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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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그것이 문제로다

동아시아 각국, 양국과 새로운 관계 정립 치밀한 계산과 전략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2-12-03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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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중국? 그것이 문제로다

    11월 20일 오후 캄보디아 프놈펜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위해 아세안과 관계국 정상들이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동아시아 각국이 미국과 중국 눈치를 보면서 합종연횡(合從連橫)하고 있다. 합종연횡이란 중국 전국시대에 각국이 생존하려고 다른 국가들과 맺은 일종의 동맹 전략을 말한다.

    전국시대에 칠웅(七雄)이 있었다. 첫 번째로 강성한 진(秦)은 가장 서쪽인 산시(陝西)에 포진했다. 두 번째로 강했던 제(齊)는 가장 동쪽인 산둥(山東)에 있었다. 나머지 5국은 두 강국 사이 북에서 남으로 늘어섰다. 당시 사상가 귀곡자(鬼谷子) 밑에 뛰어난 제자 2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인 소진(蘇秦)이 최강국인 진에 대항하려고 6국을 종으로 연합(합종)한 동맹을 구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자 다른 제자 장의(張儀)가 나서서 진과 6국 간 개별 동맹을 맺고 횡으로 연합(연횡)하는 전략으로 대응했다. 연횡이 성사되자 합종은 깨졌고, 이후 진은 각개격파로 천하를 통일했다.

    美 “아세안 회원국 중국에 한목소리 내야”

    미국과 중국의 패권다툼이 치열해지면서 동아시아 각국은 전국시대 때처럼 양국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11월 20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린 동아시아 정상회의(East Asia Summit·EAS)에서는 각국의 합종연횡 전략이 극명히 드러났다. EAS는 현재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과 G2(주요 2개국)인 미국과 중국, 세계 3위 경제대국 일본, 세계 2위 군사강국 러시아를 비롯해 한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8개국이 참가하는 다자간 국제회의체다. EAS 18개 회원국 정상은 겉으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번 제7차 회의 주제인 지역 협력과 발전에 대해 논의했지만, 속으로는 자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두뇌싸움이 치열했다.

    EAS는 2005년 창설 당시부터 상당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확대하려고 아세안+3(한중일) 회의를 EAS로 격상하자고 제안했다. 아세안은 중국 영향력에 밀려 마지못해 찬성했다. 반면 일본은 중국을 견제하려고 인도, 호주, 뉴질랜드를 회원국에 포함하자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EAS는 아세안+6 체제로 출범했다. 이후 EAS에서 중국 입김이 갈수록 커지자 아세안과 일본은 2010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를 새 회원국으로 가입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EAS 회원국이 되려고 총력을 기울였던 미국과 러시아는 2011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회의 때부터 정식 회원국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번 제7차 회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및 경제협력 문제를 놓고 정면 대결했다.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서 아세안에 상당한 힘을 실어줬다. 중국을 포위하고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Pivot to Asia)이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동아시아 각국 정상에게 남중국해를 비롯한 영토 분쟁 지역에서의 갈등을 완화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당사국들에게 행동수칙 협상에서 진전을 보일 것을 당부했다.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이 남중국해를 비롯한 영토 분쟁 지역에서의 갈등을 중국과 개별 국가가 일대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여러 국가가 참여해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설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제회의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놓고 중국을 공식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즈 부보좌관은 “미국은 남중국해에 대한 권리는 없지만, 국제 경제에서의 기능을 고려할 때 중대한 이해관계를 가진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처럼 강력한 공세에 나선 이유는 아세안 회원국을 자국 편으로 만들려는 전략에서다. 아세안 회원국은 그동안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놓고 서로 분열하는 양상을 보였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완화하기 위해 분쟁 당사국 간 행동수칙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반면 캄보디아 등 친(親)중국 국가들은 분쟁 당사국이 개별적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AS 회의에 앞서 11월 18일 열린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회원국 간 갑론을박을 벌어졌지만 결국 아무런 합의도 도출하지 못했다. 미국은 이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영토 문제에서 반(反)중국 태도를 보이는 아세안 회원국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티격태격해온 일본도 미국 측에 적극 동조했다. 인도와 호주도 미국 편에 섰다.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선택

    미국? 중국? 그것이 문제로다

    11월 19일 저녁 아세안과 관계국 정상 만찬에서 각국 정상이 캄보디아 전통의상을 입고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내외, 원자바오 중국 총리.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다. 원 총리는 “중국의 주권 수호행위는 필요하고도 합법적”이라면서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개별 국가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중국 주장에 동조한 국가는 캄보디아와 라오스뿐이다. 미국과 중국이 이처럼 대립각을 세우니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앞으로도 양국은 물론, 아세안 회원국의 첨예한 갈등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각 아세안 회원국의 속셈은 미국이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안보 및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친중국이었던 미얀마가 태도를 바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9일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양곤에서 테인 세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의 민주화 개혁을 높이 평가하면서 앞으로 2년간 1억7000만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얀마를 ‘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나라 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꾼 것이 군사정권이라는 이유로 버마라는 이름을 고집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런 제스처는 지극히 외교적인 것으로, 미얀마를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담겼다. 실제로 미얀마는 외교노선을 친미(親美) 쪽으로 바꾸고 있다. 내년부터 미국이 주도해온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합동군사훈련 코브라 골드에 옵서버로 참여할 것을 검토 중이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와 비슷한 체제를 유지해왔으나 태도 변화가 없는 캄보디아에는 일종의 채찍 전략을 구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훈센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캄보디아 인권 상황을 비판하고, 정치범 석방과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실시를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훈센 총리와의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조차 갖지 않았다.

    시진핑 총서기 체제의 중국도 캄보디아는 물론, 다른 아세안 회원국을 적극 포용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 분명하다. 원 총리는 훈센 총리를 만나 “양국 관계는 선린우호의 모범”이라면서 “양국 경제협력 강화는 물론, 향후 캄보디아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원 총리는 훈센 총리의 장기 집권을 적극 돕겠다는 뜻도 밝혔다. 중국은 10월 베이징에서 투병생활을 해오던 노로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별세하자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조기를 내거는 등 전례 없는 의례를 갖춘 바 있다.

    원 총리는 또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도 만나 경제협력 강화에 합의했다. 이어 나집 툰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는 “양국이 처음으로 공동 조성한 중국 친저우(欽州) 산업단지, 말레이시아 콴탄 산업단지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경제협력 5개년 청사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원 총리는 이들 정상과의 회담에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경제협력만 강조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자국 발전을 위해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중요한 만큼 중국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경제동반자 협정 주도권 놓고 줄다리기

    중국은 이번 EAS에서 미국의 뒤통수를 쳤다. 미국과 러시아를 제외한 EAS 16개국은 공동선언문을 통해 2015년 말 타결을 목표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RCEP) 체결을 위한 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RCEP는 동아시아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협상이 체결되면 인구 34억 명, 국내총생산(GDP) 19조7640억 달러(2011년 기준)에 이르는 거대경제권이 탄생한다. RCEP가 체결되면 규모 면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유럽연합(EU)을 능가하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가 된다. 참가국은 무역협상위원회(TNC)를 구성해 상품과 서비스, 투자 분야부터 협상을 시작한다. TNC 회의는 4개월 간격으로 1년에 3차례 열린다. 경제장관회의는 TNC 회의 결과를 총괄하는 구조로, 첫 TNC 회의는 내년 4∼5월 열릴 예정이다.

    협상 타결까지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협상 주도권과 개방 수위를 놓고 참가국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상품 분야에서 자유화 수준을 낮추는 특별대우를 원하며, 협상 분야도 상품과 서비스 및 투자 분야로 국한하자고 주장한다. 특히 RCEP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TPP)과 경쟁관계가 될 수 있어 미국의 견제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TPP는 2005년 6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4개국 체제로 출범한 다자간 FTA로, 2015년까지 모든 무역장벽 철폐를 목표로 한다. 이 협정에는 상품 거래, 원산지 규정, 무역 구제 조치, 위생검역, 무역 부문 기술 장벽, 서비스 부문 무역,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및 경쟁정책 등 FTA의 주요 사안을 대부분 포함한다. TPP 협상은 초기에는 별로 영향력이 크지 않은 다자간 FTA였으나, 미국이 2008년 적극적으로 참여를 선언하면서 참가국이 늘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호주, 일본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으며 태평양 연안 국가로는 캐나다, 칠레, 페루, 멕시코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TPP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통합을 이끌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과 미국을 연결하는 고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협상을 추진하고 동아시아 국가의 동참을 유도하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에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년 중 TPP 협상을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양다리

    미국? 중국? 그것이 문제로다

    3월 27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후진타오 중국 주석(왼쪽)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사를 나눈 뒤 돌아서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베트남 등 7개국이 RCEP와 TPP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제 주도권 다툼에 ‘박쥐’처럼 양다리를 걸친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1월 18일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태국의 TPP 협상 참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동남아를 선택한 배경에 TPP 확대 전략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 총리도 11월 21일 태국을 방문해 친나왓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국제가격으로 2억2800만 달러에 달하는 태국 정부 비축미 26만t을 구입했다. 태국의 TPP 참여를 막기 위한 것이다. 경제를 무기로 동남아에서 전통적인 친미 국가인 태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아세안 회원국은 대부분 경제협력 측면에서 중국과 ‘친구’지만, 베트남과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때문에 중국과 ‘적’이다. 그런데도 베트남과 필리핀은 RCEP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 일본, 호주, 필리핀, 태국은 안보 면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이며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는 미국의 핵심 파트너다. 이들 국가는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중국은 또 한국, 일본과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면서 미국을 견제했다. 당초 한중일 3국 정상은 EAS 기간 중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기로 했지만,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 열도 영유권 문제 때문에 정상회의를 꺼렸다. 한국과 일본도 독도 영유권 문제 때문에 정상회의에 소극적이었던 터라 결국 3국 정상회의가 무산됐다. 그럼에도 3국 통상장관들이 정상들을 대신해 FTA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3국은 2003년 FTA 체결을 위한 민간 공동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가게 됐다.

    한중일 FTA가 타결되면 인구 15억2200만 명, GDP 14조3000억 달러 시장이 탄생한다. 이로써 동북아 지역은 NAFTA, EU와 더불어 세계 3대 경제권에 등극할 전망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세계경제와 정치연구소 국제무역연구실 쑹홍 주임은 “3국 FTA는 투자, 무역,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능을 분담하는 것”이라며 “경제적 이익의 융합은 정치와 외교 등에서도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국제화폐연구센터 쑨화위 주임은 “한중일이 지역경제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미국 TPP에 대항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FTA도 체결했지만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이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면서도 FTA 협상에 나선 것은 국익을 고려한 것이다. 한중일 FTA가 타결될 경우 한국과 일본은 거대한 중국 시장에 한층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동아시아를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간 것은 이 지역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동아시아 세기’가 도래하리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동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19세기가 영국이 지배하는 시대였고 20세기가 미국이 지배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엔 동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전망이다. 동아시아 각국은 이런 기회를 발판 삼아 자국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동아시아 각국이 합종연횡 전략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과 중국도 동아시아 각국과 마찬가지로 합종연횡 전략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아무튼 합종연횡 전략에 따라 동아시아 각국과 미국, 중국의 삼각관계는 앞으로 더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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