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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칼미크 유목민 마음 ‘봉사의 땀’으로 열다

고려대 러시아 하계봉사단의 10박11일 … 서로의 문화체험, 진정한 친구로 거듭나

  • 칼미크=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러, 칼미크 유목민 마음 ‘봉사의 땀’으로 열다

러, 칼미크 유목민 마음 ‘봉사의 땀’으로 열다

칼미크인들은 한국 봉사단의 방문에 전통 무용을 선보이며 환영했다.

고려대 러시아 하계봉사단이 러시아연방 내 칼미크공화국 이키부룰 마을까지 가는 길은 고됐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9시간을 날아가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 도착한 뒤, 다시 버스를 타고 24시간을 달려야 닿는 곳. 모스크바를 벗어나자 도로 곳곳이 움푹 패어 버스는 덜컹거렸고, 도로 위 소떼를 쫓느라 운전사가 경적을 울리는 탓에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키부룰로 가는 길 내내 봉사단원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기대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봉사단 단장인 민경현 교수와 인솔 교직원 2명, 대학생 13명 등이 7월 9일부터 10박11일 일정으로 찾아간 칼미크공화국은 러시아 남서부 카스피 해 근처에 자리 잡은 인구 30만 명 규모의 나라다. 칼미크(Kalmyk)는 ‘남은 사람들’이란 뜻으로, 과거 몽골족이 유라시아를 정벌한 뒤 돌아가지 않고 남은 민족이어서 몽골족처럼 라마불교를 믿는다. 또 체스 마을을 조성하는 등 국가적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3일 동안 구슬땀 직업학교 탈바꿈

하지만 이 나라는 러시아연방 내에서도 가장 낙후한 지역이다. 목축업이 주된 산업이고, 수도 엘리스타를 벗어나면 상하수도 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곳에는 고려인도 약 1000명 살고 있는데, 칼미크인들도 1943년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됐다가 1956년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봉사단이 도착한 곳은 1975년 개교한 국립교육기관 ‘직업학교 No.5’다. 이곳은 학교에 고유 이름 대신 숫자를 붙인다. 봉사단은 선풍기도 없는 직업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교실을 정비했다. 벽돌을 쌓아올려 만든 학교의 교실 바닥은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창틀은 뒤틀려서 잘 열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쓴 수학 공식, 문학 글귀가 적힌 종이가 다닥다닥 붙은 교실 벽에서는 학생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 묻어났다. 직업학교에서 수학, 러시아어 등 정규교육과 함께 직업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트랙터 운전사, 요리사, 경리 등의 직업을 갖고 사회로 진출한다.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다.



교실 천장은 석회칠을 했다. 봉사단원들은 석회를 갈아 물에 녹인 석회물로 천장을 칠했다. 질 좋은 페인트라면 한두 번 칠로 끝나겠지만, 석회는 칠하고 말리고 다시 칠하기를 몇 차례 반복해야 비로소 하얀 빛깔을 냈다. 교실 벽에는 벽지를 발랐다. 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도배가 서툴러서 붙였다 뗐다를 거듭했다. 창틀에 페인트칠을 할 때도 서툰 솜씨 탓에 옷은 페인트 범벅이 됐다. 45℃까지 오르는 무더위에 독한 페인트 냄새가 퍼지자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3일 동안 교실을 재정비하고 마지막은 손걸레질. 학생들은 걸레로 교실 바닥, 복도, 계단은 물론 책걸상, 책장까지 모두 닦았다. 작업 도중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작은 오해도 있었다. 이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치는 올가 만차예바(47) 선생은 한국 학생들이 일하는 내내 옆에 붙어서 말을 걸고 관심을 표했다. 이를 학생들은 “작업이 왜 이렇게 더디냐, 잘하라”는 잔소리로 알아들어 슬슬 그를 피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작업이 모두 끝난 뒤에 통역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올가 선생의 속뜻을 알았다. 올가 선생은 “폭염에 주변 환경도 열악해서 혹시나 한국 학생들에게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따라다니며 필요한 게 없는지 물은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정비가 끝난 교실에서는 올가 선생이 고마움에 즉석에서 러시아어 수업을 열기도 했다. 리디야 라드지예바(44) 교장은 “한국 학생들이 큰일을 해주었다. 직업학교 학생들이 방학을 마치고 돌아오면, 새롭게 변한 교실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마을 주민들도 한국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러, 칼미크 유목민 마음 ‘봉사의 땀’으로 열다

1 45℃가 넘는 불볕더위 속에도 봉사단은 묵묵히 교실정비를 했다. 2 봉사단의 사물놀이 공연. 3 즉석에서 이루어진 러시아어 수업.

올해로 한국과 러시아는 수교 20주년을 맞는다. 두 나라가 국경을 마주한 지는 150주년.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연방에는 한국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봉사단의 러시아 방문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곳 이키부룰 마을 사람들도 현대 자동차를 타고 삼성전자 텔레비전으로 월드컵을 보지만, 기업 브랜드명만 알 뿐 한국이란 나라는 모르고 살았다. 대학생 정지현(24) 씨는 “한국 기업들의 물건을 쓰는 것을 보고 처음엔 뿌듯했지만, 막상 주민들과 이야기해보니 한국이란 나라는 모르고 있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노력봉사, 컴퓨터 등 기자재를 기증하고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도 힘썼다.

사물놀이와 강강술래에 환호성

14일에는 수도 엘리스타에 자리한 칼미크 국립대학을 찾아 한국 문화를 알렸다. 한국 문화 공연을 위해 봉사단원들은 출국 한 달 전부터 팀을 짜 연습했다. 그들이 보여준 사물놀이와 강강술래를 보고 현지 대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특히 한국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선보이자 현지 대학생들은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열광했다. 예리크(23) 씨는 “칼미크에는 한국어학과가 없어서 한국에 대해 몰랐다. 이번 공연을 보고 한국에 대한 호감이 생겨 꼭 가보고 싶은 나라가 됐다”며 한국 학생들을 반겼다. 15일에는 이키부룰 마을회관에서도 한국 공연을 선보였다.

한국 대학생들에게도 이번 봉사활동은 봉사에 머물지 않고 이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특히 한국 학생들이 새롭게 느꼈던 것은 그들의 놀이문화. ‘상대를 믿는 놀이’는 여남은 명이 어깨를 딱 붙이고 원을 만들어 선 가운데 한 사람이 들어간다. 들어간 사람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는 원을 만든 사람들을 믿고 뒤로 쓰러지다시피 몸을 눕힌다. 그러면 이를 두 손으로 ‘정성껏’ 받아 옆사람에게 넘기는데 넘어지지 않고 한 바퀴를 돌면 놀이는 끝난다. 술래를 정해 누군가를 잡게 하거나 편을 갈라 상대를 이기는 놀이에 익숙한 한국 대학생들은 처음엔 낯설어했다. 박지호(27) 씨는 “한국에는 남을 이기고 더 가져야 한다는 경쟁의 논리가 있는데, 이곳 주민들과 생활하면서 많은 것을 갖고도 불평하며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칼미크 아이들은 반대로 수건돌리기를 같이 하면서 왜 술래가 있고 필사적으로 뛰어가 잡아야 하는지 낯설어했다.

봉사활동이 거의 끝나갈 때쯤, 한국 대학생들은 이곳에 오기 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학생들은 “다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존재의 키가 조금 더 커졌다”고 말했다. 민 교수도 “학생들이 스텝 지역 유목민의 일상생활을 체험한 것이 앞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좋은 씨앗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봉사단은 이번 봉사활동을 일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고, 앞으로도 칼미크와 인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주간동아 2010.07.26 747호 (p64~65)

칼미크=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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