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2008.09.16

하룻밤 3000번 ‘풀칠의 추억’

  • 안재만 ㈜버네이스애플트리PR컴퍼니 대표

    입력2008-09-12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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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베테랑이 된 누군가에도 1년차 시절이 있습니다. 14년 전 저의 사회 데뷔 1년차 시절, 서울 시내 한 호텔 홍보팀에 입사해 처음 맡은 일은 회사 소식을 담는 사보 신년호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잡지 제작 경험이 전무한 초보가 44쪽짜리 한 권을 만든다는 것이 제게는 ‘무모한 도전’으로 느껴졌습니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하루 24시간 돌아가는 호텔이 직장인지라 취재 대상자가 심야에 근무할 때는 새벽에 홀로 남아 인터뷰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좀비처럼 없애도 없애도 어디선가 살아나는 오탈자들이었습니다. 10번, 20번 읽어보고 교정할 때는 안 나오다가 꼭 다른 사람 눈에서 발견되는 오탈자는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암적인 존재지요. 교정인력을 따로 둘 예산도 없어 혼자 ‘쇼’를 벌인 끝에 드디어 12월31일 노력의 결과물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벅찬 기쁨도 잠시, 큰 복병을 만났습니다. 선배가 우연히 발견한 엄청난 오탈자 하나! 현재 반얀트리서울 클럽앤스파 대표로 있는 이영일 총지배인님의 인사명령 알림글에서 ‘총지배인’의 ‘총’자를 빠뜨린 것이죠. 호텔에서 이러한 일은 사장을 과장이라 부른 것과 같은 엄청난 실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요? 선배와 둘이서 새해를 맞이하는 새벽을 함께 지새우며 한 손엔 칼, 다른 한 손에는 풀과 자를 번갈아 들며 ‘총’자를 따로 인쇄해 붙이는 단순노동을 해야만 했지요. 3000개의 ‘총’자를 미친 듯 오리고 붙인 뒤 선배와 함께 회사 앞 포장마차에서 마셨던 소주 한잔, 그리고 우동 국물의 맛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하룻밤 3000번 ‘풀칠의 추억’
    3000번의 ‘풀칠’, 그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덕에 신입사원 주제에 대표이사의 신년사를 써보는 영광도 누렸고, 지하부터 옥상까지 사내 조직 구성을 속성으로 파악하게 된 거지요.

    요즘 신입사원들 중에는 깨지고 상처받기가 두려워 무조건 쉽고 편한 일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시작이 편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한들 또 어떻습니까. 초년병 시절 흘린 땀이 충분한 보답을 받는다는 사실을 저는 그때 그 ‘풀칠의 추억’을 통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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