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1

2001.07.05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이석연 사무총장 자성론 발표하자 내부서 비판론… 차기 총장 선임 관련 파벌 양상도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5-01-04 16:3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지난 6월18일 아침 서울 정동에 있는 경실련 사무실의 상근자 아침 회의. 이석연 사무총장이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시민단체 자성론’에 대해 직접 입을 열었다. “내 행동에 대해 많은 말들이 오가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내 소신대로 밀고 가겠다.” 자신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동안의 내부논란을 일단락지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시민단체 자성론’이란 지난 6월15~18일에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 기사 내용들. 뜻밖에도 그의 책 ‘헌법 등대지기’ 중에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초법화·권력화·연대를 통한 센세이셔널리즘, 무오류성의 환상 등에 젖어 있다”며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대목이 들어 있었다. 특히 의약분업 파행과 언론사 세무조사 등의 현안에 대해 일정부분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기사가 실리자 온라인상에서는 ‘이석연이 보수언론에 투항했다’는 비난의 글이 쏟아져 나왔다.

    “이총장 사퇴 필요” 극단적 반응도 나와

    이러한 비판은 경실련 내부에서도 제기했다. 20~30대 젊은 간사들이 “외부에서는 자기반성 촉구를 참여연대를 향한 것으로 해석하지 않겠느냐”며 이사무총장의 ‘전략적인 사고 부족’을 탓하고 나섰다. 사무총장 사퇴 필요성을 제기하는 극단적인 반응도 나왔으나 중견 실·국장들이 중심이 되어 “임기가 올 11월로 끝나므로 논란을 키우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자”고 설득하기도 했다는 후문. 결국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지만 이 사건은 경실련이 안고 있는 혼란과 고민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한국 시민운동의 기수, NGO의 맏형,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연 개척자. 다음달 10일로 창립 12년을 맞는 경실련의 이름 앞에 붙은 화려한 수식어다. 그러나 운동 외부의 환경변화와 조직 내부의 문제들이 겹치면서 경실련은 새로운 위상 설정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경실련에는 시민입법위원회 등 총 21개의 내부부서가 있다. 이들 기구의 실질적인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사무국. 사무총장은 이 사무국을 총괄하며 임기는 2년이다. 참여연대의 박원순 사무처장이 95년 9월부터 지금까지 재직하는 것에 비하면 비교적 짧다.

    임기를 짧게 제한한 것은 그동안 겪은 몇 번의 위기를 통해 드러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90년대 경실련 운동의 상징이던 초대 사무총장 서경석 목사(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가 96년 총선에 출마하면서 빚어진 논란이 그 첫번째. 97년 김현철 테이프 파동으로 물의를 빚은 양대석 당시 부정부패추방운동본부 사무국장, 99년 칼럼 대필 의혹이 촉발한 내부 갈등으로 자리를 물러난 유종성 전 사무총장에 이르기까지, 아이러니컬하게도 위기는 늘 조직 상층부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선택한 카드가 2년 임기제와 지금의 이석연 사무총장이었다. 이사무총장은 94년까지 헌법재판소 등 공직에 몸담았던 사람. 한 상근자는 “사무총장의 영향력을 최소화화고 조직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무색무취’한 인물을 추대한 것”이라 회고한다. 지나친 카리스마로 원성을 산 전임 유종성 사무총장 시절과는 반대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활동가 중심의 조직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업무 추진과정에서도 사무총장은 지휘자의 개념보다는 승인자의 역할에 가깝다고 전한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번 경우도 이사무총장은 개인 자격으로 시민단체의 자성을 촉구했을지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한 탓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본질적으로 시민운동의 논리와 방식에 잘 부합하지 않는 ‘순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처방이 다시 문제가 된 난감한 상황이다.

    고민투성이 경실련 “아, 답답해!”
    다른 한편으로는 차기 사무총장을 두고 말들이 무성하다. 유력하게 거명되는 인물은 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인 이장희 교수(한국외국어대 법학과). 최근 개선된 남북관계에 힘입어 경실련 내의 통일운동을 강화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고 한다. 민족문제에 관심이 높은 일부 간사들의 경우 “이교수의 사무총장 선임이 좌절되면 경실련을 떠나겠다”는 의지도 암묵적으로 밝혔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다른 한 사람은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장 나성린 교수(한양대 경제학부). 나교수는 지난 99년 당시 유사무총장의 퇴임과 경실련 내부의 민주적 개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던 ‘전문가 그룹 3인방’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교수를 지지하는 구성원들은 먼저 ‘경제정의실천’이라는 경실련의 창립 목표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통일운동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실련의 핵심일 수는 없다는 것.

    이렇듯 사무총장 선임문제를 두고 부분적인 파벌 양상이 빚어지고 있음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허리(중견 상근자들)의 부재’도 사실은 내부문제로 인해 많은 사람이 조직을 떠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지난해 유종성 사무총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돌렸다가 결국 사임한 하승창 당시 정책실장(현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무처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중견급 상근자는 “이러한 내부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동력이 없다는 점이 더욱 큰 고민”이라고 말한다. 현 정권 들어 구성원들 사이에서 무력감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시민단체보다 더욱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적군’과 ‘아군’의 개념이 뒤섞이면서 관계 설정을 명확히 하기 어렵다는 것. 안동수 전 법무부 장관의 ‘충성 메모’ 논란과 관련해 한 장의 성명서도 발표하지 않은 것도 이러한 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차라리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상근자의 자조 섞인 말은 이러한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젊은 간사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조직의 노화다. 수십 세 된 다른 단체들이 간 길을 따라갈까 걱정되는 것이다. 사회의 한 축으로 대우 받기는 하지만 누구와도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지 못하는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닐까.” YMCA와 흥사단의 전철을 피해 경실련이 ‘동생’들에게 제시할 비전은 무엇일까. 지금 경실련에 모이는 눈길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