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7

2016.12.14

김창환의 통계 인사이트

‘열공’해도 계층 이동 못 한다!

‘흙수저’도 성공하는 세상 만드는 최선의 길은 복지 확대

  • 미국 캔자스대 사회학과 교수 chkim.ku@gmail.com

    입력2016-12-09 17: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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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성남시장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야권 주자 중에서 선도적으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한 덕이지만, 그가 성남시장으로서 청년배당 등 복지를 확대한 측면도 한몫했다. 이 시장의 청년배당에 대해 새누리당 신보라 의원은 돈이나 상품권을 주는 것보다 직업훈련 확대 등 교육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국회에서 질문한 적이 있다. 복지 확대와 기회 평등 확대 가운데 어느 쪽이 계층 격차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는 사회학계의 오랜 논쟁거리다. 과연 어느 방법이 더 효과적일까.

    ‘한국사회학’ 최신호에 실린 문수연 중앙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생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사회계층에 따른 자녀의 교육 수준 격차가 해마다 확대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고교 졸업자의 8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지만, 농촌자영업자 자녀의 대학 진학률은 60% 미만 수준이다. 이들이 수도권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8%에 불과하다. 특히 부모의 사회계층에 따라 자녀의 학력 수준이 달라지는 현상은 40대보다 30대에서 더 심했다. 이에 따라 ‘금수저’가 모든 기회를 차지하고 ‘흙수저’는 성공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메리토크라시의 배신

    한 사람이 가족의 배경에 따라 금수저와 흙수저로 운명이 갈리는 현실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바로 공정한 기회다.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한 뒤 여기서 발생하는 결과의 격차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즉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를 제대로 실천하자는 것이다. 유력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인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의 경제정책도 ‘공정성장론’이다.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면 흙수저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다고 한다.  

    매우 상식적이고 지당한 주장으로 들린다. 그런데 맞는 말일까. 어떤 주장이 옳다고 판단하는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공정한 사회를 이루고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가족 배경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기획은 현대사회에서 많은 정책의 근간이 되는 이상이다. 기회의 평등은 도덕적으로 옳다.



    하지만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가족 배경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기획이 역사적으로 성공해왔는지는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연구에 따르면 기회 평등 정책이 가족 배경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가 없다. 다시 말하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했을 때 흙수저의 불리한 조건이 줄어들고 흙수저도 금수저만큼 성공한다는 일관된 증거가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시도가 있었음에도 ‘기회 평등’이라는 인류의 기획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실제로 기회 평등을 제공하지 못했을뿐더러 가족 배경의 영향력도 줄이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재직 중인 미국 캔자스대의 에밀리 라우셔(Emily Rauscher) 교수는 미국에서 19세기에 실시된 의무교육이 사회 이동에 끼친 영향력을 연구했다. 이 연구 결과는 사회학 분야 최고 학술지인 ‘미국 사회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5월호에 실렸다. 미국 각 주의 초등학교 의무교육은 대략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시작됐다. 그 전까지는 부유한 가족의 자녀만 교육을 받았지만, 의무교육이 실시된 이후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모든 아이가 교육을 받게 됐다. 교육 기회의 평등이 확대된 것이다. 의무교육 실시 이후 취학률, 특히 노동계급 자녀의 취학률이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육 기회의 확대가 가난한 집안 출신 아이의 사회 이동을 촉진했을까. 평등한 기회가 사회 이동을 촉진한다면 빈곤층 자녀의 상향이동률이 높아졌어야 한다.

    라우셔 교수는 바로 이것을 연구했다. 의무교육이 실시되기 직전 세대 아버지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와, 의무교육이 실시된 직후 세대 아버지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것이다. 부자간 사회경제적 지수의 상관관계가 높으면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에게 그대로 승계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이 지수의 상관관계가 낮으면 아버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이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끼치는 영향력이 작다는 의미가 된다. 기회 평등이 계층 이동을 촉진한다면 의무교육 실시 이후 이 상관관계가 줄어야 한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의무교육 실시 이전 세대의 지수 상관관계는 0.26, 의무교육 실시 이후는 0.27로 통계적으로 변화가 없다.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상관관계가 약간 높아졌다. 기회 평등이 계층 이동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이다.

    라우셔 교수의 연구는 19세기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니, 경제가 번영한 20세기 후반 상황은 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 가능한 최신 자료를 이용한 연구 대부분이 20세기 후반에도 세대 간 계층 이동이 활발해진 증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과 평등에 집중한 북유럽의 교훈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의 소득 탄력성(elasticity)에 대한 탁월한 논문인 이철인 서울대 교수와 게리 솔론(Gary Solon) 미국 애리조나대 교수의 공동연구에 따르면 1977년에서 2000년 사이 이 탄력성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대략 0.4에서 0.5 사이 구간에 머무르고 있다. 세대 간 소득 탄력성이 높으면 아버지 세대 소득이 자녀 세대 소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소득 탄력성이 낮으면 자녀 세대 소득이 부모 세대 소득과 무관한 것을 뜻한다.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세금 자료를 연결해 연구한 라지 체티(Raj Chetty)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그의 동료들의 연구 결과도 20세기 후반 큰 사회 진보와 경제 번영이 있었음에도 세대 간 사회 이동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교육 기회의 확대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교육 기회의 확대는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이는 다시 절대적 사회이동률을 높인다. 절대적 사회이동이란 아버지 세대와 비교해 자녀 세대의 처지가 절대적으로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아버지나 아들의 소득이 각각 자신이 속한 세대에서는 100명 중 60등 정도에 해당해 소득의 상대적 순위에 변화가 없더라도, 아버지 세대보다 아들 세대의 소득이 높아지면 절대적 사회이동률은 상승한 것이다. 교육 기회 확대는 자녀 세대의 상대적 지위를 높이지는 못해도 그들의 삶이 아버지 세대의 삶보다 개선되는 데는 기여한다. 한 가지 우울한 전망은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뉴노멀 상황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회 평등이라는 기획이 실패했다면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매우 잘 알려지고 성공한 모델이 있다. 복지를 확대해 계층 간 격차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기회 평등에 천착한 미국보다 결과 평등에 집중하던 북유럽 복지국가에서 세대 간 계층 이동이 더 활발하다. 계층 격차를 줄이는 효과가 확실하게 증명된 거의 유일한 방법이 바로 복지 확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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