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05

2013.09.16

소리 없는 ‘인플레이션 리스크’

안정적 자산운용으로는 화폐 구매력 지키기 어려워 투자 고려해야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3-09-16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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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인플레이션 리스크’

    미국이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공식화한 6월 20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37.82포인트(2.0%) 떨어진 1,850.49로 마감했다.

    돈의 가치는 금리와 물가 의 함수다. 자본의 값인 금리는 돈의 거래가격을, 물가는 돈의 교환가격을 의미한다. 거래가격으로서 돈의 가치는 빌리고 빌려주는 방식을 통해 매겨지고, 교환가격으로서 돈의 가치는 물건 또는 서비스와 교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물가와 금리는 수요와 공급, 정부 정책, 시장 참여자의 심리 등 다양한 변수에 영향을 받으므로 돈의 가치는 액체처럼 유동적인 변화를 보인다. 화폐의 액면가격은 고정된 듯 보이지만, 실제 돈은 마치 고요한 수면 밑에서 쉼 없이 흐르는 물줄기와도 같다.

    양적완화와 아베노믹스, 그리고 디플레이션

    물가와 관련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은 물가가 오르는 것을, 반대로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는 것을 뜻한다.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는 한 디플레이션이 더 사악하다. 그 이유를 미국의 양적완화,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통해 살펴보자.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장기 채권을 매입해 인위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추려면 기준금리를 떨어뜨리면 되는데, 왜 이름도 애매모호한 양적완화 정책을 펴는 것일까. 이는 기준금리를 이미 제로(0) 수준까지 낮춰놓은 상태라 더는 금리 정책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중앙은행은 제로 금리 정책을 펼쳤다. 제로 금리 정책에도 원하는 수준만큼 경제가 기지개를 펴지 못하자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양적완화 축소, 즉 출구전략의 가이드라인으로 실업률 6.5%와 인플레이션율 2.5%를 제시한 바 있다.



    최근 미국 경기가 선진국 가운데 가장 먼저 회복세를 보이고 각종 경제지표가 개선되자 특단의 조치인 양적완화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왜 버냉키 의장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목표치라는 기준치를 가지고 정책 결정을 하는 것일까.

    대공황의 경제학자인 존 메이너드 케인스 경은 “가격 하락을 낳는 디플레이션은 노동과 기업에는 빈곤을 의미한다. 기업인이 스스로 손실을 피하려고 생산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디플레이션은 고용에 대재난”이라고 말한 바 있다. 케인스 경의 말처럼 디플레이션의 고통은 고용, 즉 실업에 있다.

    만일 당신이 A라는 기업을 경영한다고 해보자.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공급하기까지 시간차가 존재한다. 그런데 완제품이 나가는 시기에 가격이 더 떨어진다고 생각해보라. 팔면 팔수록 손해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경영자인 당신은 생산을 줄이거나, 신규 투자 대신 현금 보유를 늘리거나, 최악의 경우 인력 구조조정을 할 것이다. 버냉키 의장이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목표치를 연계해 출구전략 기준으로 삼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일 주식과 부동산가격이 하락하는 자산 디플레이션까지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실업에 자산가치 감소까지 이어진다면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빈곤에 내몰리게 될 개연성이 높다. 개인의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가 급속히 악화되기 때문이다. 급여 생활자 처지에서 월급은 곧 현금흐름이다. 월급은 손익계산서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 원천이다. 고용 구조가 불안해진다면, 당연한 얘기지만 급여가 줄거나 구조조정에 내몰릴 수 있다. 여기에 주식과 부동산 가치까지 하락하면 대차대조표도 악화된다.

    디플레이션 경제의 암울함을 보여준 나라가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이다. 1989년과 90년 주식과 부동산이 연이어 붕괴된 후 일본 경제는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져 20여 년째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다. 자본주의 국가의 중앙은행 최초로 제로 금리를 실시하고, 양적완화 조치를 단행했지만 디플레이션 침체 터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아베노믹스의 핵심 내용은 엔화 약세, 인플레이션 2% 등이다. 엔화 약세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확대하고 내수를 진작해 물가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그에 걸맞게 금리 수준도 화폐 구매력 보존을 위해 올라야 한다. 정부 부채가 많은 일본으로선 금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이런 초유의 정책을 펼치는 것은 디플레이션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 할 수 있다.

    디플레이션이냐 인플레이션이냐

    현재 비관론자 사이에선 우리나라가 일본을 닮아갈 위험이 크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게 등장한다. 이들의 말처럼 우리가 정말 일본식으로 간다면, 자산운용의 방식은 간단하다. 지금 당장 가격 불문하고 주식과 부동산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수익을 모색하는 투자자라면 보유한 현금으로 해외투자를 늘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봐야 알겠지만, 단선적으로 일본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일본과 한국은 경제구조에 차이가 있고, 투자 문화도 다르다. 일본은 내수 비중이 80%로 압도적이지만,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서 수출 비중이 높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고성장·고물가 국가였다. 고성장은 고물가를 낳는다. 소득이 늘어 소비여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 가장 수혜를 입는 투자처는 부동산이었다. 소득이 늘고 물가가 오를 때 부동산 가치도 급속히 오른다. 하지만 고성장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물가는 조금씩 계속 오른다. 플러스 성장을 하는 한 물가 인상은 멈출 수 없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자신의 화폐가치를 지키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자산운용의 과제다.

    은행 예금 금리는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경우 사상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예금 위주의 안정적 자산운용만으로는 화폐 구매력을 지킬 수 없다. 특히 인플레이션 리스크는 오랜 시간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자신의 노후에 대비한 연금 같은 장기 자산은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반드시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원금 보존 위주의 연금 자산운용은 인플레이션이란 독성을 결코 이겨내지 못한다.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는 주식 같은 자산을 조금이라도 편입해야 하는 이유다.

    소리 없는 ‘인플레이션 리스크’
    이상건은 1990년 서강대를 졸업하고 증권방송 와우TV(현 한국경제TV)와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기자를 거쳐 2005년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현 은퇴연구소)로 옮겼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은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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