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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해외 부실공사 ‘망신’

싱가포르서 시공한 30층 빌딩 0.1도 기울어 … 지반공사 규정 안 지킨 혐의 ‘기소’

삼성물산, 해외 부실공사 ‘망신’

삼성물산, 해외 부실공사 ‘망신’

래플스 플레이스의 처치가(church street)에 위치한, 삼성물산이 신축한 30층짜리 오피스 빌딩.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싱가포르에서 고층빌딩을 신축한 것과 관련, 부실시공 혐의로 기소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싱가포르 유력 일간지인 스트레이트타임스는 7월1일 삼성과 이 공사의 설계사 및 감리사가 건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국내 건설업체가 부실시공 혐의로 싱가포르 법정에 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가 된 건물은 높이가 173m(첨탑까지)에 달하는 30층짜리 오피스 빌딩. 이 빌딩은 현재 0.1도 기울어진 상태다. 이에 싱가포르의 건설산업을 관리 감독하는 국가개발부 산하 건설청은 삼성 측이 애초에 건설청으로부터 허가받은 대로 지반공사를 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이에 삼성 측이 기소된 것. 혐의가 확정되면 삼성은 5만 싱가포르달러(약 3078만원) 이하의 벌금 혹은 12개월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게 된다. 이 빌딩의 설계사는 허가 사항을 함부로 변경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이른바 약식기소 같은 것으로 최악의 경우 2000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실 보상금 246억 지급설 현지 언론에 보도

이 ‘기울어진 빌딩’은 매립지 위에 세워졌다. 지반이 약해 고층빌딩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땅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 이를 위해 삼성이 사용한 건설 방법은 파일(pile) 공법. 콘크리트나 목재, 철제, 모래 등으로 만든 말뚝을 땅에 박아 땅을 단단하게 한 뒤 건물을 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삼성은 2000년 7~10월 파일 공사를 하면서 공사 직전 건설청으로부터 승인받은 계획대로 공사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스트레이트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애초 허가된 공사계획은 콘크리트 말뚝이 단단한 지반을 뚫고 최소한 5m 이상 내려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73개 콘크리트 말뚝 중 66개는 이 계획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조원철 교수(연세대 토목환경공학)는 “그렇게 많은 수의 콘크리트 말뚝을 5m 덜 박아도 되는 경우라면 설계 변경 절차를 밟아야 한다”면서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불법시공 내지는 의도적인 부실시공이며, 그 결과 건물이 기울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파일 공법에는 꽤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게 건축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콘크리트 말뚝을 많이, 그리고 깊게 박을수록 공사자재 비용과 박는 비용이 불어나게 된다. 결국 삼성은 콘크리트 말뚝을 애초 계획보다 얕게 박음으로써 상당한 공사비용 절감을 꾀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삼성물산, 해외 부실공사 ‘망신’

싱가포르 금융 중심지인 래플스 플레이스 거리.

그러나 삼성물산 관계자는 “계획대로 파일 공사를 시행했으나 암반 밑에 연약층이 나타나 일부 부동침하가 일어난 것으로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싱가포르 건설현장에서 다년간 지반공사를 담당했던 한 실무자는 “래플스 플레이스 일대에는 30층짜리 빌딩은 중간급 고층빌딩 정도밖에 안 된다”면서 “이보다 훨씬 높은 빌딩들이 많기 때문에 더 깊이 말뚝을 박는 파일공사가 많이 이뤄졌을 것이고, 때문에 이 지역 지층에 대한 정보가 많았을 텐데 사전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며 의아함을 표시했다.

삼성이 건설한 빌딩이 기울어졌다는 사실은 2001년 1월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싱가포르 전역에 알려졌다. 싱가포르 언론들은 이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스트레이트타임스와 경제지 비즈니스타임스는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보도했으며, 세계 3위 재보험회사인 젠르(Genre)는 2004년판 아시아재난보고서에 이 기울어진 빌딩에 대한 언론 기사들을 간추려 게재하기도 했다.

‘기울어진 빌딩’은 싱가포르강 남쪽에 위치한 래플스 플레이스에 자리하고 있다. 싱가포르를 처음 발견한 스탬퍼드 래플스 영국 총독의 이름을 딴 이 지역은 세계 유명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는 싱가포르의 ‘월가(Wall Street)’ 같은 곳. 그러나 2002년 말 완공이 목표였던 이 빌딩은 2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도 입주하지 않은 채 텅 비어 있다. 세입자들을 입주시키는 데 필요한 사전입주허가서도 정부 당국으로부터 발급받지 못한 상태다.

안전성은 인정받았지만 신용 큰 타격

여러 언론보도 내용을 간추려 게재한 아시아재난보고서는 삼성이 이번 부실시공에 대한 보상금으로 4000만 싱가포르달러(약 246억원)를 지급하게 됐다고 전했다. 삼성이 받은 이 빌딩의 공사 계약금액이 3300만 미국달러(약 341억원)인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수준의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보상금은 입주가 지연되는 바람에 건물주들이 손해 보게 된 임대료 수익과 영구적으로 기울어진 상태에 놓이게 된 점에 대한 보상이며, 이 금액에 보수공사 비용까지 포함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도 전했다.

또한 삼성은 앞으로 이 빌딩의 10개 층을 10년간 장기 임대하기로 건물주들과 합의했다. 싱가포르 각지에 흩어져 있는 삼성 계열사를 모두 이 빌딩에 입주시킬 계획인 것. 그러나 삼성물산 관계자는 보상금 부분에 대해서는 “건물주들과 합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빌딩이 기울어지는 ‘재난’을 당한 삼성물산은 이 빌딩 건설사업에서 수익을 남길 수 있을까. 혹은 보수공사 비용 등으로 인해 큰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삼성물산 관계자는 “인테리어 공사가 끝나는 내년 2월에나 따져볼 수 있는 일”이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삼성물산, 해외 부실공사 ‘망신’

기울어진 빌딩의 소유주 중 한 곳인 캐피털랜드가 자사 홈페이지에 이 빌딩을 소개하고 있다.

다행히 이 빌딩은 건설청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획득했다. 지난해 10월 콘크리트 말뚝을 추가로 박는 공사가 완료됐으며, 모니터링 결과 더 이상 기울어짐 현상이 진행되지 않음이 확인된 것.

빌딩의 안전성을 인정받았음에도 이번 사건으로 삼성이 받은 타격은 쉽게 가실 것 같지 않다. 싱가포르의 한 연약지반개량공사 전문가는 “이번 일로 삼성이 싱가포르의 건설산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싱가포르 언론들이 ‘건물을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까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싱가포르에 이번에 문제가 된 빌딩 이외에도 부실시공으로 기울어진 빌딩이 있느냐”는 주간동아의 질문에 건설청은 “이번 건과 비슷한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혀 왔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70~71)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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