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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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승 영광 벌써 잊고 내일의 1승 고민 중”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08-09-08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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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0승 영광 벌써 잊고 내일의 1승 고민 중”
    경기가 끝나자 38발의 축포가 인천 문학구장을 수놓았다. 전광판에는 지난 감독시절의 영상이 흘렀고, ‘야신(野神·야구의 신)’은 자신의 배번 38번이 적힌 유니폼 대신, 구단에서 마련한 1000이란 숫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숫자 1000에는 그가 사령탑이었을 때 승리투수가 된 93명의 선수 사진이 담겨 있었다.

    프로야구 SK 김성근(66·사진) 감독이 9월3일 히어로즈를 8대 0으로 제압하고 정규시즌 1000승(892패)의 금자탑을 세웠다. 1984년 4월7일 OB 감독으로 MBC를 꺾고 첫 승을 거둔 이후 25년 만의 일. OB(1984~88), 태평양(1989~90), 삼성(1991~92), 쌍방울(1996~99), LG(2001~02), SK(2007~현재)를 거치며 17시즌 만에 세운 대기록이다. 역대 감독으로는 김응룡 감독(현 삼성 라이온즈 사장·1476승 1138패) 이후 두 번째. 김 감독이 선동열(해태)과 이승엽(삼성) 등 엘리트 선수들을 앞세워 승리를 거뒀다면, 김성근식(式)은 ‘모서리 야구’였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그는 1962년 약관의 나이에 야구를 위해 혼자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에서 ‘절대 후회하지 않겠다’며 자신과 약속했지만 그 마음은 곧 흔들렸다. 어깨 부상 탓에 1964년 은퇴. 한국말이 통하지 않는 그에게 야구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지도자의 길밖에는. 하지만 두뇌회전이 남달랐던 그는 뛰어난 지도력을 보였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선수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기업은행- 충암고-신일고 감독을 거쳐 1982년 OB 코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매년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지만 여섯 차례나 구단을 옮겼고, 주변의 시기와 질투도 끊이질 않았다.

    “사람들이 ‘반(半)쪽발이’라며 손가락질할 때는 ‘내가 너를 이겨주마’라며 이를 악물었다. 모서리에서 한발 물러나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절박함으로 살았다.”



    2002년 하위권으로 평가되던 LG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지만 구단과의 마찰로 옷을 벗었다. 승수도 862승에서 멈췄다. 그는 “리더는 자기 몸을 사리면 안 된다. 그래야 신뢰로서 부하를 통솔할 수 있다. 책임은 내가 지면 된다”는 말로 당시 기억을 정리했다.

    국내에선 더 이상 다른 팀을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다시 모서리. 결국 2005년 지바 롯데 코치로 한국을 떠날 때 고집불통 이미지와 김응룡 감독이 붙여준 ‘야신’이라는 별명만 남았다. 위기는 곧 기회였다. 지바에서 외국인 감독(바비 밸런타인)의 새로운 야구를 경험하면서 빠르고 조직적인 한국식 야구를 구상한 것. 그의 구상은 SK에 이식되면서 SK는 지난해 독주 끝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한 번 크게 웃을 법도 한데, 그는 “1000승은 숱한 실패와 고난 속에서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오늘로 잊겠다. 내일 1승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한편 통산 1000승 감독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55명, 일본 프로야구에선 11명이 달성했다. 메이저리그의 감독 최다승은 코니 맥 감독의 3731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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