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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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대란 다음은 전력대란?

한전 민영화, 노조 저항으로 발목 잡혀…DJ정부 공기업 개혁 의지 시금석

  • 입력2005-05-31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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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대란 다음은 전력대란?
    제2의 의약분업 사태’ 벌어지나. 한국전력 노동조합이 11월17일 전력산업 구조개편 저지를 위한 전면파업을 결의하고 한국노총도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을 위한 총파업을 선언한 이후 민주당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우려의 목소리다.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과 저항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의료대란이 일어났던 의약분업의 경우처럼 전력산업 구조개편도 하지 않느니만 못하게 됐다는 지적을 받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정부와 한전 관계자들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공기업 개혁의 핵심이므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전 민영화법안(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전 노조를 산하에 거느리고 있는 한국노총은 “정부가 전력노조와 한국노총의 정당한 투쟁에 공권력 등으로 탄압에 나설 경우 정권과의 정면대결도 불사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이런 점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김대중 정부의 공기업 개혁 의지와 능력을 시험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김정인 교수는 “최근 들어 한국 정부의 구조개혁 의지에 의구심을 갖는 외국인투자가들이 늘고 있기 때문에 한전 민영화법안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 관계자는 “의사들이 반발한다고 원칙을 조금씩 양보, 국민의 지지마저 잃었던 의약분업 사태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24일부터 파업… 정부 탄압 땐 정면 대결”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는 한전 민영화법안의 국회 통과도 신경써야 할 문제지만 노조를 비롯한 일부 사회단체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 시급한 실정. 한전 노조는 이미 11월17일 파업 찬반투표를 통해 전체 조합원 2만3767명 중 1만8584명의 찬성(찬성률 78.2%)으로 파업을 결의한 상태. 오경호 노조위원장은 11월1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강당에서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11월24일부터 파업에 돌입하면 최악의 경우 전력 공급 중단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전측은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등 전력공급 중단을 막기 위한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는 상태. 또 “노조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파업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경호 노조 홍보국장은 “현 집행부는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8월29일 출범한 현 노조 집행부는 한전 노조 50년 역사상 최초로 조합원 직선에 의해 구성됐다. 전임 집행부가 간선 집행부 체제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저지 투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7월7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사퇴를 결정하고 조합 규약을 개정함으로써 직선 집행부 체제가 출범하게 된 것. 한전 내부에서는 오경호 위원장이 회사측의 기대와 달리 강성으로 나서자 “파출소 피하려다 경찰서 만난 격”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둘러싼 노-사-정간 기세싸움 못지않게 대 국민 홍보전도 치열하다. 정부와 한전측은 △독점적인 전력산업에 경쟁을 도입해 전력산업 효율성을 제고하고 △전력사용에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를 통한 편익 증진 △장기적으로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한전 노조측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한전을 분할해 재벌과 외국자본에 매각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전 노조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 △전력공급 부족으로 인한 전력대란 우려 △해외 매각을 통한 국부 유출 △국내 석탄산업 가스산업 등 관련 산업 붕괴 △사적 독점과 담합 문제 등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한전은 한전 노조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고용 문제를 한전 직원과 노조원의 가장 큰 관심사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고용 불안 최소화를 위해 원자력을 제외한 5개의 발전 자회사로 분할시 현재 한전의 고용계약이 포괄승계되도록 한전 민영화법에 규정해놓았다. 또 노조가 주장하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대책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전 민영화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가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점. 검찰 수뇌부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이 민주당의 실력 저지로 무산된 이후 한나라당이 11월19일 전면투쟁을 선언, 법안 심사 자체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 현재로선 국회 파행사태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예측 불가능한 상황.

    국회 산자위는 원래 11월23일 국회 차원의 공청회를 거친 이후 법안 심사 소위를 구성해 한전 민영화법안을 심사한다는 방침이었다. 산자위는 위원장인 민주당 박광태 의원을 제외하면 한나라당 9명, 민주당 7명, 자민련 2명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당은 자민련 의원들이 반대로 돌아선다고 해도 한전 민영화에 찬성하는 한나라당 일부 의원의 도움으로 산자위 통과는 어렵지 않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통상 국회에 제출한 법률안은 소관 상임위만 통과되면 본회의 통과는 거의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

    민주당 관계자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김영삼 정부 때부터 추진돼 온 것인 데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획득을 자신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골치아픈 문제를 굳이 다음 정권으로 넘길 필요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에서 반대 당론을 정하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되면 국회 통과는 문제없다고 판단했으나 현재로선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한전 관계자도 “현재로선 여야간 극적인 화해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게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에서는 여야간 정쟁 때문에 4대 부문 개혁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 한전 노조는 “한전 민영화법안의 국회 통과가 무산될 경우 전면파업 방침을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관련법안 15대 국회서 자동 폐기

    한전 민영화법안은 작년 말 15대 국회에 상정됐으나 심의가 보류되면서 자동폐기된 적이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 6월 16대 국회에 다시 상정한 상태. 15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것은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전 노조가 전력산업구조개편 찬성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전개를 경고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

    15대 국회는 외환위기 직전 한국은행 노조의 반발에 밀려 금융개혁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다 IMF 관리체제 이후 상황이 다급해지자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한전 민영화방안도 그와 유사한 과정을 밟고 있다. 그런 점에서 16대 국회는 한전 민영화법안과 관련, 우리 스스로 우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시험받고 있는 셈이다. 또다시 정쟁과 이해관계자의 반발 때문에 개혁이 무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다수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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