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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판결이 너무해 일벌백계한다더니 ‘백죄일벌’

검찰 초동수사부터 문제…강력한 처벌 규정 없고, 국가·기업에 책임 물을 법적 근거도 부족

가습기살균제 판결이 너무해 일벌백계한다더니 ‘백죄일벌’

가습기살균제 판결이 너무해 일벌백계한다더니 ‘백죄일벌’

1월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 1심 선고 공판 직후 피해자 가족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동아일보]

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한 첫 형사재판에서 제조사 책임자 등 피의자들에게 무죄 또는 검찰 구형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형량을 선고했다. 이에 각 환경단체와 유가족은 “법원의 판결뿐 아니라 검찰의 초동수사부터 모든 것이 잘못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불법 화학제품 제조와 관련된 형사법 조항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이 잘못 만든 제품으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쳐도 고의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정 최고형이 징역 7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는 1월 6일 업무상과실치사상,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표시광고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69) 전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는 검찰이 신 전 대표를 기소하며 구형한 징역 2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형량이다. 한편 신 전 대표의 후임이던 존 리(48) 전 대표에게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법원은 함께 기소된 오모(41) 전 세퓨 대표에게 징역 7년,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혐의를 받은 김원회(62) 전 홈플러스 그로서리매입본부장에게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노병용(66) 전 롯데마트 대표에게는 금고 4년형이 내려졌다. 옥시, 세퓨, 홈플러스 세 제조사에는 벌금 1억5000만 원이 각각 선고됐다.



검찰 수사 미진해 형량 낮아

가습기살균제 판결이 너무해 일벌백계한다더니 ‘백죄일벌’

1월 6일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옥시)대표(위)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은 존 리 전 옥시 대표. [동아일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신 전 대표의 혐의에 대해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충분한 검증 없이 (제품을) 제조·판매해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발생시켰다. 심지어 제품에 ‘아이에게도 안심’ 등의 문구를 표시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법원은 신 전 대표의 혐의 중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특경법) 사기 등은 무죄로 판단했다. 7년 징역형은 그에게 인정된 2개 혐의를 병합해 내릴 수 있는 법정 최고 형량이다.   

법원 판결에 유가족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1월 6일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성명서를 통해 “이번 판결은 검찰의 늑장 수사와 외국인 임원 봐주기, 법원의 안이한 판단, 정부의 책임 회피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봐야 한다. 이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결코 막을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번 법원 판결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도 거리가 있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건강연구실이 지난해 12월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옥시 전 대표의 선고 형량을 묻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50.6%가 무기징역, 31%가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신 전 대표에 대한 판결이 징역 7년에 그친 것은 특경법상 사기죄가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금고 5년, 표시광고법 위반은 징역 2년이 법정 최고 형량이지만 특경법상 사기죄는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이다. 검찰은 당초 신 전 대표가 가습기살균제에 흡기독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판매해 이익을 취했다고 보고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고의로 피해자들을 속여 돈을 편취할 의도가 인정돼야 하지만 신 전 대표 등은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막연히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존 리 전 대표의 무죄 판결은 검찰 수사가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리 전 대표가 재직할 당시 제품의 안전성 관련 보고나 라벨 표시 문구가 거짓임을 의심할 만한 보고를 받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회사를 책임지는 대표이사가 제대로 된 보고를 받았는지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의 결정이 이해되지 않는다. 검찰이 옥시의 외국인 임원과 영국 본사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재판부도 “리 전 대표와 직접 보고를 주고받은 외국인 임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이 낸 증거만으로는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다”고 판시했다.

최 소장은 또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소시효가 7년이라 2009년 이전에 발생한 피해자는 제조사에게 아무런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당초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2년 8월 첫 형사고발을 했으나 검찰은 2016년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수사에 착수했다. 4년이라는 귀중한 공소시효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다. 이는 명백한 검찰의 직무유기이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수사는 형사고발과 동시에 시작되기는 했다. 2012년 첫 고소를 접수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서울중앙지검)은 해당 사건을 형사 2부에 배당하고 강남경찰서에 수사를 맡겼다. 그러나 7개월 뒤인 2013년 3월 수사가 돌연 중단됐다. 사망 원인에 대한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검찰이 기소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2014년 3월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질본)가 ‘361명의 피해자 중 104명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사망했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내놓자 경찰 수사가 재개됐다. 2015년 8월 경찰은 피고소 업체 15곳 가운데 옥시 등 8곳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2016년 1월에야 가습기살균제 피해 수사 전담팀을 구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정부는 시종일관 책임 회피

가습기살균제 판결이 너무해 일벌백계한다더니 ‘백죄일벌’

2016년 12월 26일 가습기살균제 피해가족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피해자 수가 적힌 팻말을 들고 정부의 책임 있는 수사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동아일보]

유족은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본격화되기 전 제품의 유·위해성 전수조사를 실시했다면 이처럼 흡기독성을 가진 제품이 시중에 유통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성분 중 흡기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진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와 PGH(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에 대해 1996년과 2003년 각각 ‘유독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PHMG는 96년 SK케미칼이 ‘카펫 항균용’으로 수입을 승인받은 물질이다. 밟고 다니는 카펫에 쓰이는 항균용 물질이 들이마시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오용되는 동안 정부는 그 어떤 규제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사후 대응도 유가족을 답답하게 했다. 2011년 9월 가습기살균제피해자모임이 결성됐지만 질본은 그로부터 2년 후인 2013년 7월에야 비로소 공식 피해조사에 착수했다. 가습기살균제가 질병 원인임을 확인하는 정식 역학조사도 턱없이 늦었다. 가습기살균제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온 건 2002년. SK글로벌은 이듬해인 2003년 호주 보건부 국립화학물질평가국(NICNAS)에 PHMG의 흡기독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조사 보고서를 올렸다. 질본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1년 8월에야 1차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의 관리 소홀과 늑장대응에 피해자들은 소송으로 맞섰다. 2012년 1월 17일에는 가습기살균제 사망자 유가족 6명이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사법부는 국가 손을 들어줬다. 2015년 1월 29일 서울중앙지법 제13민사부(부장판사 심우용)는 피해자 유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를) 관리해야 할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패소 판결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꾸준히 국가의 책임을 물었지만 정부는 계속 책임을 회피했다. 지난해 3월 28일 환경부가 가습기살균제의 안전 관리와 피해자 조사에 소홀했다며 감사원에 환경부 공익 감사를 청원하기도 했다. 5월 23일에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등 관련 공무원을 검찰 고발했다. 그러나 8월 24일 감사원은 ‘환경부의 책임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공익 감사를 거부했다. 공무원들에 대한 검찰 고발 역시 기소로 이어지지 못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이철희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장검사는 “조사 결과 (공무원들에게) 법적으로 죄를 물을 사항이 없어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이유는 법망의 구멍 때문이었다. 2014년까지 시행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의 인체 유독성을 확인하기 위한 위해성 평가는 정부당국의 선택 사항이었다. 이 때문에 정부당국이 관리·감독 책임에 소홀했을지라도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이러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구멍을 막고자 2013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제정돼 2015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화평법 제8조에는 ‘신규 화학물질은 물론이고 기존에 수입되던 화학물질이더라도 수입량이 연간 1톤 이상이라면 반드시 등록절차를 거쳐 유해성·위해성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외에도 유해화학물질이 함유된 제품은 ‘위해우려제품’으로 지정하고 제품 내 유해화학물질을 환경부 장관에게 신고하게 돼 있다(화평법 제33조).

그러나 화평법에도 허점은 있다. 한국법제연구원(법제연구원)이 1월 3일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등 화학제품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제 개선방안’ 보고서는 화평법의 문제점을 짚었다. 법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유해물질로 등록되지 않은 신규 화학물질의 경우 실질적으로 기업의 자율 규제만 거치면 최종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화평법 시행규칙 제23조에 따르면 신규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는 당국의 화학물질 유해성 검증 절차 없이 신청 기업이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만약 기업이 제출 서류의 내용을 조작해 유해성 심사를 통과한다면 또다시 생활화학제품 피해가 발생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막고자 해외에서는 화학물질과 함께 이를 원료로 한 제품도 검증 절차를 거친다. 유럽에서는 소독제, 보존제, 살균제의 경우 원료와 제품 모두 사전 유해성 평가를 포함한 허가 절차를 거쳐야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다. 미국은 살충·살균제를 농약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며 역시 사전 등록 절차를 거쳐야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일본에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생활화학제품을 광역자치단체가 상시 검사하는 절차가 있다. 김판기 용인대 환경보건학과 교수는 “화학물질 원료의 사전 허가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활화학제품별로 관리하는 사후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법은 개정됐지만 실효는?

한편 현행법으로는 법적 처벌 수위가 너무 낮고 국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도 없다 보니 법 개정 또는 제정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민사소송을 맡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황정화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현행법의 한계를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처럼 중대한 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하는 등 엄중한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막고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1월 5일 “고의로 소비자의 생명이나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제조사에게 산정된 피해액의 최대 3배를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제조물 책임법에 연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의 제조물 책임법 개정이 실효가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적잖다. 이미 2011년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실제로 적용된 사례가 아직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적용 대상을 ‘고의적’으로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로 제한한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2015년 8월 참여연대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제출한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입법청원안에는 ‘고의’는 물론, ‘중과실’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제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정부의 개정안대로라면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일어나도 해당 기업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이 불가능하다.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를 통과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 개정안’(가습기특별법) 역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정부는 폐섬유화 정도로 피해 수준을 평가해 피해자를 1~4등급으로 분류해왔다. 이 중 3, 4등급을 받은 피해자는 실질적 피해를 입었음에도 등급이 낮아 그동안 보상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가습기특별법의 내용은 이 3, 4등급 피해자에게 보상할 재원을 만들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및 원료물질 사업자로부터 분담금을 걷어 최대 2000억 원 규모의 특별구제 계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당초 발의된 법안에는 특별구제 계정에 정부도 기금을 출자하기로 돼 있었으나 최종 통과된 법안에서는 정부가 낼 몫이 제외됐다.

법안이 통과된 지난해 12월 29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성명을 통해 “특별법 중 구제기금이 정부 책임이 반영된 유일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환노위는 기획재정부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당초 정부 기금을 포함한 구제기금 내용을 제조사들만의 기금으로 조성하는 특별구제 계정으로 바꿨다”며 국회의 법안 처리 문제점을 짚었다. 






주간동아 2017.01.18 1072호 (p40~43)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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