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1

2018.06.06

법통팔달

한진그룹 일가에 경영 맡겨도 될까

어플루엔자(Affluenza)

  • 입력2018-06-05 13: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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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5월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만행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2014년 발생한 큰딸 조현아의 ‘땅콩회항’ 사건에 이어 올해 4월에는 막내딸 조현민이 한 광고사 직원에게 회의 중 물컵을 집어던진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아내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공사장 인부들에게 행한 ‘갑질’ 동영상까지 등장하면서 한진그룹 일가의 비상식적인 생활방식에 많은 사람이 비난의 눈총을 보내고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항공사라는 특성을 이용해 비일비재하게 탈세를 저지른 혐의도 받고 있다. 

    또 비록 이번 사건에서는 비켜나 있지만, 아들 조원태 역시 난폭운전에 항의하는 할머니를 폭행하는 등 다른 형제들 못지않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진그룹 일가의 이상하고 괴기스러운 집단적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처해야 할까. 

    최근 미국에서는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병이 자주 거론된다.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와 풍족함, 부유를 뜻하는 어플루언스(affluence)의 합성어로, 부유한 환경에서 부족함 없이 자랄 경우 일반적인 사회규범을 지키지 못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병이다. 

    2013년 12월, 16세의 이선 카우치(Ethan Couch)는 음주운전으로 4명을 치어 죽이고 11명을 다치게 했다. 이때 그의 변호사들은 그가 어플루엔자라는 병에 걸려 범행을 저질렀으니 그에게 재활이 필요하며 감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변호했다. 부유함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변론은 먹혀들었다. 판사는 카우치에게 10년의 보호관찰처분과 재활을 판결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전국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어플루엔자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한편 해당 판사는 그보다 9년 전인 2004년, 음주운전으로 1명을 죽게 한 10대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얼마 뒤 카우치는 다시 언론에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2015년 한 파티에서 술 마시는 게임을 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됐고, 이 일로 보호관찰처분이 취소될 것을 우려한 어머니와 함께 멕시코로 도주했다 체포된 것. 하지만 이번에도 처분은 가벼웠다. 720일 수감처분을 받은 뒤 올해 4월 석방됐다. 

    어머니 토냐는 카우치 뒤에 항상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아마 이명희와 비슷한 영향을 카우치에게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토냐는 여러 혐의로 구속돼 재판 대기 중이다. 

    이명희를 비롯한 그 자식들 역시 어플루엔자를 앓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만약 그렇다면 이들 가족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같은 병리적 현상을 막기 위한 사회 · 제도적 장치의 마련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들 가족에게 과연 큰 기업의 경영을 그대로 맡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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