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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화려한 파티는 끝났나

삼성전자, 실적 호조에도 주가는 급락…외국인 집중매도에 반도체 위기론 대두

반도체, 화려한 파티는 끝났나

반도체, 화려한 파티는 끝났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전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올 들어 주식시장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7월13일 장중 39만4000원까지 상승했다가 38만8000원으로 마감,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던 삼성전자 주가가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7월28일에는 28만6500원(종가)까지 떨어지는 등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보름 만에 종가 기준으로 무려 26%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 주가의 이런 약세는 말할 것도 없이 서울 증시의 ‘큰손’인 외국인 투자가들의 매도 공세 때문. 올 상반기에 삼성전자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수하던 외국인들은 7월 중순 무렵부터 순매도로 전환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들은 8월 첫주(7월31일~8월4일)에 총 372억원어치를 순매도, 삼성전자를 금액 기준으로 외국인 순매도 1위 종목으로 올려놓았다.

외국인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는 최근 불거진 반도체 경기 정점 논란과 맞물려 한때 서울 증시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가 무너지면서 서울 증시가 주저앉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던 것. 반도체와 자동차 등이 수출 효자 상품이라는 점에서 반도체 경기가 둔화되면 이는 곧바로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투자자들의 공포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실적으로만 보면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매도 공세는 이해하기 힘든 태도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에만 매출액 16조4000억원에 3조2000억원의 세후(稅後) 순익을 기록하는 등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기 때문. 이런 추세라면 올해 삼성전자 순익은 7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주가는 현재 실적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성장성도 주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런 점에서 외국인이 최근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가까운 장래에 반도체 경기 둔화를 예상하고 미리 차익을 실현하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반도체 호황은 끝나가는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반도체 호황은 2002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95년 반도체 호황 당시 삼성전자 김광호 부회장이 “이런 기조는 2000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96년 이후 깊은 불황의 늪에 빠졌던 사실을 기억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왠지 반도체 전문가들의 예측이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

반도체 경기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은 7월 초 나온 미국의 메릴린치와 살로먼스미스바니 증권사의 보고서. 두 회사가 잇따라 반도체 산업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보고서를 발표하자 미국 반도체 관련 회사 주가가 급락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 이 가운데 반도체 위기론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메릴린치증권 보고서는 “반도체업종의 상품가격이 꼭지점에 도달했고, 반도체 및 장비 관련주의 주가 역시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이익실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현 시점이 반도체 경기의 정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산업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현대전자 IR담당 황호 부장은 “95년과 최근의 반도체 경기 호황은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반도체 경기의 특성상 95년은 호황의 정점이었던 반면, 현재의 반도체 경기 호황은 작년 4·4분기부터 시작된 상승기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그래프 참조). 따라서 현재의 호황은 당분간 계속된다는 설명이다.

황부장은 이어 “올해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은 370억 달러로 예상된다”면서 “이는 95년 호황 때의 시장 규모인 420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현재 D램 반도체업체 가운데 신규 라인 증설 투자를 계획한 업체가 없다는 점도 D램 반도체 호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는 근거라는 설명이다.

반도체산업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애널리스트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현 시점을 반도체 경기 정점이라고 보는 미국 증권사의 근거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메릴린치와 살로먼스미스바니는 반도체 경기 정점에 대한 근거로 D램 반도체 수요 증가율을 들고 있는데, 올해 증가율은 97~99년간 D램 반도체 수요 감소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기 때문에 수요 증가율을 기초로 정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설명이다.

세계 반도체산업 통계 및 예측기관인 데이터퀘스트의 김창수 부장도 “메릴린치증권 보고서는 통신용 단말기 칩 경기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반도체 전체로 확대해석, 반도체 위기론이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주력 상품인 D램의 경우 위기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 공세를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증시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충고한다. 대우증권 전병서 부장은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지분은 약 56%로, 주식수로는 9500만주나 된다”고 전제, “이 가운데 불과 몇십만주 매도하는 것을 두고 호들갑 떠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부장은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매도는 한국시장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차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코 반도체 주식을 파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전부장은 그 근거로 최근 들어 외국인들이 여전히 현대전자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현대전자는 8월 첫주(7월31일~8월4일) 515억4500만원에 이른 외국인 순매수세에 힘입어 거래대금 기준 외국인 순매수 1위 종목이 됐다.

외국인 투자가를 자문하는 코아베스트 백경화 사장도 “최근 삼성전자 주가의 약세는 삼성전자가 한국 시장의 대표주라는 ‘숙명’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현대그룹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고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보수적으로’ 바라보게 됐고, 이 과정에 연초 대비 주가가 많이 오른 삼성전자 주식을 매도해 차익도 실현하고 한국 시장 비중도 줄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현대증권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 우동재 팀장도 “미국 반도체 주가는 7월 중순 이후 2주 동안 10, 20% 정도 빠졌는데 삼성전자 주가는 30% 가까이 하락했다”며 “이는 서울 증시가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주식 매도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론적으로 반도체 경기가 상승기로 전환된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 구조가 과연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김창욱 연구위원은 “그동안 국내 업체들은 자금력과 일사분란함에 기초해 과감한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쌓아왔지만 이제는 기술력과 네트워크 능력에 기초한 효율과 저비용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면서 “기존 경쟁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한 다시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간동아 2000.08.17 247호 (p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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