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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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청사진이 거품 만들라

경제적 효과·국가경쟁력 영향은 뒷전… ‘많이 논다’에 초점 국민 오도 우려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5-01-14 15: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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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밋빛 청사진이 거품 만들라
    3년을 넘게 끌어오던 주 5일 근무제 실시 논란이 최근 들어 급류를 타기 시작한 것은 노사정위원회도, 경제정책조정회의도 아닌, 청와대에서 열린 관광진흥확대회의 자리에서였다. 문화관광부는 지난 7월23일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제3차 관광진흥확대회의에서 관광진흥 등을 통한 내수경기 활성화를 기한다는 명분으로 주 5일 근무제 조속 입법 방침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 날 회의에 이어 김호진 노동부 장관이 “8월 내 합의가 안 되면 정부안 강행이다”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고 김대통령이 직접 사회관계 장관들을 불러모아 구체안 마련을 지시하면서 ‘주 5일 근무제’는 그동안의 지루한 논쟁거리에서 당장 눈앞의 현실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에 참석해 밀고 당기는 싸움을 벌여온 노사 양측 모두 주 5일 근무제가 관광진흥회의에서 처음 불거져나왔다는 데에 의아해한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국민이 관광진흥이나 여가활용이라는, 주 5일 근무제의 부수적 효과에만 관심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주 5일 근무제가 가져올 경제적 효과나 국가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 정작 중요한 문제는 제친 채 ‘더 많이 놀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만으로 국민 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근로 시간이 줄어들면 노동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고 작업능률이 향상된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지난 89년 근로시간을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줄였을 당시 생산성 증가율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을 진행한 4년 동안(89∼92년)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2.6%로 나타났다. 이같은 증가율은 근로시간 단축 이전 4년과 이후 4년의 노동생산성 증가율 9.0%와 10.7%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다는 증거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나 구서독·벨기에 등도 생산성 증대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도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만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89년 당시는 88올림픽 개최의 영향에 따른 경기 상승 효과도 있었고 3저 호황을 누린 시기였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야만 한다는 것. 가뜩이나 L자형 장기 불황에 대한 시나리오가 나오는 마당에 근로시간 단축이 비용 부담을 가중해 제조업체의 목을 죄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걱정은 주로 재계에서 나온다.

    또 경영계에서는 이러한 노동생산성 상승 효과를 인건비 증가나 추가 인력소요 등 고용비용 증가분이 대부분 상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89년 당시에도 근로시간이 줄어든 89~92년의 단위 노동비용은 5.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시간이 단축되기 전인 85~88년의 4.7%보다 1%나 늘어난 수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는 우리 산업구조가 대부분 제조업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서비스업이나 IT산업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 안주엽 박사는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워야 할 정도로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던 80년대와 달리 최근 들어 서비스업이 증가하고 비정규직이 늘어났기 때문에 노동비용 증가를 기업들이 소화할 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번 근로시간 단축 논의의 경우 단순히 시간 수를 줄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근무 일수가 하루 줄어든다는 점에서 작업능률 향상 효과는 89년 당시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줄어드는 근로시간도 단순히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4시간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토요일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하면 5~6시간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현재 재경부의 용역을 받아 한국개발연구원 유경준 박사팀이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밋빛 청사진이 거품 만들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용어가 최근 들어 가장 많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노동계가 노사정위원회의 정리해고 합법화 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이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 당시 정부의 정리해고 강행 방침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한 근로시간 단축은 곧 ‘일자리 나누기’(job-sharing)를 통한 실업자 구제를 의미했다. 그러나 정부는 노동계의 이런 요구를 외면하다가 이제 와서야 근로시간 단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따라서 주 5일 근무제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이 어느 정도의 고용 창출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구조조정과정에서 사회협약을 이뤄 성공한 대표적 국가인 네덜란드의 경우도 일자리 나누기로 실업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경영자들이 결국 추가비용 요인을 견디지 못해 고용을 늘릴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국노총측도 실질적인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는 않으리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한다.

    82년 근로시간을 39시간으로 단축한 프랑스의 경우도 당초 15만 명 정도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으나 결과는 이보다 훨씬 적은 3만~4만 명의 고용 증가 효과를 보는 데 그쳤다. LG경제연구원은 법정근로시간 단축분을 기존 근로자의 초과근로로 메울 때는 8조 원대, 신규채용으로 메우는 경우는 12조 원대의 추가비용이 들 것이라는 예측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또 현재 경총측의 요구대로 할증임금률을 현행 50%에서 25%로 인하할 경우 기업들은 신규채용보다 값싼 초과근로를 선호하여 사실상 고용 창출 효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책임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고용 창출 효과는 연장근로에 대한 할증임금률 조정 여부 등 기업의 비용상승 효과와 생산성 효과, 정부 지원여부 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고 내다보았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사람이 중소기업인이다. 이미 비용 증가 요인이 조금만 발생해도 도산할 수밖에 없는 한계기업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함으로써 잔업 수당이 늘거나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추가인력을 고용해야 한다면 아예 생산라인을 중국이나 동남아로 옮기는 기업들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경제학)는 “35시간 노동을 선택한 프랑스는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가진 내수산업 위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생산라인을 옮기려야 옮길 곳이 없는 프랑스와 달리 우리는 중국이라는 값싼 노동력의 거대시장을 끼고 있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중국으로 공장을 옮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단계적으로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근로조건과 관련한 위화감이 커질 우려가 있다. 토요일 휴무 여부는 단순한 임금 차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장 모든 사람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된다는 것. 자연스레 어린 자녀들에게조차 ‘토요일 일하는 아빠’와 ‘토요일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빠’가 나누어질 것이다. 프랑스처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체 재원을 정부 보조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면 중소기업에까지 한꺼번에 혜택을 줄 수도 있겠지만 재정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는 데 고민이 있다.

    따라서 지금은 정부가 관광진흥이니 여가활용이니 하는 말을 앞세우면서 국민에게 장밋빛 희망을 심어주기보다는 이러한 문제들이 몰고 올 사회적·경제적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국대 김태기 교수는 “지금은 대통령이 나서서 자꾸 국민을 향해 거품을 넣을 때가 아니라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40시간만큼이라도 정말 코피 터지도록 일하자고 호소해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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