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태극낭자 ‘4강 신화’ … 아직 배고프다

U-20 여자월드컵서 기적 일궈 … 세계 호령 여걸들 활약은 이제부터

  • 최용석 스포츠동아 기자 gtyong@donga.com

    입력2010-08-02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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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낭자들이 한국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썼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선수들은 독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하며 1983년 U-20 남자월드컵,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또 하나의 4강 신화를 이룩했다. 팬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이뤄낸 값진 성과물이다. 또한 세계축구의 변방이었던 한국 여자축구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타국에서 보여준 어린 태극낭자들의 투혼에 박수를 보낸다.

    국제 여자축구는 그동안 유럽과 북미, 남미가 지배했다. 미국이 꾸준하게 정상을 지키는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북한, 일본 등이 번갈아 선전을 펼쳤다. 또한 독일을 앞세운 유럽, 브라질의 남미도 남자축구 못지않은 실력으로 국제무대를 점령했다. 현재 세계랭킹은 미국 1위, 독일 2위, 브라질 3위, 스웨덴 4위 순이다. 한국은 뒤늦게 여자축구를 시작한 탓에 세계무대에서 실력을 선보일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시아 무대에서도 줄곧 중국, 일본, 북한에 밀렸다. 올해 열렸던 2011년 독일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본선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하며 고개를 숙였다.

    공격축구로 놀라운 득점력 과시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하나씩 ‘벽’을 깨고 있다. 2009년 열린 U-19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은 3위에 들며 U-20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또한 U-16 아시아선수권에서는 아시아 축구의 강자 일본과 북한을 차례로 제압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올해는 U-20 여자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며 아시아뿐 아니라 국제무대에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으로 한국 여자축구는 발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번 U-20 대표팀은 결과도 좋았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 더 큰 점수를 받고 있다. 어떤 상대와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선수들이 가진 능력을 100% 발휘하고 있다. 또한 개인기와 조직력의 조화로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고 있어 더욱 고무적이라는 게 축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전까지 한국은 남녀를 막론하고 강한 상대와 만나면 수비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등 소극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강호를 만나면 비기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U-20 대표팀은 어떤 상대와 경기를 하더라도 물러섬이 없었다. 팀의 장기인 짧은 패스 플레이를 통해 조직력으로 상대에 맞섰다. 강호 미국에 0대 1로 패했지만 내용 면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득점 기회는 한국이 많았다.



    또한 한국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득점력에서도 U-20 대표팀 선수들은 확연히 달랐다. 지소연을 필두로 이현영, 김나래 등 득점력이 뛰어난 선수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의 골문을 열었다. 뛰어난 마무리 슈팅 기술과 문전에서의 침착함으로 많은 골을 터뜨리면서 남자축구보다 좋은 득점력을 선보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뛰어난 기량을 펼친 지소연, 이현영, 정혜인, 김나래 등 많은 유망주가 해외 진출의 관문을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전까지 한국 여자축구는 차연희, 박희영, 이장미 등 몇몇 해외파를 길러냈다. 이 가운데 차연희와 이장미는 독일로 진출해서 뛰어난 적응력으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런 선배들이 길을 열었다면, 이번 U-20 월드컵에서 활약한 어린 태극낭자들은 그 관문을 더 넓혔다.

    특히 지소연은 상대들보다 체격조건이 좋지 않았지만 뛰어난 득점감각과 개인 기량으로 많은 골을 넣으며 세계 여자축구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해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최우수선수로 뽑혔던 그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적 스트라이커 대열에 합류했다. 이현영과 정혜인, 김나래도 출중한 기량으로 한국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벌써부터 미국과 독일 리그에서 한국의 낭자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해외 리그를 경험하며 한 단계 더 발전한다면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태극낭자 ‘4강 신화’ … 아직 배고프다

    지소연이 7월 17일 국제축구연맹 U-20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서 전반 41분 동점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한국 여자축구의 시작은 미약했다. 어린 시절 다른 운동을 하던 선수들을 모아 축구팀을 창단하는 등 힘든 과정을 겪었고, 선수들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설움을 겪으면서도 지도자들과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한국 여자축구는 아시아 중위권으로 빠르게 도약할 수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겪으면서 여자축구는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02년 월드컵 잉여금을 산하 연맹에 배분해 유소년 육성에 나섰고, 인프라 구축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 열악한 환경과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단비를 만나 여자축구는 이후 저변이 빠르게 확대됐다. 초등학교부터 축구선수 생활을 시작하는 어린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이러한 배경이 오늘날 여자축구 세계화에 큰 밑거름이 됐다.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선수들은 기본기가 좋고, 기술적으로도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여자축구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

    여자축구 한 관계자는 “현 대표팀 선수들도 좋지만 23세 이하 선수들의 기량이 매우 뛰어나다. 이번에 큰 성과를 낸 20세 이하 선수들이 꾸준히 성장해 시너지 효과가 난다면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도 세계무대에서 강호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본기 탄탄 기량 뛰어나 한 단계 성장

    이번 대회에서 U-20 대표팀은 엄청난 결과를 냈지만, 아직 한국 여자축구가 갈 길은 멀다. 일단 선수와 팀이 부족하다. 초등학교 18팀, 중학교 17팀, 고등학교 16팀에 불과하고, 대학은 6개팀이어서 축구로 대학에 진학할 기회가 너무 적다. 오히려 실업팀이 7개로 더 많은 기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렇다 보니 많은 선수가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다.

    또 여자축구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아예 없다는 말이 맞다. 각종 초·중·고 대회의 관중석에는 학부모들밖에 없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대회 유치도 여의치 않다. 심지어 최근 리그로 전환된 성인 경기도 스폰서를 유치하지 못해 팀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대회 스폰서를 맡고 있고,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다. 이처럼 한국 여자축구의 환경은 세계무대와 격차가 너무나 크다. 그래서 이번 U-20 월드컵에서 보여준 태극낭자들의 선전에 대해 기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983년 멕시코 청소년월드컵에서 남자 U-20 대표팀이 4강에 진출했지만 이후 한국은 성인무대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자축구도 이번의 성과물을 제대로 이어나가려면 협회와 연맹이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3~5년 안에 성인 여자축구 무대에서도 한국이 강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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