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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미학 교실 ②

어떤 의도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전문가는 관객 자극 특별한 단편 포착 … 있는 그대로 모습 재현하는 것은 금물

어떤 의도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어떤 의도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황규태, ‘블로우 업’ 중, 2000
익명의 아이들이지만 반박할 수 없는 과거 사실의 출현으로 우리 모두 희미한 추억을 다시 경험하게 한다.

카메라는 더 이상 전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되면서 오랫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으로만 여겨지던 사진촬영 기술의 성역이 사실상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마추어도 기념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뿐 아니라, 자기성취와 창작을 위해 촬영을 한다. 이 역시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좁은 경계마저 무너졌다는 증거다.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찍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찍느냐가 중요하다. 개념적으로 무엇을 재현하느냐의 문제이고, 촬영자가 어떤 의도로 찍었는지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보편적인 메시지보다 촬영자가 주관적으로 체험한 무엇을 드러냈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이경률의 ‘현대사진 미학의 이해’ 참조).

사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카메라는 대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촬영자의 느낌을 그려내는 도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카메라로 눈앞의 대상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행위는 쉽다. 특정 대상을 직접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비교하면 훨씬 간단하고 편리한 작업이다. 파인더나 액정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확인하고 살며시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사진은 가장 대중적이고 친숙한 재현 매체가 됐다.

그러나 ‘찰칵’ 하고 찍는 행위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옮겨낸다고 믿는 것은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카메라는 복사기라기보다는 작동자가 구체적인 의도를 갖고 특정 상황에 대한 느낌을 드러내는 재현 도구다.

유희적인 이유든,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든 모든 사진촬영에는 촬영자의 감정이 실린다. 예를 들면 우리가 화단에 핀 꽃을 찍을 때, 사진은 결코 대상의 단순한 복사가 아닌 대상과의 어떤 관계로서 이해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꽃을 촬영하는 것은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한 꽃 형태를 복사하는 것을 넘어 그 꽃에서 받았던 순간적인 느낌, 즉 ‘아름답다’는 감상을 재현하는 데 있다. 그래서 사진 이미지는 시각적인 형태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느낌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의 결과물인 꽃 이미지는 촬영자의 주관적 느낌(대부분 무의식적인 경향이나 욕구)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자국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때 카메라는 그 느낌을 찍어내는 도구로 쓰인 것이다.



이미지는 시각 형태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느낌

사람들은 흔히-그것이 그림이든 사진이든-모든 이미지는 메시지를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메시지는 어떤 구조적인 틀에 의해 수신자에게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정답이 있는 문제처럼 이미지에 함축된 명확한 메시지를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이미지가 그에 대응하는 특정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특정한 의미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이들이 비둘기 사진을 보고 “비둘기는 평화”라고 말한다. 그러나 원래 비둘기는 비둘기 그 자체였을 뿐이고, 어떤 문화적인 진화를 거치면서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래서 비둘기 사진은 ‘비둘기 이미지=평화’라는 도식적 의미를 갖기 전, 그 밖에 다양한 의미로도 해석된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면 사진 이미지는 그 진화과정에서 의미를 부여받게 된 코드 메시지이자, 코드 메시지가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속한 탈(脫)코드 메시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어떤 의도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임영균, ‘해남’, 1999 석양을 배경으로 창가에 놓인 찻잔은 단순한 찻잔이 아니라 응시자 각자의 경험적인 상황을 재구성하게 하는 자극-신호 구실을 한다.

그래서 사진 이미지는 언제나 “저것의 의미는 무엇이다”식의 해석학적인 관점 혹은 메시지를 생산하는 관점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예컨대 비둘기 사진을 보고 단번에 그 이미지의 상징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불특정 상황에서 이미지는 사실상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이때 사진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체(sujet)-작동자(operator)’의 관점에서 능동적으로 “저 상황이 나오게 된 원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마찬가지로 주체-작동자의 관점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특정한 의도를 드러내는 행위가 된다. 보통 촬영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도를 갖고 촬영한다.

먼저 단순히 시각적인 정보를 담기 위해 촬영하는 경우다. 화가가 꽃을 정밀묘사하기 위해 꽃 사진을 촬영했다면, 그때 사진은 정밀묘사를 위한 보조 구실을 한다. 촬영자는 시각적인 정보를 담기 위해 촬영에 임한 것인데, 이렇게 생성된 꽃 이미지는 결국 그런 정보를 위한 도상(icon)-이미지(image)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사진은 대상의 실증적 증거로서 흔히 상업광고나 과학적 기록을 남기는 데 활용된다.

다음으로는 사진 이미지를 통해 어떤 보편적 의미를 전달하려는 경우다. 예컨대 전국 미용대회를 알리는 포스터에 쓸 이미지를 얻기 위해 꽃을 촬영한다면, 그 촬영 목적은 꽃이 상징하는 ‘아름다움’이라는 보편적이고 문화적인 코드를 얻으려는 것이다. 촬영 결과로 얻게 된 꽃 이미지는 보편적인 의미를 함축하는 상징(symbol)-이미지(image)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앞서와 반대로 정상적인 코드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사진 이미지가 있다. 이런 사진에서 이미지가 말하는 메시지는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 때문에 여기서 사진은 감각과 느낌으로만 포착된 것이다. 이런 사진 이미지는 지표(index)-이미지(image)라고 한다. 보편적이기보다는 촬영자 자신도 잘 모르는 개인적인 느낌이나 심리적 경향과 연관돼 있다. 예술로서 진정한 촬영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여주는 사진보다 감추는 사진이 관객에 어필

어떤 의도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

랠프 깁슨, ‘인판타’ 중, 1995 비록 단순한 구두지만 이 단편은 상징의 벽을 넘어 관객 각자의 상상적 세계나 억압된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왼쪽).
랠프 깁슨, ‘인판타’ 중, 1995 기하학적인 모양의 파라솔과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건축물 조각은 응시자로 하여금 지난 여름 유럽여행에서 생긴 일이나 강렬한 이국적 인상을 떠올리게 한다.

보통 노련한 촬영자는 관객 처지에서 관객 개개인이 경험한 기억과 욕구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게 이미지의 단편을 포착한다. 달리 말해 좋은 사진은 일방적으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이미지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포착된 이미지의 메시지가 분명할수록 응시하는 이가 연상할 수 있는 공간은 좁아지는 반면, 단편적인 형태나 불확실한 진술로 대상을 감출수록 응시자의 연상 공간은 확장된다. 즉 좋은 사진은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라, 불확실하지만 관객에게 뭔가를 환기하는 ‘감추는’ 사진이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음률 자체보다는 거기서 발산되는 어떤 감성의 음색(자신이 과거에 경험한 듯한)이 우리를 유혹하듯, 어떤 이미지는 응시자로 하여금 과거 경험한 인상-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때 보인 이미지와 즉각적으로 연상된 인상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주관적이고 환유적이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는 뉴스 기사를 읽을 때와 같은 방법으로 읽지 않는다. 시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것에서 야기되는 어떤 환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상황에서 포착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단순히 그 상황을 진술하지 않는다. 정제된 언어를 도구 삼아 재구성한다.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보도사진을 제외하면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결국 촬영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찍느냐가 문제다. 그리고 그 대상을 촬영할 때 결코 촬영자의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 따라 결과는 달리 나온다. 예외없이, 좋은 사진은 관객을 자극하는 특별한 단편을 포착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7.09.04 601호 (p78~80)

  • 이경률 사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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