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5

2005.07.26

원주는 뜨고 성남은 지고

원주-기업도시 유치 등 국토 균형발전 최대 수혜, 성남-공공기관 7개 떠나 세수 연 396억 감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7-21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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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는 뜨고 성남은 지고

    7월4일 경기도 의회에서 \'공공기관 이전 반대 및 수도권규제 철폐를 위한 특별위원회\' 소속 도의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기 성남시 공무원 A 씨는 27년째 성남에서 살고 있다. 20대 초반 성남시에 처음 둥지를 틀었을 때는 한마디로 ‘깝깝했다’. 서울 지역의 판자촌 철거로 성남으로 쫓겨온 주민들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배가 고파 못 살겠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70년대 말 판자촌이 늘어선 성남시의 풍경은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주민들이 1차선 도로 양쪽에서 좌판을 벌여 삶을 이어가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성남시는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며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분당 신도시 건설은 성남시가 ‘부자 동네’로 거듭나는 견인차였다. 90년대엔 정부가 “베드타운이 아닌 자족도시로 키운다”며 알짜 공기업들을 옮겨왔다.

    “자족도시가 되라며 공기업을 옮겨오게 한 게 90년 중·후반의 일입니다. 96년부터 99년까지로 기억해요. 그런데 이젠 더 낙후된 지방으로 내려가라고요. 이런 국력 낭비, 돈 낭비가 어디 있습니까.”

    성남시는 7개 공공기관이 떠나면 세수가 연간 396억원(시세 253억원, 도세 143억원)이 줄어든다. 공공기관들의 부가가치 창출액은 수천억원에 이른다. A 씨는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특히 크다고 전한다.



    “정자동, 금곡동 등 공기업 주변 상권은 타격을 입는다고 봐야지요. 일부 업주들은 현재 매출의 20~30%로 상권이 위축될 거라고 내다봅니다. 벌써부터 상가 권리금을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A 씨는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일에 지방정부가 나서 반발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또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엔 딴죽 걸기가 어렵다고도 했다. 이대엽 성남시장 역시 속내와는 달리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표명한다.

    “공공기관 이전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다만 부득이 이전할 경우 현행 공공기관 터 에 대해선 성남시에 반드시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조심스러운 이 시장과 달리 경기도의회는 강경하다. 경기도의회 ‘공공기관 이전 반대 및 수도권규제 철폐를 위한 특별위원회’는 7월6일 열린 제204차 정례회 본회의에서 ‘공공기관 지방이전 반대 결의안’을 상정해 찬성 68표, 반대 9표로 통과시켰다. 특위 위원장은 성남시 출신의 임봉규 도의원이 맡았다.

    임 도의원은 “공공기관 이전으로 성남시의 지역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며 “설문 조사 등으로 시민들의 뜻을 모은 뒤 장외 집회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공기관 이전의 부당함을 알리는 홍보물도 제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산업공동화와 인구 및 세수감소, 상권 붕괴 등 2차 피해가 예상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임 의원은 ‘장외 집회’에 오지 않을 국회의원이 딱 한 명 있다고 꼬집었다. 성남시의 4개 지역구 중 유일한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태년 의원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데 김태년 의원도 안절부절못하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다. 그는 7월11일 “성남시 수정구의 2개 군사시설을 이전해 그 자리에 IT 체험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느닷없이 밝혔다.

    A 씨도 지역 균형발전의 당위성엔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수도권과 지방이 더불어 발전해야 한다는 데는 토를 달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정책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앞서가는 지역의 성장 억제를 통해 낙후지역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건 잘못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성남시에도 분당을 제외하면 낙후된 지역이 많습니다. 이런 지역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 “원주 지역 발전 10년 이상 앞당겨”

    원주는 뜨고 성남은 지고

    기업도시 유치가 확정된 원주시청 전경(위). 원주시 곳곳엔 기업도시 유치를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쭥쭥쭥 강원 원주시에선 날마다 축제가 벌어진다. 도심 곳곳엔 기업도시 시범사업지로 결정된 걸 자축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원주시는 물론이고 여주·이천·횡성·제천·음성·괴산 등 벌써부터 두세 배가 오른 이웃 지역의 땅값까지 다시 꿈틀댄다.

    지천명을 앞둔 원주시 공무원 B 씨는 노무현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성남시의 A 씨와는 정반대의 견해를 갖고 있다. 지방 도시가 요즘처럼 희망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때는 없었다고 그는 말한다.

    “지방 도시는 발전을 도모할 기회가 아예 없었습니다. 지방을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균형발전 정책으로 원주시는 지역 발전이 10년 이상 앞당겨지게 됐습니다.”

    원주엔 2만5000명이 거주하는 유비쿼터스 자족도시가 생긴다. 생산 파급 효과 6조6000억원, 고용 파급 효과 14만8000명의 기업도시가 들어서는 것이다. 세수 증가는 원주시의 살림을 넉넉하게 할 전망이다.

    “연관 산업의 발전까지 고려하면 파급 효과는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중부권에 자리 잡은 최첨단 도시로 성장할 수도 있을 거예요. 시민들에겐 축복인 셈이죠. 베벌리힐스를 연상케 하는 단독주택 단지도 들어설 거고요.”

    원주시는 중·장기적으로 800만평의 지식기반형 복합기업도시를 조성할 예정이다. 1차로 꾸려지는 100만평엔 연구개발단지인 R&D파크와 세계 수준의 독일계 이공계 대학원이 들어선다. B 씨는 독일의 첨단 기술을 전수할 이공계 대학원에 기대가 크다고 했다.

    “고급 인력이 모여들면 아이들 가르치기도 좋은 도시가 될 것 같습니다. 명문인 원주고도 더 좋아질 것 같고요.”

    대기업의 참여는 벌써부터 결정됐다. 삼성SDS는 원주시에 유비쿼터스(Ubiquitous·사용자가 네트워크나 컴퓨터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 시스템을 도입할 요량이다. 이밖에 롯데건설, 삼아약품, 국민은행, 한독산학협동단지가 사업을 벌인다.

    강원도로 이전하게 될 한국관광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공기관 13곳 중 일부의 원주 입성도 점쳐진다. 김기열 원주시장은 “기업도시로 선정된 마당에 공공기관까지 달라고 얘기하기는 겸연쩍다”고 말했다. 그러나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태백시와 우선 협상에 나서기로 한 대한석탄공사를 제외한 12개 공공기관의 종사자들이 원주행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영모 강원도 예상담당관은 “13개 공기업 모두 종사자 대상 설문 결과 원주로 옮기기를 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강원도엔 13개 이전 기관 중 10개 안팎의 기관과 연관 기업, 주거단지가 들어서는 과천 형태의 혁신도시가 조성될 예정이다. 원주시를 비롯해 춘천시, 강릉시 등이 혁신도시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강원도 내 일부 시·군은 정부의 혁신도시 조성 방침에도 공공기관을 한두 개씩 나눠달라고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원주시의회는 13개 기관을 차례로 방문해 로비를 벌였다. 강릉 출신인 심재엽 의원(한나라당)은 한국관광공사 김종민 사장을 만나 강릉 이전을 권유하기도 했다. 원주 출신인 이계진 의원은 “원주시에 혁신도시가 들어서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기업도시와 연계해 이웃한 횡성군에 자리 잡는 것도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B 씨는 기업도시 및 혁신도시 논의로 개발 논의와 강원도가 떠들썩한 게 즐겁다고 했다. 일은 늘었지만, 밝은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서다.

    나라당 이계진 의원(강원 원주)은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과 원주고 18년 선후배 사이다. 이들은 당이 달라 서로를 ‘의원님’이라고 깍듯이 부르면서도 ‘지역 발전’이란 공통분모엔 동문답게 의기투합한다.

    “고맙다. 이광재 의원이 많이 도와줬다.”(이계진 의원)

    강원 원주시는 7월8일 기업도시 시범사업지로 충북 충주시, 전남 무안군, 전북 무주군(관광레저형)과 함께 최종 확정됐다. 김기열 원주시장은 발표를 닷새가량 앞두고 피가 말랐다고 한다. 지식기반형 기업도시의 경쟁자이던 충주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 까닭이다.

    이광재 의원과 이계진 의원, 김진선 강원도지사 등은 좋지 않은 정보가 들려오자, 원주시의 ‘막판 뒤집기’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의 노력 때문인지, 발표 이틀 전 변화의 흐름이 감지됐다. 시범사업지 선정 기준이 낙후 정도에서 실현 가능성 쪽으로 옮겨간 것이다. 종합평가 점수가 낮았음에도 원주시는 결국 막차로 ‘기업도시’에 끼어들 수 있었다.

    원주시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균형발전 정책의 최대 수혜지로 불린다. 현 정부 들어 제2영동고속도로 건설 추진이 급물살을 탔고, 중앙선 철도 복선화(청량리-덕소-원주), 원주-강릉 간 철도개설 사업도 본 궤도에 올랐다. 제2영동고속도로와 중앙선 복선화 공사가 마무리되면, 서울에서 원주까지는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기업도시, 3개의 고속도로(1·2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 서울서 통근이 가능한 복선 철도 등. 게다가 원주시는 강원도로 이전하기로 한 13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이전을 원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갖출 것 다 갖춰가는 원주시는 강원도를 넘어 ‘중부권 리딩도시’를 꿈꾼다. 김 시장은 “기업도시 조성에 따른 효과는 금액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크다. 지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이 예상된다”며 웃었다.

    수도권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다 할 수도 있지만 원주시는 춘천시와 함께 강원도에서 1, 2위를 다투는 도시다. 원주엔 강원도 내 601개 수출업체 가운데 62%에 달하는 372개 업체가 몰려 있다. 그럼에도 원주시의 수출업자들은 경기 성남시를 출퇴근하듯 오가야 했다. 수출업체가 ‘적다’는 이유로 세관(출장소)이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원주시의 상공업자들은 더 이상 성남시를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관세청이 세관 설치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지역 숙원사업이던 원주세관 설치가 사실상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의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반면 원주시에서 찾아오는 세관 손님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된 성남시는 정부청사가 빠져나가는 과천시와 더불어 노무현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최대 피해자로 꼽힌다. 성남시에 위치한 본사 직원만 4000명에 육박하는 ‘알짜 공기업’들이 대부분 지방으로 옮겨가는 까닭이다.

    성남을 떠나는 공공기관은 모두 7개. 한국토지공사(매출 4조2000억원), 한국도로공사(매출 2조4000억원), 대한주택공사(매출 3조1000억원), 한국가스공사(매출 9조2000억) 등 지방 도시가 군침을 흘리던 4대 공기업이 현재 성남시에 똬리를 틀고 있는데 이 기업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또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전기공과 한국식품연구원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성남시를 떠난다.

    세관조차 없는 낙후된 원주시에서 멀리 성남시를 오가며 한숨을 내쉬던 ‘원주 토박이’는 웃고, 남부러울 것 없던 ‘성남 토박이’가 우는 현실은 노무현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부자 동네’의 불만만큼이나 “떼가야 티도 안 난다. 함께 잘살아보자”는 ‘가난한 동네’의 환호가 엇갈리는 것이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균형발전 정책의 핵심이던 행정수도 이전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좌절됐을 때는 앞이 깜깜했다. 그러나 행정수도를 대신하는 행정복합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본 궤도에 올랐다. 현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수도권과 지방이 다 함께 윈-윈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거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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