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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코인’ 루나·테라 몰락 사태, 검찰 합수단 ‘1호 수사’ 착수?

58조 증발에 피해자들 고소… 시스템 문제 알고도 투자자 모집 ‘고의성’ 입증이 관건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김치코인’ 루나·테라 몰락 사태, 검찰 합수단 ‘1호 수사’ 착수?

5월 1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암호화폐거래소 전광판에 암호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5월 17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암호화폐거래소 전광판에 암호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아무리 암호화폐 시장이 불안하다곤 하지만, 이른바 ‘잡코인’도 아닌데 이 정도 급락은 충격적이다. 규제가 없는, 사실상 법적 사각지대인 암호화폐 시장의 곪은 문제가 터졌다.”(암호화폐 사건 수임 경험이 많은 변호사)

“루나 코인 투자자에게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현혹했다. 여러분은 투자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계획된 ‘폰지 사기’에 휘말린 것이다.”(‘테라 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 인터넷 카페 게시 글)

한국산 ‘김치코인’의 몰락을 두고 암호화폐 시장 안팎에선 “언젠가 터질 것이 터졌다” “‘폰지 사기’에 휘말렸다”는 탄식과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 유학파 출신 한국인 엔지니어가 개발한 암호화폐 ‘루나’와 ‘테라’ 얘기다.

제대로 작동 못 한 알고리즘 기반 ‘페깅’

5월 초 10만 원대에 거래되던 루나 가격은 5월 11일 1700원, 13일 1.18원, 15일 0.82원으로 급전직하해 사실상 가치가 0에 가까워졌다. 19일 현재까지 루나 시세는 제로(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루나와 연동된 테라 가격도 동반 하락하면서 일주일 사이 증발한 두 암호화폐 시가총액만 5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계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기준 세계 암호화폐 시장 3위, 8위에 오른 김치코인의 가치가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이다. 패닉 상태에 빠진 투자자들이 다른 암호화폐도 투매하면서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에선 200조 원 넘는 돈이 증발했다.

루나와 테라는 권도형 대표와 1세대 소셜커머스 ‘티몬’ 창업자인 신현성 대표가 2018년 공동창업한 블록체인 스타트업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암호화폐다. 루나와 테라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을 표방했다. 1코인 가치가 1달러로 안정적으로(stable) 유지되는 코인을 지향한 것이다. 일부 스테이블코인은 금이나 달러, 암호화폐의 원조 격인 비트코인을 준비금 삼아 일대일 교환을 약속하기도 한다. 이처럼 암호화폐 가치를 달러 등 기축통화 가치와 연동하는 것을 페깅(pegging: 못을 박아 고정)이라고 한다. 국가가 확보한 금 가치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금본위제도와 비슷한 형태다. 다른 스테이블코인 업체와 비교되는 테라폼랩스의 차별성은 준비금 구실을 하는 자산으로 또 다른 암호화폐를 출시했다는 점이다. 1테라 가치가 1달러보다 낮아지면 자매 코인 루나를 팔아 테라를 매입하는 방식이다. 거꾸로 루나 가격이 낮아질 경우 테라를 팔아 루나를 사들였다. 실물자산 담보 대신 두 암호화폐 간 거래로 가치를 유지한 것이다. 테라폼랩스 측은 자사가 개발한 고유 알고리즘으로 두 암호화폐의 수요·공급량을 조절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번 폭락장에서 테라폼랩스가 내세운 알고리즘 기반 페깅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일단 테라 가격이 폭락하자 평소처럼 루나를 팔아 테라 매입에 나섰지만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며 가격 조정이 무위에 그쳤다. 테라폼랩스 측은 루나 대규모 발행으로 시세 방어에 나섰지만 시장에선 이미 ‘루나 던지기’가 줄을 이었다. 결국 두 자매 코인은 동반 하락해 사실상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권 대표는 “10억 개 신규 토큰을 발행해 투자자에게 분배하겠다” “테라의 블록체인 코드를 복사해 새로운 네트워크를 만들겠다” 등 대응 방안을 내놨지만 시장 반응은 차갑다.

공동창업자인 권 대표와 신 대표 두 사람은 미국 명문대 유학파 출신이자 첨단산업 분야 창업자로 이름을 알렸다. 권 대표는 국내 유명 외국어고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당초 글로벌 빅테크 기업 MS(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서 근무한 이력으로 화제가 됐으나 최근 각각 3개월 동안 인턴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펜실베이니아대 출신인 신 대표는 미국에서 부동산·광고대행 분야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셜커머스 티몬(당시 티켓몬스터)를 설립해 안착시켰다. 다만 신 대표는 2020년 테라 지분을 모두 처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루나·테라 가격 폭락 원인과 배경을 두고 투자자들과 암호화폐 시장에선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다. 두 암호화폐의 알고리즘 기반 페깅이 무위에 그친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하락장을 촉발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이냐를 놓고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는 것이다. 암호화폐 시장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촉발된 근본 원인을 두고 업계에선 두 가지 ‘설’이 있다”면서 “첫째는 루나·테라가 코로나19 엔데믹화에 따른 자산시장의 자금 회수 분위기에 휩쓸렸다는 설이고, 둘째는 일부 ‘작전’ 세력의 개입에 당했다는 설”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5월 4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5%p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섰다. 2000년 5월 이후 22년 만에 최대 폭이다. 코로나19발(發) 경기 둔화에 대응하고자 최근 몇 년간 양적완화에 나선 연준이 시중 현금을 대거 회수하는 긴축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미국에서 일찌감치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필요성이 제기된 점도 눈에 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직속 ‘금융시장 실무그룹’은 지난해 11월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처럼 암호화폐 시장의 예금을 보호해주는 대신 연준이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하자는 것이 뼈대다.

“어떻게 20% 이익 보장했는지 의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뉴스1]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 [뉴스1]

루나·테라 몰락을 두고 음모론처럼 떠도는 소문도 있다. 최근 주식시장은 물론, 암호화폐 시장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 두 암호화폐 알고리즘의 취약성을 간파한 일부 작전 세력이 가격 폭락 후 공매도로 차익을 노렸다는 것이다. 5월 초 이미 루나·테라의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급락 조짐을 보였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시 위기를 포착한 이는 많지 않았다.

테라폼랩스에 대한 법적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테라폼랩스 측이 투자자에게 내세운 ‘20% 이자 지급’ 조건이다. 지난해 3월 테라폼랩스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 상품인 ‘앵커 프로토콜’을 출시해 투자자가 테라를 예치하면 연 20% 수준의 이자를 지급한다고 홍보했다. 루나·테라가 시장에서 급성장한 주된 요인이다.

암호화폐 관련 사건 수임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알고리즘으로 두 암호화폐 가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투자자에게 두 자릿수 수익률을 보장하는 것은 무한대의 자본이 없는 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루나·테라 발행 과정에서 테라폼랩스 측이 투자자를 고의로 기망한 사실이 드러나면 사실상 ‘폰지 사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폰지 사기는 새로 유입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 등 수익금을 지급하는 형태의 다단계 금융사기다. 한 금융 전문가는 “테라폼랩스가 이렇다 할 실물자산을 보유하거나 암호화폐 외에 다른 비즈니스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20%에 달하는 추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루나·테라 가격 폭락으로 피해를 본 일부 투자자는 5월 19일 권 대표와 공동창업자 신 대표를 사기 및 유사수신 혐의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 함동수사단(합수단)에 고소·고발했다. 투자자들을 대리해 소송을 준비하는 김현권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고소장 접수를 고려하는) 피해자 숫자를 당장 밝히긴 어렵지만 피해 액수는 수천만 원대에서 5억 원까지 다양하다”면서 “신규 투자자가 유입되지 않는 이상 20% 수익을 올릴 수 없다는 점에서 루나·테라의 구조가 폰지 사기와 비슷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이번 사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취임 직후 서울남부지검에 부활시킨 합수단의 ‘1호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합수단은 한국거래소 등에서 검찰로 바로 넘기는 ‘패스트트랙’ 사건이나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 등 신속한 처리가 필요한 주요 금융·증권 범죄를 수사한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선 루나·테라 가격 급락의 법적 책임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상 암호화폐는 금융투자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현재 거론되는 사기나 유사수신 혐의도 고의성이 확인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지난해 3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됐으나 암호화폐거래소 간 가상자산 이동 기록을 수집·보관하는 일종의 ‘가상자산 실명제’ 수준에 머물고 있을 뿐 암호화폐 시장 전체를 관할하거나 관련 범법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포괄적 규제는 아니라는 점에서다. 테라폼랩스 본사가 싱가포르에 소재한 점도 변수다. 대한변호사협회 IT블록체인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주현 황금률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이번 사태를 폰지 사기로 의심할 여지가 있으나 폭넓은 증거 확보와 혐의 입증이 필요하다”면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선 테라폼랩스 측이 암호화폐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고도 투자자를 모집했다는 고의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 범죄 근절 법률 마련해야”

전문가들은 루나·테라 사태와 같은 암호화폐 시장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을 주문했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 회장)는 “이번 사태로 암호화폐 시장 위축에 따른 가격 급락 등 연쇄적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하루빨리 암호화폐 시장 관련 ‘업권법’(業權法: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근거법)을 도입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금융기관은 국내에서 암호화폐 시장에 투자할 수 없다. 자체적인 전문 인력 풀을 가진 대형 금융기관이 투자에 나서면 시장의 옥석이 좀 더 잘 가려질 수 있다. 정부가 기관 투자를 허용해 암호화폐 시장을 지금보다 더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 규모 있는 투자기관의 참여와 전문적인 상품 출시를 통한 암호화폐 시장의 자정 작용이 필요하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암호화폐 시장의 범죄 양상은 기존 금융사기보다 더 교묘하고 다양해지는 추세”라면서 “암호화폐 관련 범죄를 근절할 수 있도록 근거 법률을 마련하고 다른 금융상품처럼 투자자 피해를 막을 안전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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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1340호 (p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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