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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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어떻게 해” 무기력한 민주당

당정개편·후보 가시화 사사건건 대립… “누가 당 이끄나” 공황심리 확산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입력2004-11-17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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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무기력한 민주당
    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면모나 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국 운영에 대한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당 사무처 한 고위관계자는 “집권 여당이 이처럼 무기력하게 굴러가는 것은 처음 본다”고 자조한다. 그에 따른 무기력감이 당을 감싸고 있다.

    10·25 재·보선 참패 후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3대 0이라는 선거 결과가 가져온 충격은 체질이 약해진 민주당으로선 흡수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장 책임 문제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소장 개혁파 소속 한 인사는 “이제 누군가 나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며 국정쇄신을 위한 동교동의 거취 문제를 입에 올렸다. 몇몇 인사는 김홍일 의원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도 거론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각종 의혹 사건에 단골로 등장하는 김의원을 이번 기회에 ‘정리’하자는 주장이다. 전용학 대변인은 “이 사람들이 정권재창출을 하려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며 당지도부에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구난방으로 터져나온 이 같은 ‘비분강개’는 햇볕을 보기도 전에 사장됐다. 총선 패배로 감정이 앞선 상태에서의 발언이었고, 이런 의견들을 수렴할 제도적 장치가 미약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한광옥 대표가 청와대 보고를 통해 당정개편 및 후보 조기 가시화론을 거론 여권 내부를 또다른 혼란으로 몰아 넣었다. 민주당과 청와대의 의견 대립은 물론, 민주당 내 대선주자간의 갈등을 증폭시킨 것. 당정개편이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운영과 관련이 있다면 후보 조기 가시화론은 내년 대선과 관련한 각 후보 진영, 특히 이인제 대 반이인제 진영의 치열한 기세 싸움 성격이 짙다. 한대표는 10월26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거 결과를 보고하고 당정의 일대 개편과 전당대회 개최 시기 및 당의 지도체제 문제, 후보와 총재의 분리 문제 등 정치 일정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할 것을 건의했다. 이 같은 내용이 당에 전해지자 그동안 숨죽이면서 때만 기다리던 대선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후보 진영은 후보 조기 가시화를 당론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을 완전 가동해 여론몰이에 나서기도 했다. 반대로 준비가 덜 된 후보 진영은 반발 강도를 높였다.



    당정개편도 마찬가지. 이인제 최고위원과 동교동 구파는 조기 당정개편에 부정적이다. 양 진영 모두 현 체제가 대선구도에 더없이 유리하다는 생각이다. 동교동의 경우 ‘한광옥 대표, 이인제 후보’ 구도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배경에는 동교동과 이최고위원 사이의 밀약설이 떠다닌다. 따라서 조기 당정개편을 통한 구도 변화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반면 김중권 김근태 최고위원 등 마이너 그룹들은 즉각적인 인적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먼저 민심 이반의 주원인부터 치유하지 않으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내년 대선에서 어렵다는 논리다. 물론 지형 변화를 통해 입지를 구축하겠다는 계산도 없지 않다.

    당정개편과 후보 조기 가시화론이 이처럼 파워게임 양상을 띠며 일파만파 확대되자 당지도부와 청와대는 “모든 논의는 정기국회 이후 연말로 미룬다”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긴급 진화에 나선 청와대의 모습에는 다급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실상 청와대는 진퇴양난의 궁지에 몰렸다. 연말 당정개편을 기정사실화하면 고위공직자의 줄서기와 눈치보기가 극심해진다. 당정개편을 하지 않을 경우 민심이 얼마나 더 악화할지 가늠할 수 없다. 여권 내부의 반발 또한 수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어쩔 수 없이 어중간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런 어정쩡한 태도는 소장 개혁파 인사들의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다. 당장 김근태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포함된 열린정치포럼 소속 의원 13명은 시내 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즉각적인 당정개편을 주장하고 나섰다 (상자기사 참조).이 흐름에 다른 소장 개혁파들도 합류, 세를 모을 태세다. 끝간데 없는 민주당이 혼란상이 이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여권의 국정 운영 변화 방안으로 대통령의 ‘결단’과 관련한 당내 소모전이 제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적 이탈 및 총재직 이양 문제다. 이는 김대통령이 거대 야당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풀어나가고 임기 내 대북 및 개혁 정책을 무난하게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며 “정권재창출에 도움을 주는 방안이라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고 말한다. 물론 청와대측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부인한다.

    김대통령이 민주당을 떠난 다음, 차기 후보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하는 방안도 당내 몇몇 인사들에 의해 거론되고 있다. 대선을 앞둔 정국 구도를 ‘DJ 대 반(反)DJ’가 아닌 ‘이회창 대 반이회창’으로 다시 짜자는 전략이다. 물론 이 역시 여권이 입장을 살려보자는 궁여지책의 일환으로 모두 구상 단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정파간 입지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해 또다른 불협화음으로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럼에도 당 지도부는 물론 청와대도 불길처럼 번지는 당내 이견을 제어할 특별한 복안이나 묘수가 없어 고민이다. 당은 청와대를 쳐다보고 있으며, 청와대는 말로만 ‘당 중심 운영’을 되풀이한다. 결국 리더십 부재이자 궁극적으로 김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제압하고 해결할 의지와 힘이 있는지가 관건이다. 원심력이 작동한 그의 앞에는 이제 동교동 일부 인사들만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기시됐던 김대통령의 당 운영방식에 대해 하나둘씩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예전에 볼 수 없던 이런 기류는 갈수록 뚜렷한 세력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호(號)의 표류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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