    비행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무대를 제한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신인감독으로서 제작비를 아낀 데다, 인물 동선과 촬영장소를 줄여 연출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만담 같은 대사와 다양한 인물의 에피소드가 난장처럼 펼쳐지는 코미디지만, 결국 마준규의 성장담으로 꿰어가는 드라마 감각도 돋보인다. 가볍고 천박해 보이는 ‘B급’이 유행하는 시대 분위기를 읽어낸 감각도 칭찬할 만하다. 다만 연예스타를 주인공으로 해 그를 둘러싼 팬덤과 스타덤을 슬쩍슬쩍 풍자하며 치고 빠지는 유머는 좋지만, 한편으로 강렬한 맛이 부족한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그럼에도 하정우의 날랜 감각과 재능을 증명한 ‘롤러코스터’는 스타 배우 출신이 아니라 그냥 신인감독으로서도 주목받을 만한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치고 빠지는 ‘B급 유머’ 살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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