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1

2000.07.06

“남의 돈 안쓰니 장사 더 잘돼요”

남양유업 홍원식사장, 무차입 경영 고수…사업 확장보다 내실 중시, 매출 해마다 “쑥쑥”

  • 입력2005-07-12 10: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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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돈 안쓰니 장사 더 잘돼요”
    한국의 기업 환경에서 ‘은행돈 끌어대어 쓰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하나의 원칙으로 통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들이 과다한 차입경영으로 인해 휘청거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기업 규모로만 따지면 그다지 크지 않은 남양유업이 ‘차입금 의존도 0%’를 유지하며 각종 경제단체나 연구소에서 주는 경영대상을 휩쓸고 있는 것은 이들 경제전문가가 한국기업의 미래상으로 ‘내실경영’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98년 초 무차입 경영 선언 이후 회사에 대한 신뢰도는 치솟았고 금융비용 부담이 없다 보니 가격경쟁력도 높아졌습니다. 결국 최고의 원료만 사용하는 고품질화에 성공하면서 매출이나 순이익도 덩달아 올라가고 있는 셈이죠.”

    남양유업 홍원식사장(51)은 최근의 호조를 무차입 경영 선언 이후 시작된 선순환 구조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했다. 98년 이후 이러한 고집을 꺾지 않은 결과 이 회사의 매출액은 98년 4950억원에서 99년 5980억원으로 뛰어올랐고 올해에는 7000억원 이상의 매출액을 목표로 하고 있다. 2년 만에 40% 이상 매출액이 뛴 것이다. 당기순이익도 98년 260억원에서 99년 680억원으로 두 배 이상 풀쩍 뛰어올랐다. 현재 회사측이 밝히는 사내유보 금액의 규모만도 2400억원이나 된다. 회사의 현금 흐름이 이렇게 좋다 보니 수많은 투자 제안이 몰려들 것은 뻔한 이치. 벤처열풍을 타고 각종 벤처기업에 투자해달라는 요청도 많았고 아예 창업투자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홍사장은 수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다. 유가공 제품 한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전에는 한눈팔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벤처 거품론’에 ‘닷컴기업 몰락론’까지, 벤처 붐에 대한 불길한 전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는 금고를 열지 않겠다는 홍사장의 생각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있다. 홍사장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흑백이 가려진 뒤에 투자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빛의 속도’로 발전해 가는 인터넷 비즈니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그때마다 홍사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넓이의 경영’보다 ‘깊이의 경영’을 강조한다. 확장보다는 내실을 중요시하는 그의 경영 철학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말이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홍사장은 사석에서 늘 ‘임직원 협력업체뿐만 아니라 목장주와 거기에 딸린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8만명의 운명이 나의 한순간 판단에 달려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홍사장의 의사결정은 그만큼 보수적이고 신중하다. 그는 “경영상의 모든 의사결정을 산꼭대기까지 다 올라가서 둘러본 뒤에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8부 능선쯤에서 해도 큰 문제없다”고 말한다.

    최근 대신경제연구소는 국내 모든 상장사의 성장성과 수익성 안정성 재무비율 등에 따라 기업 내용을 종합평가한 결과 남양유업에 최우수기업대상을 수여했다. 남양유업은 최우수기업대상뿐 아니라 자본금 부문과 수익성 부문에서도 최우수 기업상을 수상해 3관왕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남양유업은 한국능률협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으로부터도 그동안 비슷한 상을 받아 ‘IMF 이후 상복 터진 기업’으로 꼽히고 있다. 미래를 내다본 ‘현찰 경영’이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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