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스포츠

“We Can Do It” 레스터 시티의 기적

1/5000확률 뚫고 EPL 챔피언…“할 수 있다” 믿음으로 만든 믿을 수 없는 ‘동화’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6-05-23 11:28:48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독일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등 ‘축구 본고장’ 유럽을 대표하는 3대 리그가 풍성한 화제를 낳은 채 2015∼2016시즌을 마무리했다.

    FC 바이에른 뮌헨(28승4무2패·승점 88)은 2015∼2016시즌 챔피언에 오르며 사상 첫 분데스리가 4연패란 값진 역사를 썼다. 바이에른 뮌헨의 스트라이커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30골을 뽑아내 분데스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다. 폴란드 태생의 레반도프스키는 1976∼77시즌 34골을 넣었던 디터 뮐러 이후 39년 만에 처음이자, 비독일인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분데스리가에서 한 시즌 30골 이상을 기록했다. 2013∼2014시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20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그는 두 시즌 만에 다시 최고 골잡이 자리를 되찾았다.

    프리메라리가 패권은 FC 바르셀로나에 돌아갔다. 29승4무5패·승점 91을 기록한 바르셀로나는 2위 레알 마드리드(28승6무4패·승점 90)를 승점 1점 차로 따돌리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시즌 연속 정상 자리를 지키며 통산 24번째 리그 우승의 영광을 안은 것. 바르셀로나의 루이스 수아레스는 40골로 득점왕을 거머쥐며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판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지난 6시즌 동안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에게 주어지는 ‘피치치’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몫이었다. 2008∼2009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이던 디에고 포를란 이후 메시와 호날두가 아닌 다른 선수가 득점 1위에 오른 것은 수아레스가 처음이다. 바이에른 뮌헨이나 바르셀로나가 각각 리그를 대표하는 전통 명문팀으로 ‘우승 단골 멤버’라면, 이번 시즌 EPL 우승컵을 차지한 레스터 시티 FC는 완전히 다르다.



    132년 만에 새로 쓴 역사

    프로에서 돈(투자·연봉)과 성적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 금액이 큰 구단일수록, 연봉이 높은 선수일수록 대개 성적이 뛰어나다. ‘공은 둥글다’는 말로 이변을 기대하고,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다윗에 마음이 끌리게 마련이지만 바이에른 뮌헨이나 바르셀로나처럼 ‘부자 구단’이 승자의 미소를 짓는 경우가 많다.



    EPL에서도 마찬가지다. EPL이 출범한 1992∼93시즌 이후 단 한 번 블랙번 로버스 FC(1994∼95시즌)가 패권을 가져갔을 뿐 나머지 시즌은 모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13회·이하 총 우승 횟수), 첼시 FC (4회), 아스널 FC(3회), 맨체스터 시티 FC (2회) 등 이른바 ‘빅4’로 꼽히는 부자 구단이 돌아가면서 우승을 휩쓸었다.

    그런 측면에서 23승12무3패·승점 81로 EPL 챔피언에 오른 레스터 시티의 스토리는 믿을 수 없는 동화 같은 얘기다. 인구 28만 명의 소도시 레스터를 연고로 하는 레스터 시티는 1884년 창단됐지만 그동안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던, 그저 그런 팀이었다. 역대 최고 성적도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인 1928∼29시즌 1부 리그 준우승에 불과했다. 2008년에는 3부 리그 소속이었고, 2014∼2015시즌 1부 리그로 재승격됐지만 14위에 그쳤다. 올 시즌 개막에 앞서 유럽 베팅 전문 사이트가 전망한 우승 확률은 5000분의 1이었다. 1935년 태어나 77년 사망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여전히 살아 있을 확률’보다 더 힘들다는 분석도 나왔다.

    EPL 20개 클럽 가운데 구단 가치 순위가 18위에 불과한 가난한 레스터 시티는 산전수전 다 겪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이탈리아) 감독의 지도력과 ‘8부 리그 출신’ 제이미 바디, 알제리 이민 2세로 프랑스 빈민가에서 자란 리야드 마레즈 등의 상상할 수 없는 활약을 앞세워 ‘사커 드림’을 일궜다.

    레스터 시티가 올 시즌 초반 차곡차곡 승점을 쌓으며 치고 나갈 때도 ‘곧 떨어지겠지’라고 생각한 팬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똘똘 뭉친 레스터 시티 선수들은 끝까지 버텼다. 빅클럽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선 승산이 적다고 판단한 라니에리 감독은 점유율 축구, 패스 축구 대신 역습 축구라는 과감한 팀 컬러로 승점을 챙겨나갔다. 공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은 포기하면서도 인터셉트와 태클 시도 등에서 리그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레스터 시티 스타일’로 밀어붙였고,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기적을 연출했다.

    EPL 득점왕은 25골을 기록한 토트넘 홋스퍼 FC 해리 케인에게 돌아갔다. 케인은 세르히오 아궤로(맨체스터 시티), 제이미 바디(이상 24골)와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1위 싸움을 펼친 뒤 결국 1골 차로 득점왕에 올라 EPL에서 16년 만에 잉글랜드 국적의 득점왕으로 기록됐다. 선덜랜드 AFC 소속이던 케빈 필립스(은퇴)가 1999~2000시즌 30골로 득점 1위를 차지한 뒤 그동안 EPL 득점왕 타이틀은 매번 외국인 공격수의 몫이었다.



    희비 엇갈린 ‘한국인 EPL 3총사’

    EPL은 유럽 축구 3대 리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그야말로 ‘최고 리그’다. 레스터 시티의 감동 스토리 등 어느 때보다 많은 화제를 뿌렸던 2015∼2016시즌, EPL 무대를 누비는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남긴 성적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기성용(스완지시티 AFC),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 손흥민(토트넘) 등 국가대표팀에서도 팀의 중심을 이루는 프리미어리거 3총사는 대부분 기대치를 밑돌았다.

    그나마 분전했다고 볼 수 있는 선수가 손흥민이다. 지난 시즌까지 분데스리가 바이엘 04 레버쿠젠에 몸담았던 손흥민은 2200만 파운드(약 400억 원)의 이적료로 토트넘에 입단한 뒤 시즌 초반 제법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EPL 특유의 빠른 템포와 강한 패스에 약점을 보였고, 상대 견제까지 심해지면서 차츰 존재감을 잃었다. 마지막 3경기에서 2골을 기록하는 등 시즌 막판 뒤늦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지난 시즌 8골을 폭발하며 EPL 아시아선수 역대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쓰는 등 팀 에이스로 뛰었던 기성용의 부진은 안타까웠다. 지난 시즌 뒤 스완지시티 팬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던 그는 1년 만에 팬들로부터 ‘팀을 떠나야 하는 선수’로 꼽히며 위상이 180도 바뀌었다. 1월 부임한 프란체스코 귀돌린 감독과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면이 크지만 리그 28경기를 포함해 총 30경기에서 고작 2골에 불과했다는 점은 기성용의 이름값을 고려하면 아쉬운 수치임이 분명하다.

    이청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EPL 공식 기록은 12경기 출전에 단 1골. 선발 출장은 고작 4경기밖에 되지 않았다. 시즌 막판 국내 매체와 가진 한 인터뷰에서 앨런 파듀 감독을 비판한 뒤 약 5000만 원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무는 등 그라운드 안팎에서 입지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