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3

2006.02.21

“먹는 게 죄?” 이상한 세상, 천재적 발상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6-02-20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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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게 죄?” 이상한 세상, 천재적 발상
    “천재적이지 않니?”

    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 시사회를 보고 나오던 관객이 흥분해서 말했다. 단편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등으로 이미 영화계에서 입 소문을 탄 신재인 감독의 첫 번째 장편에 대한 평이다.

    올해 37세인 신재인은 31세에 영화에 입문해 두 편의 단편영화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성일의 행방불명’을 발표해 비평가·제작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여성 감독이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의 배경은 어느 고아원이다. 이곳에선 “식욕이 죄악”이라는 고아원 원장의 말이 진리다. 예수님이 식욕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식욕은 수치이며, 따라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량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식사 대신 초코파이와 우유 하나를 받아 재래식 화장실에 들어가 먹으며 회개한다. 많이 먹지 않는데도 비만한 소년 신성일은 비난의 대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고아원에서 이영애라는 소녀가 오고, 김갑수 등 몇몇 아이들이 원장이 밥 먹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고아원에는 반란의 기운이 팽배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두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하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빌려온 ‘식탐’이라는 소재에 대한 것이다. 센과 치히로의 부모는 식탐 때문에 돼지로 변한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에서 식탐은 왕따의 이유이며, 배가 터지는 벌을 받는 죄악이다.

    “먹는 게 죄?” 이상한 세상, 천재적 발상
    다른 하나는 영화에 등장하는 신성일, 이영애, 김갑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배우 신성일, 이영애, 김갑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먹는 것이 죄악인 세계가 있고, ‘시내’라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먹는 일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믿음과 배신에 대한 것이다. 또는 진짜와 가짜에 대한 이야기다.

    ‘억압’에 대한 우화를 펼쳐보이던 전반부의 내용이 후반부로 가면서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되는 건, ‘시내’에서 음식을 던지고 노는 야구부 소년들과 길거리에서 토하는 사내, 치킨집에서 닭고기를 먹는 사람들의 식욕이 이상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의 몸, ‘나’의 의지와 자유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진짜’일까.

    영화의 아이디어는 과연 ‘천재적’이다. 거칠고 노골적이면서도 상업적 코드를 갖추고 있다는 점 또한 ‘천재적’이라는 평을 듣기에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속편 ‘김갑수의 운명’ ‘심은하의 잠적’에서 아마도 감독의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제작비의 절반이 마련됐으니 신재인랜드에 투자하세요. 세금도 내는 훌륭한 회사입니다”라는 당당한 권유가 영화 소개란에 나와 있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2006년 한국 영화의 수확이며, 상업영화가 스크린을 점령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는 건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다. 2월16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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