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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모든 것 즐기세요”

뉴욕 패션 유학 성공하는 법 … “많이 보고 많이 생각, 창의성 곁들이면 금상첨화”

  •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뉴욕 모든 것 즐기세요”

“뉴욕 모든 것 즐기세요”

뉴욕 중심가의 젊은이들.

“뉴욕을 충분히 즐기세요. 소호, 이스트 빌리지, 할렘 등이 각각 맛이 다르잖아요.”

5월 뉴욕의 파슨스 스쿨을 졸업한 신참 디자이너 박새나(27) 씨는 ‘뉴욕에서 패션 공부 잘하는 법’의 첫째 조건을 이렇게 말한다.

거리의 화가들과 액세서리 디자이너들이 그림과 목걸이를 진열해놓은 아기자기한 소호 거리에도 디자인 소재가 있고,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이스트 빌리지 또한 디자인 소재가 넘쳐난다. 박 씨는 “없는 것이 없는 뉴욕에서 자신만의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 뉴욕에는 패션 공부를 하러 건너온 한국 유학생들이 무척 많다. 이들 중 일부는 성공을 거두지만, 많은 이들은 꿈꾸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돌아간다. 뉴욕에서 패션 공부를 계획하고 있는 이들에게 4년 장학생으로 뉴욕 패션 유학을 마친 박 씨의 경험담이 좋은 정보가 될 수 있기에 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성공 가도 신참 디자이너 박새나 씨



박 씨는 미술대 출신이 아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다니면서 글쓰기를 즐기며 방송작가를 지망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테리어가 재미있게 느껴져 학원에 다녔다.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마련해 남들은 잘 가지 않는 몽골, 터키, 이집트, 이스라엘 등을 여행하느라 졸업이 한 학기 늦어졌다. 졸업 후 홍콩계 회사에 두 달 다니다가 디자인 유학을 결심, 마침내 2001년 파슨스 스쿨 학생이 됐다.

“입학허가서를 받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보내야 하는데 학교 측은 드로잉 12~20점을 요구합니다. 16~18점 내면 적당하다고 해요. 이때 그림 잘 그리는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시각이나 소재 선택으로 신선미를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고 자화상을 꼭 제출해야 하는데 이것도 자기 얼굴을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신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얼굴 모양이나 색상을 분해해서 재배치하는 등 창의성을 보여줘야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박 씨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1학년부터 다니기로 했다. 파슨스 스쿨의 1학년 교육과정은 미술만 가르치는데, 이 과정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파슨스 스쿨은 기본을 중시하고 일정 기준 이상이 되도록 공부를 시킨다. 박 씨는 “스케치 수십 건을 며칠 만에 해오라는 등 숙제도 빡빡했고, 두 번 결석하면 과락(科落)을 시켜 학생들이 매우 긴장하며 공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공 수업이 시작되는 2학년 때 160명이던 2005학번(미국 대학은 졸업연도를 기준으로 학번을 정한다) 패션디자인 학생 중 졸업한 학생은 120여명에 불과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성격’의 박 씨는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갔다. 런던의 유명한 패션 학교 세인트 마틴 스쿨이었다. 박 씨는 뉴욕과 런던의 차이를 이렇게 말한다.

“뉴욕 모든 것 즐기세요”
“뉴욕 모든 것 즐기세요”

삭스 핍스 애버뉴 길가 쇼윈도에 전시된 박 씨의 작품(위)과 박새나 씨.

“뉴욕은 입을 만한 옷, 보기 좋은 옷을 중시하는 반면, 런던은 ‘패션=아트’로 인식하면서 예술성을 가장 강조합니다. 또 뉴욕은 단순한 고급품을 중시하고, 런던은 아이디어를 강조합니다. 뉴욕 학교 다닐 때는 패션 잡지를 몇 종류 구독했는데, 런던 학교에서는 ‘남의 것을 많이 보면 결국 베끼게 된다’면서 잡지를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패션쇼도 뉴욕에선 상업성에 초점을 둔 반면, 런던에선 컬렉션 개념으로 진행합니다.”

파슨스 스쿨 4학년 과정엔 8학점짜리 옷 만들기 실습이 있다. 한 학기 동안 여러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2학기엔 졸업작품 전시회용으로 모슬린(mousseline)으로 5~8벌을 제작해 발표하면 교수가 평가해준다. 졸업작품전은 상업성은 배제하고 실험정신을 중시한다. 학생들에게는 첫 컬렉션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과목에서 흔치 않은 A학점을 받은 박 씨가 만든 옷은 소매 없는 원피스로 어깨 끈을 스카프처럼 목에 두를 수도 있고, 끈을 장미꽃처럼 만들어 가슴 부분에 달 수도 있는 것이었다. 아이디어에서부터 마감까지 혼자 해낸 이 작품은 일명 ‘슬립’. 교수는 “창의성이 돋보인다”면서 “당장 팔아도 2000달러는 되겠다”고 칭찬했다.

뉴욕의 대형 스튜디오를 빌려서 120여명의 패션디자인 전공 학생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회에 참석한 버그도프 굿맨 백화점 아트 디렉터는 박 씨의 작품에 대해 “해체주의(deconstructism) 경향에 엘레강스(elegance)한 디자인”이라며 격려해줬다.

그러나 박 씨의 ‘슬립’은 뉴욕 최고급 백화점 중 하나인 삭스 핍스 애버뉴가 파슨스 스쿨 졸업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우수 디자인 전시회에 선발되지 못했다. 삭스 핍스 애버뉴는 젊은층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맨해튼 쇼핑 거리인 핍스 애버뉴(5번가) 쪽 쇼윈도에 학생들의 디자인을 해마다 전시하고 있다.

“폭넓게 사귀면 일자리 얻기 쉬워”

이 전시회에 초대되지 못해 속상해하던 박 씨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박 씨의 ‘라텍스 글러브’가 한 전시회 전시 작품으로 뽑혔다는 것이었다. 모피 옷에 반대하는 PETA(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를 위한 사람들) 단체에서 모피와 같은 동물 가죽이 아닌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디자인을 공모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 5명 중 한 명으로 뽑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베이지 고무장갑을 덧붙여 부피감을 느끼게 한 것으로, ‘기발한 발상’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박 씨 작품은 파슨스 스쿨 졸업생 작품 30여점 가운데서도 삭스 핍스 애버뉴 백화점 1층 길가 쇼윈도에 전시돼 길 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박 씨는 하이엔드(고급) 여성복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다. 그리고 장차 한국에서 이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박 씨는 7월 중순부터 뉴욕의 유명 디자이너 차도 랠프 루치의 회사에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일하기로 했다. 랠프 루치는 쿠튀르(고급)풍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뉴욕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업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뉴욕의 패션학교는 사립대학인 파슨스 스쿨, 주립대학인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등이 유명하다. 각 학교 웹사이트에 따르면 파슨스 스쿨은 한 학기 등록금이 1만4280달러(약 1500만원), FIT는 5305달러(약 557만원)다. 기숙사비 등을 포함한 실제 학비는 이보다 4000달러가량 더 든다. 1년 유학 비용이 2만5000~4만 달러가량 든다는 계산이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뉴욕의 패션 유학. 박 씨는 이점에 유의하라고 조언한다.

△영어, 적극적이 돼라= 파슨스 스쿨은 토플 550점(컴퓨터 채점 기준으로는 213점) 이상을 요구한다. 학교 다니다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영어도 잘해야 한다. 자신의 작품을 자신 있게 소개하고 공격적인 질문에 답변하려면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 ‘둘러대기’도 잘해야 한다. 한 미국 학생이 어떤 색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beautiful

(아름다운)’이라고 말하지 않고 ‘aesthetic(심미적인)’이라고 문학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미국 학생들과 어울리다 보면 영어도 자연스럽게 는다. 한국 유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 학생들은 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폭넓게 사귀어라= 뉴욕은 아는 사람이 많아야 좋다. 런던에서 공부할 때 세인트 마틴 스쿨 졸업생이 후배들에게 조언하면서 “파티에 자주 가서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웬만한 일자리는 파티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나만의 것을 찾아내라=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뉴욕이든 런던이든 남의 것을 베낀 작품에는 점수를 주지 않는다. 한국적인 것도 그대로 가져오면 인정받지 못한다. 나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40~41)

뉴욕=홍권희/ 동아일보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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