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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정몽혁 경영권 흔들?

현대정유그룹 출범으로 홀로서기 … 합작사 IPIC 과징금 책임 추궁에 ‘퇴진론’ 들먹

잘나가던 정몽혁 경영권 흔들?

잘나가던 정몽혁 경영권 흔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촌 형제 가운데 정몽혁 현대정유 사장(40)은 특별한 존재다. 잘 알려진 대로 정사장은 ‘왕회장’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 신영씨의 유복자. 왕회장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정사장을 어릴 때부터 ‘밥상 머리’ 교육을 하며 친자식 이상으로 돌봐주었다는 게 현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증언. 정사장은 주로 직계 가족들만 모였던 왕회장 아침 식사에 방계로서는 드물게 참석한 멤버이기도 했다. 왕회장이 정사장을 이처럼 ‘챙긴’ 이유는 왕회장이 동생들 중에서도 신영씨를 가장 아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재계에서는 89년 극동정유(현대정유의 전신) 부사장으로 경영 수업을 시작한 정몽혁 사장이 93년 현대정유 대표이사가 된 데 이어 96년에 현대석유화학 대표이사까지 맡게 되자 왕회장의 그룹 분가 구도와 관련해 해석했다. 왕회장이 현대정유와 현대석유화학을 정사장 몫으로 챙겨주는 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었다. 정사장 외가가 극동정유 창업주 가족이어서 이런 해석은 설득력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정사장은 외환위기와 구조조정-빅딜 파동을 겪으며 99년 현대석유화학 경영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정사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같은 해에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UAE의 IPIC사로부터 외자 유치를 성사시키는 등 경영 능력을 과시했다. 지난해 1월3일자로 인천정유와 함께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 재계 순위 13위의 현대정유그룹을 출범했다. 왕회장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시작한 셈이다.

잘나가던 정몽혁 경영권 흔들?
그러나 정몽혁 사장의 ‘홀로서기’가 최근 시련을 맞고 있다. 합작 파트너인 IPIC측의 경영 책임 추궁에 현대정유 경영권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 것. 38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절반으로 줄여주고 원유 공급선도 안정적으로 확보해주는 수단이 됐던 외자유치가 이제는 거꾸로 정사장의 목을 조르고 있는 셈이다.

IPIC는 현재 현대정유 지분 50%를 가진 1대 주주여서 IPIC측이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상황. 또 이사회 멤버도 IPIC측이 선임한 4명과 현대정유측이 선임한 3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돼 있어 이사회도 IPIC가 장악한 상태. 현재 현대정유측 이사는 정몽혁 사장, 김정래 전무, 신원오 이사 등이다.



현대정유는 작년 3분기까지 4조9457억원의 매출을 올려 이미 전해 매출액 4조3498억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당기 순익은 286억원. 경영 상태로만 본다면 IPIC측이 특별히 문제삼을 만한 상황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도 IPIC측이 정사장의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IPIC측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현대정유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공정위는 지난해 9월 현대정유를 비롯한 국내 5개 정유사들이 군납 유류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통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이들에 대해 공정위 사상 최대 금액인 190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정유는 계열 인천정유와 같은 금액인 475억원을 부과받았다.

통상 외자유치는 외국 기업이 국내 회사의 주식 일부 또는 전부를 인수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때 핵심 쟁점은 주식가치 산정. 외국 기업들은 보통 국내 회사에 대해 국내 법 위반이나 세금 미납 여부 등 회사의 모든 상황을 낱낱이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식 가치를 산정한다. 경영진에게는 회사 상황과 관련, 숨긴 게 없다는 보증을 받고 계약서에 이를 명시한다. IPIC측 지명에 의해 현대정유 감사로 선임된 김두식 변호사는 “현대정유와 IPIC측도 통상의 절차를 따랐다”고 밝혀 계약서에 이런 내용을 명시했음을 인정했다.

현대정유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은 외자유치 당시 맺은 계약 위반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과징금 부과 자체는 외자유치 이후인 작년 9월의 일이었지만 공정위가 문제삼은 것은 98년 이후 3개년에 걸친 입찰 담합이었기 때문. IPIC측은 현대정유가 99년 외자유치 시점을 기준으로 ‘과거’의 모든 상황을 성실히 공개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IPIC측은 공정위 과징금이 최종 확정되면 과거 주주들이 이를 내야 하고, 정몽혁 사장도 퇴진해야 한다는 뜻을 현대정유측에 밝힌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현대정유 이사회 멤버인 신원오 이사는 “공정위 과징금이 법적으로 최종 확정된 상태도 아닌데 그런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IPIC측의 정사장 퇴진 요구와 관련해서는 “대답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김두식 변호사 역시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

다만 전기태 이사는 “기존 주주들이 공정위 과징금을 내야지 회사 돈으로 내서는 안 된다는 게 IPIC측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이사는 이어 “IPIC측이 문제삼는 것은 현 집행부보다는 한국 정부”라면서 “이 때문에 IPIC는 석유화학 분야에 추가 투자를 계획했다 취소했다”고 밝혔다.

현대가 과징금을 부과받은 정유사들 가운데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도 IPIC측의 현 집행부 퇴진 요구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정유와 계열 인천정유는 지난해 11월 이의신청과 함께 행정소송까지 제기해놓고 있다. SK㈜ LG칼텍스정유 등 다른 정유사들은 공정위에 이의신청만 해놓은 상황. 공정위는 현재 정유사들의 이의신청을 심사하고 있다. 공정위 심판관리2담당관실 관계자는 “2월 중 이의신청에 대한 심판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정유뿐 아니라 정유사 관계자들은 군납 유류 입찰 과정에 담합으로 오해받을 행동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담합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대정유 전기태 이사는 “잘못은 인정하지만 군납 유류 시장 자체가 경쟁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담합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대측은 또 과징금 액수가 지나치게 많다고 주장한다. 전기태 이사는 “현재 현대정유와 인천정유의 시장점유율을 합해도 SK㈜의 절반에 불과한데 현대정유와 인천정유 과징금 합계 950억원은 정확히 SK㈜ 과징금의 두배”라면서 “군납 유류 납품에서 마진을 많이 남긴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많은 과징금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제는 소송과는 상관없이 기한 내에 과징금을 내야 한다는 점. 공정위는 지난해 정유사들에 납기 연장과 함께 3회 분납을 허용해주었다. 이에 따라 올 6월23일 처음으로 과징금 부과 금액의 3분의 1을 납부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정유 전기태 이사는 “1차 납부 기한이 다가오면 과징금 납부 정지 신청을 법원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정유의 행정소송에 대해 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현재로선 예측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분명한 것은 99년 외자유치 직후 “현대정유 경영에 전념, 전문경영인으로 남겠다”는 뜻을 밝혔던 정몽혁 사장의 진퇴 여부가 법원의 판결에 의해 크게 영향받게 됐다는 점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1.01.25 269호 (p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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