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가 내놓은 ‘디아블로3’ 이야기다. 1996년 ‘디아블로’, 2000년 ‘디아블로2’에 이어 5월 15일 디아블로3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다. 디아블로3는 액션롤플레잉 게임으로 게이머들은 야만용사, 부두술사, 마법사, 수도사, 악마사냥꾼 등 다섯 가지 직업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불타는 지옥의 무리로부터 성역 세계를 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전작인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는 전 세계에서 2000만 장 이상 팔렸다.
완성도가 떨어지면 게임을 내놓지 않는 블리자드의 완벽주의 때문에 12년 만에 세상에 나온 디아블로3는 역시 대단했다. 세계 곳곳에서 디아블로3 한정판을 사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정식 발매를 시작하자마자 역대 개인용 컴퓨터(PC) 게임 판매 기록을 갈아치웠다. 디아블로3는 게임을 개발한 블리자드의 매출뿐 아니라 PC방, 컴퓨터와 부품 제조업체 등 관련 업계 매출까지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과거 ‘스타크래프트’가 유발한 경제효과를 ‘스타크노믹스’라고 부른 데서 착안해 ‘디아블노믹스’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한정판, 정가 3배 가격에 거래
5월 13일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 비트플렉스 앞에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선 채 계속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비가 오는 와중에도 역사 앞에 수천 명의 사람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모두 5월 14일 오후 5시에 시작하는 디아블로3 발매 기념행사에서 한정판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다. 결국 4000장 한정판은 이날 아침에 도착한 사람까지만 구매할 수 있었다.
발매 전부터 달아오른 디아블로3의 인기는 5월 15일 정식 발매와 함께 더욱 치솟았다. 블리자드는 디아블로3 출시 24시간 만에 “전 세계에서 350만 장 이상 판매됐다”고 발표했다. 역대 PC게임 가운데 하루 판매량으로 세계 최고 기록이다. 블리자드가 발표한 350만 장은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연간사용권 프로모션으로 제공한 120만 장을 제외한 것이다. 디아블로3는 출시 첫 주 세계 판매량이 630만 장을 넘어서며 인기를 이어갔다.
국내의 디아블로3 열풍은 더 뜨거운 듯하다. 한정판을 구하지 못한 열혈 게이머들이 한정판을 구하려고 인터넷 게시판 등에 글을 올리며 안달하자 당초 9만5000원이던 것이 3배가 넘는 3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한정판을 경품으로 내건 이벤트에도 사람이 몰렸다.
우리나라는 PC방 게임문화가 발달한 만큼 PC방 이용 정도를 통해 디아블로3의 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PC방 통계사이트 게임트릭스는 5월 24일 디아블로3의 PC방 점유율이 39.41%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PC방 고객 10명 가운데 4명이 디아블로3를 한다는 의미다. 게임트릭스는 디아블로의 이 같은 점유율이 “2008년 PC방 점유율 통계를 낸 이후 최고치”라고 설명했다. 당대 최고 인기 게임으로 손꼽힌 ‘아이온’도 20%대 초반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정도였다. 디아블로3는 주말과 부처님 오신 날이 이어진 휴일 동안 35% 이상을 유지하며 압도적으로 점유율 1위를 지켰다.
디아블로3의 위세에 다른 게임은 기를 펴지 못하는 모양새다. 디아블로3를 출시하기 전 국내 게임시장에서 깜짝 1위로 올라선 ‘리그오브레전드’는 점유율이 10%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 2위로 밀렸다. 다른 게임도 점유율 하락이 두드러진다. 서든어택, 아이온, 피파온라인2 등 수년째 PC방 점유율 상위권을 지켜오던 인기 게임이 지금은 점유율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블리자드는 디아블로3 출시 일주일 만에 매출 약 4000억 원을 올렸다. 1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개발비의 4배를 일주일 만에 거둬들인 것이다. 지금도 디아블로3를 온·오프라인으로 꾸준히 판매하니 매출은 당분간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중남미와 러시아 등 아직 디아블로3를 출시하지 않은 지역도 있고, 디아블로3 확장팩 등 새로운 버전도 나올 예정이어서 블리자드의 수익은 엄청나게 늘어날 전망이다.
스타크래프트와 다른 점
5월 14일 서울 왕십리 민자역사에서 열린 디아블로3 발매 기념행사에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디아블로3는 PC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도 대작 게임이 나오면 PC를 업그레이드하려는 수요가 늘었다. PC 판매점들은 ‘디아블로3 맞춤형 PC’를 선보였고, PC 수준 업그레이드를 통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게임을 즐기려고 그래픽카드와 메모리를 주문하는 소비자도 많아졌다.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는 “컴퓨터 조회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70만 건보다 20% 이상 늘어난 94만 건에 이른다”며 “디아블로3 구동 호환성이나 견적을 문의하는 게시물도 큰 폭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아이템거래 사이트도 반사이익을 누린다. 아이템거래는 게임 출시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본격화하는데, 디아블로3는 출시 일주일 만에 국내 주요 아이템거래 사이트에서 거래 품목 1∼2위에 올랐다. 반응이 매우 빠른 편이다.
이제 관심은 디아블로3 인기와 영향력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하는 점이다. 스타크노믹스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로, 게임을 통한 대결이 핵심이다. 국내에서는 프로게이머라는 신종 직업까지 생겨났고, 게임 전문 케이블 채널까지 등장했다. 프로게이머에 열광하는 팬까지 더해지면서 10년 이상 장기 흥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디아블로3는 롤플레잉게임이라는 점에서 스타크래프트와 차이가 있다. 벌써부터 콘텐츠 고갈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디아블로와 디아블로2도 초반에는 큰 인기를 누렸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디아블노믹스가 반짝 특수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이템 현금거래, 이용자 간 전투(PvP) 등 앞으로 나올 콘텐츠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이미 콘텐츠 고갈 문제가 대두된다”면서 “디아블로3가 처음의 인기를 장기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