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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벼랑 끝 항공업계, 구조조정 칼바람

사스 때보다 더한 ‘항공절벽’…“코로나19 버텨내는 회사가 승자”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벼랑 끝 항공업계, 구조조정 칼바람

한국과 일본이 양국 국민에 대한 90일 무비자 입국을 중단한 3월 9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대한항공 발권 창구에 비운항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한국과 일본이 양국 국민에 대한 90일 무비자 입국을 중단한 3월 9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대한항공 발권 창구에 비운항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3월 9일 인천국제공항 이용객 수는 2만 명을 갓 넘겼다(2만1241명).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때 기록한 최저 여객 수(2003년 5월 20일·2만6773명)를 17년 만에 갈아치웠다. 코로나19 사태 악화로 일본이 이날부터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금지하는 등 한국인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100개국 이상으로 늘면서 항공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코로나19 사태 확산으로 ‘경영위기’를 선포했던 국내 항공업계는 이달 들어 생존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공포감을 호소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2월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7% 줄었는데, 3월 사정은 이보다 더 악화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국내 1위 항공사를 이끄는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도 3월 9일 사내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현재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유 여객기 145대 중 100여 대가 운항하지 못하고 있고, 2만1000여 명의 임직원이 재직하고 있지만 필요 업무량은 그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며 “상황이 더 장기화하면 회사의 생존을 담보받기도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토로했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이번 위기를 버티지 못하고 몇몇 항공사가 매물로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위기 때보다 안 좋다”

3월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활주로 계류장에 항공기가 줄 지어 서 있다. [뉴시스]

3월 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활주로 계류장에 항공기가 줄 지어 서 있다. [뉴시스]

항공업계는 2월부터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유·무급휴직에 들어갔다.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이 열흘간 무급휴직을, 제주항공·티웨이항공·에어서울·이스타항공은 희망 유·무급휴직 또는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진에어 객실승무원은 3월부터 1개월씩 순환 휴직하며, 에어부산은 전 직원이 40일간 유급휴직한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국내 항공사의 유·무급휴직 인원은 7500여 명으로 전체 직원(2만1000여 명)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항공도 외국인 조종사 무급휴직과 함께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1~3개월 단기 휴직을 신청받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그간 연차를 소진하지 못하고 쌓아온 장기 근속자가 주로 휴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경영 사정이 어려울 때 일반 직원이나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유·무급휴직을 실시하는 일은 그간 몇 차례 있었지만, ‘항공업계의 꽃’이라 할 조종사가 타격을 받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난달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은 3월부터 4개월간 임금을 25% 삭감하는 데 동의했다. 30년 경력의 한 저비용항공사 소속 조종사는 “그간 외국인 조종사를 휴직시킨 적은 있어도 국내 조종사가 영향을 받는 일은 없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의 임금 삭감은 처음 있는 일이고, 이것이 다른 항공사로도 번질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요즘 분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사태로 항공 노선이 크게 감축됐다. 대한항공의 경우 코로나19 사태로 124개 노선 가운데 89개를 중단하면서 국제선 운항률이 80% 이상 감소했다. 앞으로 한국발(發) 입국을 제한하는 국가가 더 늘어나면 이마저도 더 줄어들게 된다. 지난해 한일 무역갈등으로 크게 타격받은 저비용항공사의 사정은 더욱 암울하다. 일본에 편중된 노선을 동남아지역으로 바꾸면서 올해 상반기 경영 호전을 노렸는데, 코로나19 사태로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됐다. 3월 둘째 주 기준 이스타항공과 에어부산, 에어서울은 국제선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특히 에어서울은 국내선도 김포~제주 1개 노선만 운항하는 처지다.




아시아나·이스타항공 인수, 더 지켜봐야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저가항공사의 국제노선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뉴스1]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저가항공사의 국제노선은 거의 중단된 상태다. [뉴스1]

이에 국내 항공업계는 ‘버티는 게임’에 돌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산업이 사실상 셧다운돼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만큼 기존에 쌓아놓은 현금으로 고정비를 감당해야 한다. 2003년 사스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를 되짚어보면 감염병은 발병 이후 2~3개월간 항공 수요에 큰 타격을 입혔고, 이후 항공 수요가 회복되는 데까지 6개월이 소요됐다. 코로나19 사태가 3월을 끝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간다면 8월까지 버텨야 한다는 계산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견뎌야 하는 시간도 그만큼 늘어난다. 3월 11일(현지시각)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하면서 ‘공포의 터널’은 더욱 출구가 보이지 않게 됐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그러나 문제는 동원할 현금이 없는 항공사가 있고, 설령 있다 해도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애경그룹을 모회사로 둔 제주항공처럼 지원군이 있는 항공사를 제외하고는 이번 위기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정부 지원이 없으면 저비용항공사는 2~3개월 내 유동성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부채비율이 높은 대형 국적사도 재무 부담이 점차 가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2019년 3분기 연결 기준으로 922%에 달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분명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이지만, 항공업계 내부적으로도 위기에 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해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 이후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크게 늘면서 한국은 인구 대비 해외여행객 수 부문에서 세계 2위로 올라섰다. 2010년 6000만 명 수준이던 국내 항공사의 여객 실적은 2018년 1억1700만 명으로 단기간에 급성장했다. 업계 내에서는 ‘저비용항공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이 돌았고, 항공사마다 외형 확장에 치중했다. 이러한 호황에 힘입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3월 3개의 저비용항공사(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에 신규 면허를 내줬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한일 무역갈등이 시작되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본격화됐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 수요가 얼어붙은 와중에도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3월 2일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와 545억 원에 이스타항공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최종 계약했다고 공시했다. 양해각서를 맺을 당시 공시한 인수 금액이 695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코로나19 사태로 20% 이상 ‘저렴하게’ 이스타항공을 사들인 셈이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은 “결국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기업결합 신고 및 자금 마련 절차를 순조롭게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악화가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HDC현대산업개발과 제주항공이 무사히 자금 조달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세 개 항공사만 살아남을 듯

사실상 영업을 중단한 에어서울, 에어부산, 티웨이항공, 플라이강원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이들 저비용항공사 가운데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시장에 추가 매물로 나오는 곳이 있을 수도 있다. 황용식 교수는 “국내 저비용항공사 수가 인구 대비 과한 게 사실”이라며 “상대적으로 체력이 강한 한두 개 항공사가 저비용항공사를 추가로 인수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반등할 항공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8년 항공자유화 이후 100개 넘는 항공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다 2010년 이후 4대 항공사 체제로 재편된 미국 항공업계의 수순을 국내 항공업계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저비용항공사 관계자는 “항공 수요는 탄성이 강해 억눌렸던 만큼 튀어 오르기 마련이라서 코로나19 사태를 견뎌내는 항공사에게는 차후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며 “따라서 지금은 어떤 수를 쓰더라도 버텨내야 하는 때”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20.03.13 1230호 (p28~30)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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