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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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흔들고 간 ‘탱고의 전설’

  • 입력2005-10-24 0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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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까지 흔들고 간 ‘탱고의 전설’

    파블로 베론(오른쪽)이 주연한 영화 ‘탱고 레슨’.

    나는 그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을 못 잤다. 어느 정도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를 만날 생각을 하니까 그 정도로 마음이 설렌 것은 사실이다. 살아 있는 탱고의 전설이라 불리는, 샐리 포터 감독의 영화 ‘탱고 레슨(The Tango Lesson)’의 주인공, 파블로 베론이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하던 10월6일 한국에 도착해서 13일 한국을 떠났다.

    그가 한국에 온 다음 날부터 사흘 동안 나는 매일 그를 만났다. 그리고 일요일 밤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그는 참이슬과 백세주를 좋아했다. 매운맛의 오징어무침도 잘 먹었다. 그는 한국식으로 술자리에서 노래를 한 곡 뽑기도 했다. 거장답지 않게 겸손했고 친절했으며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탱고를 출 때는 무서운 카리스마가 그를 휘감았다. 춤을 출 때 그의 주변에서는 번개의 하얀 칼날이 번뜩거렸고 천둥이 치면서 말들이 구름 위를 휘몰아 달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란도’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소설이다. 200년은 남자로, 그 뒤의 200년은 여자로 사는 사람을 통해서 남녀의 성적 차이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내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이다. 샐리 포터는 이 기이한 소설을 뛰어나게 형상화했다. 그녀가 만든 ‘탱고 레슨’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1997년 대한극장에 들어갈 때만 해도 ‘올란도’의 감독이 만든 신작 영화라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겸손하고 친절한 탱고의 신

    그런데 영화 ‘탱고 레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는 그때부터 탱고에 매혹당했다. 영화 내용은 감독의 자전적 성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신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고 있던 샐리 포터는, 우연히 파블로의 탱고 공연을 보게 된다. 그녀는 그때부터 탱고에 매료되어 파블로에게 개인강습을 받는다. 그들은 탱고를 가르치고 배우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만, 곧 파블로에게는 새로운 여자가 생긴다. 한편 샐리 포터의 시나리오를 본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녀는 집수리를 위해 몇 주 동안 집을 비워야 할 처지가 되자 파블로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는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좋은 친구 관계로 변화되면서 탱고를 추기 시작한다.

    국내에도 소개된 스페인 출신의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탱고’가 탱고 쇼를 만드는 무대를 중심으로 정통 탱고를 소개하고 있다면, 샐리 포터의 ‘탱고 레슨’은 90년대 이후 등장한 누에보 탱고, 즉 새로운 탱고를 파블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파블로는 샐리 포터 감독에게 탱고를 가르쳐주다가 이성 관계로 발전하고 갈등한다. 영화의 그런 부분들도 사실에 기초한 거냐? 이건 정말 궁금했던 거였다.

    “샐리 포터 감독에게 탱고를 가르쳐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는 나의 어머니뻘이다.”

    영혼까지 흔들고 간 ‘탱고의 전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파블로 베론과 그의 탱고 파트너 노엘 스트라자(왼쪽).

    파블로를 만날 때까지, 아니다, 파블로에게 나이를 물어볼 때까지 나는 그가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연상인 줄 알았다. 그는 텁수룩하게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길렀다. 그래서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탱고 레슨’ 속에서도 그의 상대역이 샐리 포터였기 때문에 그는 실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1970년 10월17일생, 35살이었다.

    난 사흘 동안 파블로에게서 탱고 레슨을 받았다. 같이 탱고 강습을 받던 한 탕게라(Tanguera·탱고 추는 여자)는 그가 바람둥이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에게 친절한데, 그냥 친절한 게 아니라 바람둥이 특유의 제스처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강습이 예정 시간보다 30분을 넘겨 끝났다. 파블로에게 개런티를 지불해야 할 강습 주최자는 불안해서 그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노 프러블럼!”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다정했으며 귀찮은 부탁을 싫다고 거절하지 않았다.

    특히 10월8일 토요일 밤 11시30분, 대한토탈댄스협회에서 그의 공연이 있었다. 원래는 부산국제영화제 측과 협의해서 정식 공연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정 때문에 정식 무대공연은 무산되었고 댄스협회의 마룻바닥 위에서 수강생들을 관객으로 하고 공연을 펼쳤다.

    그의 공연은 정말 숨을 멎게 만들었다. 원래는 두 곡만 추기로 되어 있었지만, 관객들의 이어지는 환호성과 기립박수로 한 곡을 더 추고, 계속 앙코르가 이어지자 한 곡 더 추어서 모두 네 곡을 추었다. 공연이 끝난 뒤 많은 관객들은 그와 같이 사진 찍기를 원했다. 사인이 아니라, 그의 곁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한 것이다. 공연 도중에는 일체의 디카나 폰카, 또는 캠코더 촬영이 허가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공연 뒤에는 그 많은 관객들과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일일이 사진촬영에 응해주었다. 정말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내의 어떤 스타도 자신의 팬들에게 이렇게 친절한 모습을 나는 보지 못했다. “파블로 베론 정도면 거만을 떨어도 되는데 너무 친절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모두들 동의했다. 그는 탱고의 신이었으니까.

    한국 동호인들이 생일 파티 열어줘

    그는 관객들의 박수에 답례하면서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대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우리에게는 익숙했지만 그에게는 낯설 불교식 인사였다. 마지막 강습이 끝난 뒤 뒤풀이를 가서 그에게 종교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몇 년 전 달라이 라마를 만난 적이 있다. 달라이 라마와 일주일 정도를 함께 보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때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다. 조그만 불상도 늘 몸에 가지고 다닌다.”

    호신불이라고 부르는 작은 불상을 지니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는 1986년부터 87년 사이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뮤지컬 ‘에비타’ ‘캬바레’ 등에 출연했으며, 89년에는 파리에서 탱고 쇼인 ‘탱고 아르헨티나’에 출연했다. 이 쇼는 오랫동안 세계순회를 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영혼까지 흔들고 간 ‘탱고의 전설’
    그의 첫 영화는 조지 포시야 감독의 ‘Cipayos’(1988년)였다. 그리고 ‘탱고 레슨’의 성공은 그를 국제적 인사로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으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백악관에 초대되어 탱고 공연을 했다. 그리고 2001년에는 로버트 듀발이 프로듀서한 ‘더 컵’에 출연했고, 샐리 포터 감독의 ‘The Man Who Cried’에서 조니 뎁과 함께 출연했다.

    또 2002년에는 로버트 듀발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하고 감독까지 한 ‘Assassination Tango’에 출연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파블로는 유명한 탱고 댄서인 제럴딘 로드리게스와 탱고를 춘다.

    “사실 그 장면은 즉흥적인 것이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세 번 정도 호흡을 맞추고 즉흥적으로 안무하여 춤을 춘 것이다. 그녀가 여섯 살 때부터 나는 그녀와 춤을 춰왔는데 그때도 춤을 잘 추었다. 그리고 춤을 춘 장소는 낡은 공장이었고 바닥은 거의 자갈밭이었다. 춤을 출 수 없는 장소였지만, 촬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추었다.”

    현재 파블로의 탱고 파트너는 노엘 스트라자다. 2002년 가을 오디션을 통해서 파블로는 자신의 새로운 탱고 파트너를 찾았다. 노엘은 그 전에 ‘탱고 레슨’에도 같이 출연한 인연이 있었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하루 전날, 압구정동에 있는 탱고 바 ‘땅게리아 델 부엔아이레’를 방문했다. 탱고 바를 밀롱가라고 부른다. 그의 밀롱가 방문은 인터넷상에 순식간에 퍼지면서 많은 탱고 동호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10월17일이 그의 생일이라는 것을 기억해내고 불을 끈 상태로 기다리고 있다가 파블로가 들어오자 생일 파티를 열어주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그의 유명한 탭댄스를 보여주었다. 영화 ‘탱고 레슨’에도 등장했던 그 유명한 탭댄스를 나는 부산에 있느라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쉽다.

    파블로 베론은 아티스트였다. 그는 섬세했고 창의적이었다. 오랜 연마로 어느 경지에 오른 단순한 탱고 기술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또 대중에게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줄 아는 뛰어난 연기자였다.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의 탱고 공연을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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