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르포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고향 민심 탐방

‘꼭 대통령 되시길’ 응원 줄이어

반기문 동상 3개 철거는 정치인 변신 신호탄?

  • 충북 충주·음성=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꼭 대통령 되시길’ 응원 줄이어

‘꼭 대통령 되시길’ 응원 줄이어

충북 충주시 충주무학시장 내 복원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본가 ‘반선재’. [조영철 기자]

지방 중소도시의 흔해빠진 재래시장 한구석. 낡은 건물 하나를 관광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둘러보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소중한 유적을 살피듯 마당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 방 안에 장식된 장롱 모양새까지 세심히 관찰했다. 기역(ㄱ)자 구조로 지은 75.2㎡(약 25평) 슬레이트 가옥으로, 건물 앞쪽엔 ‘반기문의 선한 집-반선재(潘善齋)’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인근 충북 청주에서 일부러 찾아왔다는 한 중년 부부는 “예상대로 소박한 집”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도대체 언제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에 오느냐”며 주위에 되물었다. 



충청도서 전폭적 지지 “충주의 자랑”

충북 충주시 문화동 충주무학시장 인근에 위치한 반선재는 반 전 총장이 학창시절을 보낸 집을 충주시가 복원한 곳이다. 반선재를 관리하는 조준형 문화해설사는 “가끔씩 이 가옥에 반 전 총장 어머님이 들른다”고 운을 뗐다. 올해 97세인 신현순 여사는 지난해까지 큰딸과 함께 반선재에서 멀지 않은 충주호 근처 아파트에서 살았다. 지금은 서울로 이사했다. 조 해설사는 반 전 총장의 어린 시절에 관심 많은 관광객을 위해 설명을 이어갔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고향 충북 음성을 떠나 충주로 오셨답니다. 이곳서 초중고교를 다 마쳤고 서울서 대학과 군복무를 마칠 때까지 부모님을 찾아왔던 곳입니다. 반 전 총장 부친께선 가마니 공장을 운영했는데 1971년 보증을 잘못 서 20년 정든 이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후 잊혔는데, 2010년 가족이 수소문해 찾아보니 예전 형태 그대로 남아 있었던 거죠. 자칫 없어질 뻔한 집인데 집주인이 무상기증한 덕에 복원까지….”

2013년 새 단장한 반선재는 이내 인근에 위치한 충주무학시장의 상징이 됐다. 시장 곳곳에 유엔 마크와 함께 반선재 위치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시장에서 30년간 식당을 운영했다는 상인회 한 관계자는 “학이 춤을 춘다는 ‘무학(舞鶴)’과 반 전 총장의 이미지가 흡사하다”며 “그는 충주의 자랑이자 대통령감”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적어도 10년간 국내 활동이 없던 반 전 총장은 최순실 게이트로 몰락한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최근 차기 지도자 자질로 청렴과 인품이 급부상한 것도 반 전 총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다. 충청도민의 호응도 뜨겁다. 충청지역 언론사인 ‘충청투데이’ 조사(그래프 참조)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31.1% 지지율로 2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21%)와 3위 이재명 성남시장(10.7%), 안희정 충남도지사(10.2%) 등을 크게 앞섰다. 하지만 여러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전국 지지율에서는 10% 내외로 문 전 대표에게 밀리는 상황. 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귀국 뒤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면 간단히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선재를 찾은 사람 가운데는 유독 학생이 많다. 전기도 없는 시골마을에서 두각을 나타내 서울대, 외무고시를 거쳐 장관과 국제기구 수장이 된 입신양명 스토리가 학생들에게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마당 한가운데 그의 학창시절 일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꾼다. 그러나 지금 공부를 하면 꿈을 실현시킨다.’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했을 ‘소년 반기문’ 이미지에 어울리는 문구다. 이 고택을 처음부터 ‘반선재’라 불렀을 리 없고, 주위 시장상인에게 물어도 작명의 연원을 아는 이가 없었다. 이곳에 비치된 안내서에는 ‘평생 선한 꿈을 키우며 살아왔던 그의 학창시절이 담긴 본가 브랜드’라고 적혀 있을 뿐이었다. 충주시청에 문의해서야 답을 들었다. 2013년 복원 당시 충주시에서 후보를 만들었고, 반 전 총장에게 직접 허락을 받았다는 것. 즉 ‘착한 사람의 집’이란 이름에는 반 전 총장이 자신을 어떻게 브랜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셈이다.



주민 “그때는 재선할 줄 모르고 만든 거지”

‘꼭 대통령 되시길’ 응원 줄이어

충청투데이-리얼미터
조사 대상 : 대전·충남·충북·세종 거주 1005명
조사 일시 : 2016년 12월 20~21일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오른쪽)유엔기가 내걸린 반선재 내부에 설치된 반기문 전 총장의 학창시절 모형. [조영철 기자]

충주시내에서 반 전 총장 생가가 있는 음성군 상동1리까지는 24km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는 40분 정도 걸린다. 충북 정치권에서는 한동안 반 전 총장의 진짜 고향을 놓고 적잖은 논쟁이 벌어졌다. 상동1리 행치마을은 광주 반씨가 수백 년간 살아온 집성촌. 반면 충주는 반 전 총장이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내며 문화자본을 축적한 실질적 고향이다. 이 때문에 반선재 복원은 음성 생가에 대한 충주의 반격이기도 했다. 충주에서 오랫동안 환경운동을 한 박일선 작가는 기름장어로 불리는 반 전 총장 특유의 ‘외교적 행보’를 고향 충주의 지리적 특성과 연결해 해석했다.

“충주의 옛 지명이 중원(中原)입니다. 국토의 중심이란 얘기죠. 5세기 고구려가 한강 상류인 이곳을 정벌하고 중원고구려비를 세웠는데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 번씩 돌아가며 차지했던 곳입니다. 역사상 충주 출신 외교관이 꽤 있는데, 이는 정치적 호불호를 표출하기를 꺼리는 지역 특유의 문화 덕분입니다.”

연초 평일임에도 반기문 생가는 단체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으로 제법 북적거렸다. 평일에는 60대 이상 단체 관광객이, 주말에는 승용차를 타고 오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다고 했다. 한 달 평균 5000명가량이 찾는다. 생가는 보덕산이 좌우에서 감싸 안는 듯한 지세의 행치마을 한복판 양지바른 터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주민은 20여 가구 100여 명. 반씨 집안 사람이 대부분일 뿐 아니라 기념관과 반기문평화랜드까지 자리하고 있어 ‘반기문 마을’이란 타이틀과 잘 어울린다.

마을회관부터 찾았다. 삼삼오오 앉아 소일을 하던 어르신들은 반씨 집성촌답게 반 전 총장과 친인척 관계였다.

“나는 촌수로 따지면 8촌이고 저 친구는 12촌이고….”

반 전 총장의 고향을 확인하는 질문엔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충주가 고향이 되나. 여기서 태어나고 조상묘가 다 여기 있으니 음성이 고향이지. 충주는 잠깐 공부하러 나간 거고.”

하지만 대통령선거(대선)와 관련해서는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젓고 입을 다물었다.

“여보쇼. 여기 사람 모두가 그분 친인척인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행보를 논합니까. 그저 뭐든 잘하길 바랄 뿐이지.”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간 이 마을을 네 번 찾았다. 아버지 성묘를 위해서다. 이곳에 기념공원을 만드는 사업은 총장 임기 1차 종료를 앞둔 2011년 진행됐다. 당시 그의 연임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말리는 분위기는커녕 오히려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인 첫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예우 분위기가 지나치게 뜨겁다 보니 기념관 안쪽에는 그의 상반신 밀랍인형, 생가 앞에는 실물을 본뜬 청동조형물, 마을 뒷산을 깎아 만든 반기문평화랜드에는 두 팔을 벌린 전신 동상 등 기념상 3개가 세워졌다. 이후 연임이 확정되고 반 전 총장의 유엔 내 업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충청지역 여론도 복잡해졌다. 자칫 생존 인물에 대한 우상화 작업으로 비칠 여지가 있었기 때문.

결정적으로 지난해 8월 이곳을 찾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마치 북한에 온 것 같다(found echoes of North Korea)”라고 직격탄을 날리고, 그 무렵 반 전 총장의 대선행보가 구체화되면서 이곳을 관리하는 음성군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음성군은 지난해 9월 5일 인물 관련 조형물 3개를 모두 철거하면서 “개인 우상화 논란 탓에 동상은 앞으로 군청에 보관하겠다”고 밝혔다. 철거와 관련해 더 정확한 의사결정 과정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9월 5일’이 사실상 대선후보 행보를 결심한 날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지역 정가에선 돌았다. 동상을 그대로 놔뒀다면 현실정치와는 무관하게 살겠다는 의지라는 설명이다.



사라진 동상과 뜨거운 방명록

‘꼭 대통령 되시길’ 응원 줄이어

충북 음성군 반기문 전 총장 생가. 상당수 방문객이 ‘반기문 대통령 당선’을 소망하는 메시지를 방명록에 남겼다. 지난해 9월 철거된 생가 앞 반기문 전 총장 동상(왼쪽). [조영철 기자]

지푸라기를 두껍게 덧대 만든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생가는 겨울 햇살 덕에 눈에 잘 띄었다. 교회 승합차를 타고 인근 천안에서 왔다는 60대 장년층들이 초가집을 세밀히 살피며 “집터가 아주 좋다”는 풍수학적 평가를 던지고는 기념관 쪽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엔 보덕산에서 이름을 딴 ‘보덕정(普德停)’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앞에는 ‘장수바위’가 자리 잡고 있다. 모두 광주 반씨 행치 종중에서 세운 기념물이다. 군청 측은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니 큰 문제가 없다”는 태도. 하지만 덕을 널리 퍼뜨린다는 ‘보덕’이나, 백마를 탄 장수가 천하를 통치한다는 전설을 담은 ‘장수바위’는 누구라도 반 전 총장을 염두에 둔 기념물이라고 오해할 법했다. 마을 왼편 구석에 마련된 기념관은 비좁아 보였다. 영상으로 마을 역사와 반 전 총장의 삶을 보여주고 전시물로 일대기를 요약하는 수준. 오히려 가장 흥미로운 전시물은 방명록에 관광객들이 남긴 반 전 총장에 대한 응원 메시지였다.

지난해 여름까지는 ‘자랑스럽다’ ‘본받고 싶다’ ‘건강 조심하시라’ 같은 문구가 대부분이었지만 가을부터 점차 ‘현실정치 참여’를 권하기 시작하더니, 새해 들어 ‘반드시 대통령이 되시라’고 소원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마치 대선후보 추대 서명을 보는 듯했다. 기념관을 찾은 70대 어르신들도 연신 ‘반 대통령’을 소재로 덕담을 주고받는다.

“좋은 동네서 사셔서 좋겠습니다. 앞으로 음성이 큰 도시 되겠구먼.”

“돼야지, 꼭 돼야지. 우리가 팍팍 밀어줘야지!”

지난 연말 충주와 청주 등 충북지역에선 정치 모임이 유달리 활발했다고 한다. ‘반풍(潘風)’에 고무된 이들이 새로운 팬클럽 ‘반딧불이’도 만들었다. 현재 미국 뉴욕 공관을 떠나 애팔래치아 산장에서 머물고 있는 반 전 총장은 1월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주간동아 2017.01.11 1071호 (p14~16)

충북 충주·음성=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6

제 1216호

2019.11.29

방탄소년단은 왜 그래미 후보에도 못 올랐나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