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6일(이하 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 타즈리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최근 이란 경제는 초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시스
이란 정부는 최근 3개월간 공공 부문 근로자의 급여와 수당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주요 도시에선 현금 인출기가 비어 있거나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은 지난달 500만 리알 지폐를 발행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역대 최고 액면가인 1000만 리알(발행 당시 환율 기준 7달러 수준) 지폐를 찍어내며 초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지만, 시장의 공포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다. 산업 생산도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 공장과 생산 시설은 원자재 부족에 직면해 가동률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며, 공급망 붕괴로 생산 차질이 확대되고 있다.
제재 대비 자급자족 지향하는 ‘저항경제’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47년간 구축해 온 ‘저항경제(Resistance Economy)’ 체제를 통해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버텨왔다. 저항경제란 외부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시스템 일부가 타격을 받아도 국가 기능 전체가 마비되지 않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란은 의약품, 자동차 부품, 가전제품 등 주요 품목의 80% 이상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또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석유와 식량, 기계류를 이웃국가들과 맞교환하는 물물교환도 해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교훈을 바탕으로 전력망이 쉽게 파괴되지 않도록 발전소를 전국에 분산 배치했다.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는 2011년부터 본격화된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국산품 애용 등 경제 자립을 통해 저항경제 체제 구축에 적극 나섰다. 이란은 그동안 원유 수출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 산업 생산을 늘리고 철강·금속·화학제품 등 비석유 제품 수출을 확대해 매달 20억 달러(약 2조9574억 원)를 벌어왔다.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상당한 이익을 보기도 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이란은 수백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지속적으로 수출해 하루 1억4000만 달러(약 207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이에 따라 유가 상승이 전쟁 비용의 일부를 상쇄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특히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고 이곳을 지나는 유조선 등으로부터 통행료를 징수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미국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디나 에스판디아리 수석 연구원은 “이란은 호르무즈 카드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줄 몰랐을 것”이라며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얻은 교훈은 전 세계 경제를 볼모로 잡는 것이 생각보다 싸고 쉽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4월 13일 오전 10시를 기해 세계 원유·가스 물동량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을 비롯해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에 돌입했다. 동아DB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해협 ‘역(逆)봉쇄’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이란의 원유 수출을 끊는 등 경제 압박으로 이란의 핵 포기 등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이란은 그동안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며 자신들의 원유 수출을 위한 선박의 통행만 허용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거꾸로 이란산 원유를 수출하는 유조선이나 이란과 교역하는 제3국 선박들을 통제함으로써 이란의 돈줄을 끊고 호르무즈해협이라는 지렛대를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저장 시설 가득차면 원유 감산해야
이란은 미군의 호르무즈해협 봉쇄 조치로 하루 4억3500만 달러(약 6433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미국 싱크탱크인 민주주의 수호 재단의 미아드 말레키 선임 연구원은 이란이 원유뿐만 아니라 식량 등 수송에서 호르무즈해협 의존도가 걸프만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아 이곳이 봉쇄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데다 대체 통로도 없다고 지적했다.이란의 해상 무역량 중 90% 이상이 해협을 통과한다.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는 이란의 모든 수출품, 특히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과 곡물 수입을 막는다. 봉쇄가 몇 주간 지속되면 식량 부족은 물론 원유 저장 공간도 부족해져 생산량을 줄이거나 중단해야만 한다. 이란 중앙은행과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2024년 이란 전체 수출액의 65~75%는 석유와 천연가스가 차지했고 이들 대부분(92~96%)이 해협을 통과했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 부국장을 역임한 말레키 연구원은 이란의 하루 손실액 가운데 2억7600만 달러(4000억 원)는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수출 차질에서 비롯될 것으로 추산했다.
해협 봉쇄는 이란의 석유 인프라에 영구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란은 5000만~5500만 배럴 규모의 육상 석유 저장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이 시설에는 봉쇄 이전 이미 61%가 차 있었다. 봉쇄가 지속되고 ‘그림자 선단’(국제 사회 제재를 피해 불법으로 원유 등을 판매하는 선박 집단) 등을 통한 운송이 중단되면 이 저장 시설은 몇 주내로 가득 차게 된다. 하루 180만 배럴인 현재 수출 물량을 기준으로 할 때 저장 탱크에 추가로 채울 수 있는 여력은 16일분으로 이후에는 이란은 감산을 단행해야 한다.
또 해협을 통한 수입 봉쇄 타격도 심각하다. 이란은 중동 최대의 곡물 수입국이다. 중동 시장으로 수입되는 연간 3000만t의 곡물 중 1400만t이 이란으로 가는데, 이 곡물들은 해협을 통과해야 한다. 이란은 세계 3위 산유국이지만 노후화된 정유 시설로 하루 2600만 갤런의 휘발유밖에 생산하지 못한다. 하루 소비량이 3000만 갤런인 이란은 이 때문에 매년 20억 달러 상당의 휘발유를 수입하고 있는데 주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경유하는 해상 물물교환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은 전략적 연료 비축량도 부족해 4억 갤런의 휘발유와 3억 4000만 갤런의 디젤은 국내 소비량의 12일분에 불과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호르무즈해협 봉쇄는 이란의 생명줄을 끊는 조치가 될 수 있다.

4월 13일 호르무즈해협과 접해 있는 이란 케슘섬 항구가 파괴돼 있다. 현지 목격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격 때문이라고 전했다. 뉴시스
WSJ “이란, 7월 중순까지 버틸 수도”
반면 이란이 중국에 수출하기 위해 호르무즈해협 밖에 비축해 둔 원유 재고량이 상당해 미국의 봉쇄에도 최대 몇 달은 버틸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호르무즈 밖 해상에 1억6000만 배럴 규모의 이란산 원유가 유조선에 선적된 채 대기 중인 상태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사들이는 이란산 원유가 하루 평균 180만 배럴이란 점을 고려하면, 이론적으로 최소 7월 중순까지 공급을 유지할 수 있는 물량이다. WSJ는 “이란은 자신들이 미국과 세계 경제보다 더 오래 버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해상에 쌓아둔 원유 재고 규모를 고려할 때 그들의 자신감이 단순한 허세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강조했다. 카타르 알자지라도 “이란은 1979년부터 미국의 강력한 제재를 받아와서 이런 상황에 비교적 익숙하다”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회복력이 강한 나라”라고 지적했다.이란은 인접국들과의 국경 무역 활성화를 통해 경제적 충격을 상쇄하겠다고 나섰다. 실제로 에스칸다르 모메니 이란 내무장관은 접경 지역 주지사들에게 국경 무역을 대폭 활성화할 것을 지시했다. 이란은 이라크,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해상봉쇄에 맞설 육상 루트인 셈이다. 이란은 북부 카스피해를 통해선 러시아·카자흐스탄과도 교역이 활발하다. 이란은 지난해 6월 중국을 연결하는 화물열차도 개통해 운영하고 있다.
저항경제 체제 속에서 살아온 이란이 ‘버티기’에 들어가면 미국의 인내심이 먼저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 급등과 이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 경우 미국과 세계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 상승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 사남 바킬 영국 채텀하우스 중동담당 이사는 “이란 정권은 국민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완강히 버티는 성향이 있다”며 “결국 의지와 인내의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봉쇄는 군사력보다 ‘경제적 인내력’을 겨루는 대결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