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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ㅣ‘기업도시’

배트맨·로보캅 … 기업이 도시를 지배하다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배트맨·로보캅 … 기업이 도시를 지배하다

배트맨·로보캅 … 기업이 도시를 지배하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 배경을 시애틀로 잡은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여주인공이 낭만적 사랑을 꿈꾸며 미 대륙을 횡단할 때 목적지로 삼은 곳이 다름 아닌 시애틀이었다는 것은, 이 도시가 미국인들이 ‘살기 좋은 곳’을 꼽을 때 늘 최상위권에 드는 도시라는 점에서 안성맞춤의 무대라는 뜻이다.

미국 서부 북단에 위치한 시애틀은 그러나 첫인상이 그리 좋은 곳이 아니다. 로스앤젤레스나 샌디에이고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넘쳐나는 남국풍의 도시도 아니다. 1년 중 비가 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더 많은 탓에 늘 안개와 습기에 젖어 있는 듯한 느낌이어서 이 도시에 잠깐 들른 여행객이라면 왜 이곳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히는지 의아한 생각까지 들 정도다.

물론 이런 눅눅함을 상쇄할 수 있는 강점도 많다. 비가 자주 오긴 해도 연중 서늘하고 온화한 날씨, 수려한 자연경관 등이 시애틀의 높은 ‘삶의 질’의 비결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축에 이 도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이 제공하는 풍요가 있다. 시애틀은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도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보잉사, 스타벅스 같은 미국 거대기업들이 이 도시를 본거지로 하고 있거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성장했다. 이들 기업은 많은 일자리 제공과 세금 실적으로 이 도시의 물질적 젖줄 구실을 한다.

기업은 도시의 성장엔진이다. 공장과 기업이 없는 도시의 성장은 상상하기 힘들다. 마치 실리콘밸리 없이는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발전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기업도시’라는 발상의 밑바닥에는 한국의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라는 그림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기업도시 구상이 한마디로 이러이러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지금의 기업도시 구상은 어려움에 처한 경제 살리기의 한 대안으로, 특히 기업의 투자 의욕을 부추기는 특효약쯤으로 주목받고 있는 듯하다.

물론 반대자들은 기업에 대한 부당 특혜로 많은 부작용이 양산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기업도시의 미래에 대해 섣불리 예상하기에는 아직 이를 수 있다. 다만 적잖은 영화들에서 기업도시는 미래의 묵시론적 전망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설정돼왔다. 기업이 도시의 지배자가 된다는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한 영화들에서 기업도시는 아늑한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배트맨’의 무대인 고담(Gotham)시의 이미지는 그 같은 디스토피아의 구체적인 상을 보여준다. 고담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뉴욕시의 별칭으로 나와 있다. 이 이름의 뿌리는 구약성서의 부패와 환락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에서 나왔다. 왜 고담이었을까? 영화 속 고담은 특정 자본이 상품 공급과 미디어 행정 등 인간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타락한 도시고, 고담은 적절한 명명이다.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고담시에서 공권력은 무력하기만 하고, 배트맨이 혼자서 외롭게 도시를 지켜야 한다.

로보캅에서는 기업이 아예 공권력을 추방하고 스스로 절대권력이 되려고 한다. 주인공인 사이보그 경찰 로보캅이 맞서 싸우는 악당은 도시를 통째로 차지하려는 기업이다.

로보캅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도시는 미래의 디트로이트다. 이 영화에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면서 함께 몰락하는 도시의 모습을 그렸다.

디트로이트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치하나, 시점이 미래가 아닌 현재라는 점에서 대비되는 영화가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사진)다. 그러나 로보캅의 묵시론적 비유도 없는 이 영화가 더욱 끔찍한 것은 현실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물이기 때문이다. 제너럴모터스(GM)의 도시였던 디트로이트 부근의 플린트시는 GM이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면서 급속히 쇠퇴한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다는 이 도시의 황폐한 현실을 비춰주면서 감독은 GM의 최고경영자 로저 스미스에게 이런 현실을 아느냐고 집요하게 질문하려 한다. 극구 마이클 무어를 외면하는 로저. 기업과 도시가 공존할 때는 공영(共榮)하지만, 도시가 기업에 종속될 때 그것은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



주간동아 460호 (p85~85)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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