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9

2002.11.14

한 집 건너 ‘기업인’ 세 집 건너 ‘전문직’

이건희 회장도 입주 계약… 연예인·스포츠 스타 다수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2-11-07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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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집 건너 ‘기업인’ 세 집 건너 ‘전문직’

    국내 최고층 주상복합건물 타워팰리스의 입주자들이 탁 트인 전경을 바라보고 있다.

    1998년 3월 서울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 이건희 회장 집무실. 회의에 참석한 삼성그룹 핵심 임원들은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삼성 임원)

    “대안이 뭔가?”(이회장)

    “반값으로 팔거나 아파트를 짓는 방법밖에 없습니다.”(삼성 임원)

    이날 회의는 삼성이 94년 4430억원이라는 거액을 지불하고 사들인, 서울 강남구 도곡2동 2만3000평의 부지 처리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삼성이 이곳에 102층 규모의 신사옥을 지으려던 계획이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데다, 외환위기까지 겹쳐 현금 확보가 절실했던 때라 평당 2000만원짜리 땅을 무작정 끌어안고 있을 순 없었던 것. 결국 이회장은 아파트 건설을 택했다. 단, 조건이 붙었다.



    전매 많아 삼성물산도 입주자 직업 확인 힘들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삼성 사옥을 짓기로 했던 자리다. 최고의 사람들이 모이는 최고의 아파트를 지어라.”

    당초 40층으로 지으려던 경영진의 계획은 “높이도 최고여야 한다”는 이회장의 지시로 여의도 63빌딩보다 높은, 최고 69층 아파트를 짓는 것으로 바뀌게 됐다. 오늘의 타워팰리스 탄생이 결정된 순간이었다.

    아파트 건설 계획이 확정되자마자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분양 마케팅 작전을 펼쳤다. 각사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마케팅 전문가들 중 최종 선발된 10명이 분양 마케팅에 나섰다. 당시 삼성물산 해외사업부에서 일하다 분양팀 멤버로 합류한 이화종씨(현 부동산서비스 리치웨이 대표)의 말.

    “98년만 해도 기존 아파트와 다른 주상복합건물이 일반화돼 있지 않은 데다 모델하우스는커녕 타워팰리스를 짓는다는 홍보조차 전혀 안 된 상태여서 분양에 성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명품 아파트를 짓고 최고의 사람들을 유치하라는 회장의 뜻이 워낙 확고해 프리 마케팅(pre-marketing), 즉 이러이러하게 짓는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을 폈다.”

    삼성측은 계열사 고객 데이터베이스 등을 이용해 10여만부의 엽서를 발송했다. 서울 강남지역의 40평형대 이상의 아파트와 골프회원권을 소지한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를 1차 대상으로 삼았다. 이씨에 따르면 타워팰리스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의 엽서가 2000장 정도 회수되는 것을 시작으로 분양팀들이 맨투맨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분양 예약을 권고했다.

    삼성측은 99년 모델하우스가 지어지자 곧 본격 분양이라는 제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당시 모델하우스 관계자는 “재산세 납부실적 상위 3% 중 직업이 건실하고 사회적 명망이 있는 사람들에 한해 초청장을 보냈다”고 밝혔다. 워낙 엄격하게 초청고객들만 대상으로 하다 보니, 삼성 임원 부인 등 신분이 확실한 사람들도 초청장을 집에 두고 나와 모델하우스 입구에서 출입이 금지되는 상황도 벌어졌다고 한다.

    현재의 입주자들은 바로 그 ‘초대장’을 받은 사람 중에서 3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선택된’ 고객이라는 게 시공사인 삼성물산 유광석 전무의 말이다. 최종 선발과정에서 사전 ‘물 관리’도 철저히 이뤄졌다고 한다. 즉 평균 10억원을 부담할 수 있는 전문직 종사자이면서도 ‘함께 어울려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도 중요시했다는 것.

    국내 초유의 분양 방식을 고집한 삼성측의 마케팅은 이후 2차, 3차 타워팰리스 분양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소위 ‘MGM(Members Get Members·비슷한 부류가 비슷한 고객을 몰고 온다) 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실제로 타워팰리스에 입주할 친구나 직장동료의 얘기를 듣고 덩달아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한 집 건너 ‘기업인’ 세 집 건너 ‘전문직’

    삼성물산은 타워팰리스를 우리나라 최고의 아파트로 만들기 위해 내부 설계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다. 타워팰리스 내부의 식당, 거실, 욕실 전경(위부터).

    이렇게 해서 삼성이 ‘선택한’ 타워팰리스 1차 최초 입주자는 강남에 거주했던 주민이 70%를 차지하고 있다. 평균 연령은 55세이며, 직종별로는 기업인이 42%로 가장 많고, 의료인(8.3%), 학자(3.9%), 법조인(3.7%), 금융인(3.2%) 순이다. 나머지 40%에 가까운 세대는 그 사이 전매가 이뤄져 삼성물산측도 세대주의 정확한 직업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물산측 관계자는 기업인 수가 많은 것은 분양 당시 상황과도 얽혀 있다고 귀띔한다.

    “초기 분양 예약 당시엔 주상복합건물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어서 타워팰리스가 고급 커뮤니티를 지향한다는 점을 고객들에게 먼저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삼성 계열사 임원 100명 내외가 대거 분양 대열에 나선 것으로 안다.”

    타워팰리스 1차 68평형을 분양받은 김석수 총리도 그 경우. 김총리는 삼성의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7억원에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던 것.

    삼성계열사 임원급들뿐만 아니다. 타워팰리스에 각별한 애정을 쏟은 이건희 회장 자신도 2004년 입주 예정인 타워팰리스 3차 맨 꼭대기층(69층) 펜트하우스를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1동만 들어서는 타워팰리스 3차의 펜트하우스는 334평 규모로 추정된다. 또 이회장의 장남 재용씨(삼성전자 상무보)도 타워팰리스 1차 B동 펜트하우스를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0대 그룹 재벌 2명도 타워팰리스 1차에 입주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펜트하우스의 경우 언론에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타워팰리스 건물의 각 꼭대기층마다 배치된 펜트하우스의 시세는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최근 타워팰리스 1차 C동 58층 펜트하우스 124평형이 39억원에 매물로 나온 바 있다. 이 평형은 92평형과 32평형을 부모와 자식 등 2가구가 나란히 살 수 있도록 꾸민 구조로 두 채를 아예 터서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매물을 취급하는 강남구 대치동 J부동산 이모 사장에 의하면 매도 의뢰인이 “분양가 26억원에 옵션비 3억원이 들어갔고, 그간의 아파트값 상승을 고려해 웃돈으로 10억원을 붙여달라”고 말했다는 것. 매도인의 주문대로 거래가 성사되면 타워팰리스는 현재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강남구 도곡동 힐데스하임 160평형(기준시가 30억6000만원)을 제치고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기록될 전망이다.

    기업인에 이어 의료인과 법조인들의 입주가 많다는 점은 인근 증권가에서도 확인된다. 타워팰리스 입주자 10여명의 증권계좌를 관리하고 있다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로 ‘사’자가 붙은 직업에 종사하는 고객들이라고 밝혔다.

    “내가 직접 관리하는 고객들은 40억~50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보통 10억~20억원 규모로 증권투자 등 현금을 굴리는 여성들이다. 드러내놓고 남편의 신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남편의 직업이 의사, 변호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증권투자의 경우 남편들 대신 아내들이 나서는 것이 강남권 문화이기도 하다.”

    실제 타워팰리스 1차 57평형을 12억원에 전매로 매입한 소아과 개업의인 K씨는 입주자들 중에 의료인이 상당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집 건너 ‘기업인’ 세 집 건너 ‘전문직’
    이외에도 정·관계의 유력인사들과 연예인, 스포츠인들도 끼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배우’로 불리는 영화배우 ㅇ씨와 ㅂ씨, 개그우먼 ㄱ씨, 연예인 ㄱ씨와 ㅅ씨 등 유명 연예인들이 상당수 있고, 축구해설가인 ㅊ씨와 월드컵의 영웅 홍명보도 타워팰리스 입주자 대열에 끼여 있다.

    특히 홍명보의 경우 68평형을 분양받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네티즌들의 엇갈린 반응으로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 ‘돈 이 많다고 꼭 그런 집에서 살아야 하나’는 비판에서부터 ‘홍선수는 귀족 아파트에 살면 안 되나’는 등의 옹호론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던 것. 이에 대해 홍명보는 “타워팰리스를 분양받을 당시엔 그렇게 대단한 아파트인 줄 몰랐다”며 가격도 주변 시세와 비슷한 6억원 수준이었다고 억울해했다. 이러한 홍선수에 대한 네티즌의 반응은 어쩌면 귀족 아파트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두 가지 시선과도 비슷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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